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혁산
  • 조회 수 2399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09년 11월 17일 11시 35분 등록

저자에 대해서

 

신영복 선생님은 동양고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사회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였다.

분단과 군사 독재에 저항하면서 열정을 쏟았던 학생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감옥에 들어서게 되고, 그것도 무기징역이라는 긴 세월을 앞에 놓고 앉아서 정신의 식민지적 의식을 반성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동양고전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 관심은 그의 의지였다.

이 책의 면면에서 그의 의지는 깊이 베어져 있고, 왜 그가 그토록 관계를 화두로 삼고 이 책을 전개해 나가는 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사회를 춘춘전국시대의 혼란한 사회변혁기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혼란기는 아직도 지속되고 있으며, 그 혼란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동양고전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 책의 곳곳에서 그는 독자들에게 사회를 재인식시켜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근대사는 서구문명이 전 세계로 확장되는 과정으로 보며, 중국, 한국, 일본등 아시아 각국이 지난 몇 세기 동안 영향을 받아 왔던 서구 문명의 영향에 대해서 그리고 그 문제점들에 대해서 지적하며 우리는 어떠한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 새로운 모색과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거대 자본주의 사회의 병패가 우리를 어떻게 병들게 하고 있는지, 우리의 옛 동양고전속에서는 어떤 지혜가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현실에 적용하며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맺어나갈 것인지 세심하게 보여주고자 한다.

 

그는 현대자본주의가 쌓아가고 있는 모순과 위기 구조는 근본 담론을 더욱 절실하게 요구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고 한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은 그는 복역한 지 20 20일 만인 1988년 8월 15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그 젊은 청춘을 어두운 감옥에서 복역하면서도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을 연구하고 지금도 가치있는 삶을 위해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중요시 하는 것은 이 사회가 체계적인 철학적 사로를 바탕으로 우리 삶의 도처에 자리 잡고 있는 감염부위를 수시로 발견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질 수 있도록 전체적 조망과 역사 인식을 갖게 하는 데 있는 것 같다.

 

말 잘하고 똑똑한 사람보다는 마음씨가 바르고 고운 사람이 참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라는 신영복님의 말씀은 그를 말해주는 것 같다.




내가 저자라면

 

책을 덥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세상을 내 방식으로 변화시켜 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위험한 생각이다. 그러나 내 과거는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이미 점지하고 있었다. 광고대행사에서 광고인이 되고자 하는 꿈, 디자이너로서의 꿈, 브랜드개발자로서의 꿈, 그리고 2번의 사업경험 37이 되기 전에 겪은 내 경험은 대단할 것은 못되지만, 주변의 위험하다는 인식을 늘 깨고 성장해 왔다. 어찌 보면 위험이라기 보다는 모험을 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모험이다. 왜냐하면 무르익지 못한 실력이지만, 마음만은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있었던 것은 분명했던 것 같다. 그러나 모험은 마음의 힘으로 선택할 수 있지만, 그 결과만은 마음도 해결할 수 없다. 신영복강의를 읽고 있는 내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고 내 마음은 무엇을 원하는지, 내 경험은 목적에 부합되는지, 시대적 상황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잘 맞아 떨어지는지, 내가 일으키고자 하는 사업을 위해 어떤 인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떤 가치로 인재들을 모을 수 있는지, 그 사업의 목표 달성을 위해 또 다른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수없이 많은 질문들과 함께 강의을 읽어 내렸다. 신영복님의 말씀처럼 고전은 실행을 통해 현실에서 살아있어야 된다의 의미로 읽었다.

내 과거는 용기는 있었으나, 그것은 모험일 뿐 탐험이 되지 못했다. 목적이 불 분명했고 그냥 바다의 꿈을 향해 배를 몰았던 것이다. 그러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모진 파도를 겪고 되돌아 왔던 것이다. 더 이상 그런 과거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아 그렇구나! 사람은 그런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구나! 사상은 그렇게 구축하고, 사람은 그렇게 얻는구나! 무엇보다 사상 자체에 얽메이지 말고, 내 스스로 널리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겠구나!”

 

이 책은 나에게 동양고전의 지혜로움을 통해 이 세상에서 뜻을 이룰 수 있는 지혜로움을 전해주고 있다 할 것이다. 신영복님이 이 책의 독법을 관계론을 화두로 삼고 풀어나가보라 하셨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바로 인간이 인간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옛 선인들은 이미 인간의 존재의 이유를 관계에서 찾았던 것이다. 우리가 이 세계를 인간답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이라는 현장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신영복님도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현실성의 문제인 것이다. 아무리 좋은 고전의 지혜라 하더라도 현실에서 사용될 수 없고 직접 경험화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고전을 잘 못 이해하고 있고, 무의미한 일임을 강조한다.

 

그렇다. 나는 강의를 통해서 어떻게 현실에 적용할까? 나는 어떻게 이것을 내 것으로 삼아 내 뜻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는 독법이었고, 신영복님이 강조한 현실적 독법이기도 하였다.

 

나는 사업이 최고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곧 내가 좋은 사업가가 되는 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며 그 좋음의 기준을 관계에서 찾아보게 되었다. 함께 가는 사회 , 함께하는 즐거움 이것이 내 사업의 해법이 될 것 같다. 예전엔 그렇지 못했다. 내가 사업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고, 나머지는 돈을 벌기 위한 기술 그 자체였다. 광고업계에 들어선 것도 돈버는 기술을 익히기 위함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광고는 서구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상품판매기술이다. 수없이 많은 상품을 수없이 다른 언어와 이미지로 새롭게 유혹하여 자꾸 사게 만드는 행위이다. 널리 알린다!가 광고의 본질이다. 알리고자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좋은 것을 알린다!라는 목적이 빠져 있다면 그것만큼 무가치한 일이 있을까? 가끔 연예인이 대부업 CF에 출연하여 욕을 먹기도 하고, 신빙성 없는 제품의 광고모델이 되어 나쁜 상품 품질로 욕을 먹게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신영복님도 이런 상품미학의 문제를 짚어 내고 있다. 나 역시 광고의 긍정적 기능을 이해하고는 있으면서도 저자의 말에는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아무튼 인간관계를 돈둑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함께라는 단어임을 확신할 수 있다. 내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 내가 함께하는 있는 동료, 내가 만들어내는 가치와 생산물들 그 모든 것이 관계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나뿐만 아니라 나와 연결관 삶에 애착이 생긴다.

 

신영복님은 주역을 다루는 부분에서 진선진미를 소개했다.

목표의 올바름을 선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진선진미라 합니다

 

나는 이 미제괘에서 우리들의 삶과 사회의 메커니즘을 다시 생각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면 우리는 생산물의 분배에 주목하기보다는 생산 과정 그 자체를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는 과제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라는 말씀은 내 사업의 성격도 형태를 어느정도 규명해 주었다. 또한 겸손을 관계론의 최고의 형태라고 하는 것처럼 나 역시 두루두루 살피고 고려하여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논어의 인간관계론에서는 낯선 거리의 임자 없는 시체가 되지 마라라는 말의 의미를 덕이라는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되고, 백범김구의 마음씨도 이 덕에서 비롯되었음을 생각하면서 내가 중히 여겨 갖춰나가야 할 마음씨 하나를 얻었다. 특히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게 마련이다라는 구절은 저자와 마찬가지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것인지 깨닫게 해주는 구절이기도 하였다.

 

학습과 놀이와 노동의 통일이란 주제에서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는 의미를 통해서 좋은 사업을 일으킨다는 것에는 이 세가지가 통일되게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데 힘을 써야 할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지금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화두이다. 나는 내 회사에서 일을 통해 즐거움과, 배움과, 돈이 벌어질 수 있도록 애초부터 신경써서 사업의 구조와 일의 성격 그리고 해야 할 역할을 정돈해야 함을 배우게 되었다.

 

맹자의 편에서 현자라야 즐길 수 있다라고 한 대목은 창조적인 조직은 그 소수의 독락이되어서는 안됨을 일깨워 준다. 다름 사람의 불행에 대해서 무심하고, 다름 사람들과의 차별성에만 집착하고, 그들만의 개인적 정서의 만족을 지키기 위한 조직은 사회적 공감을 이뤄내지 못해 성장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알게 해준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창조적 소수의 조직이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까지 산업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자본주의의 병패를 답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만남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이 식품에 유해 색소를 넣는 행위를 만들어 내고, 대량 살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니, 이 사회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를 서로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노자의 물의 철학에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라는 구절에서는 관계에서 다툼을 피하는 길을 알려 주었다. “산이 가로막으면 멀리 돌아서 가고, 바위를 만나면 몸을 나누어 비켜가고, 가파른 계속을 만나 숨 가쁘게 달라기도 하고, 너른 평지를 만나면 거울 같은 수평을 이루어 맞춰줄 수도 있고어쩌면 상황에 맞춰나가는 물의 그릇이 대표가 가져야 할 마음씀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장자의 우물안 개구리 편에서는 한 쪽으로 쏠려 판단하지 말고, 전체적으로 조망하여 판단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알게 하였다. 모든 투쟁은 사상 투쟁으로 보는 신영복님의 의견처럼 내가 처한 사상 그 우물을 깨닫는 것이 새로움을 추진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니 매 순간 자주 장자를 통해 당면한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순자, 법가를 통해 난세에는 난세만의 해법이 있으며, 법을 세운다는 것을 회사를 운영하는 규칙에 비유하여 이해해 보았다. 또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 [대학]처럼 질 높은 교육이 병행되어야 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강의를 통해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그 상황에 맞춰 제자백가 사상을 달리 적용하여 실천하는 것이 현대적으로 유용할 것이라 생각해 보았다. 사상의 틀에 얽매여 나는 어떤 사상이 좋더라!는 나에게 맞지 않았다. 여기도 좋았고~ 저기도 좋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도 골라먹고 저것도 골라먹어서 이 시대에서 뜻을 세워보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골라먹을 수 없는 기준이 있다.

그것이 함께라는 주제이다. 좋은것이란 이 마음씨에서 흘러나옴을 익혔으니 부지런히 그 마음씨를 갈고 닦아 좋은 사업을 일으켜 보고자 한다.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들

 

 

내가 동양고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말하자면 나의 사고와 정서를 지배하고 있는 식민지 의식을 반성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반성은 동시에 우리 시대에 대한 반성의 일환이기도 했습니다.[17]

 

이 고전 강독 강의는 비 전공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고전에서 문안을 선정했습니다. [시경] [서경] [초사]에서 문안을 뽑기고 하고 [주역]을 다루기도 하지만, 주로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 [중용]의 독법과 함게 송대 신유학에 대한 논의를 추가하고 있는 정도입니다.[21]

 

먼저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에 이르는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회 변혁기의 사상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사회 변혁기는 사회의 본질에 대한 근복적인 담론이 주류를 이룹니다. 주 왕실을 정점으로 한느 고대의 종법 질서가 무너지면서 시작된 춘추전국시대는 부국강병이라는 국가적 목표 아래 군사력, 경제력, 사회 조직에 이르기까지 국력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무한 경쟁 시대입니다. 주 왕실은 지도력을 잃고 대신 중원을 호령하는 패국이 등장하게 됩니다. 수십개의 도시국가가 춘추시대에는 12제후국으로, 전국시대에는 다시 7국으로 그리고 드디어 진나라로 통일되는 역사의 격동기입니다. 이 시기는 흔히 축의 시대라고 하여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상의 백화제방시대입니다. 처음으로 고대국가가 건설되는 시대였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최초의 그리고 초대한의 담론이 쏟아져 나왔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석가도 이 시대의 사상가임은 물론입니다. 한마디로 사회와 인간에 대한 근본 담론의 시대 그리고 거대 담론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오늘과 다르지 않습니다.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과 이러한 열망을 사회화하기 위한 거대 담론이 절실하게 요처오디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의 상황이라는 인식이 고전 강독에 전제되어 있습니다.우리의 고전 강독은 그런 점에서 기본적으로 사회와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에 관한 근본적 담론을 주제로 할 것입니다.[23]

 

우리가 걸어놓는 화두는 관계론입니다.[23]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이라는 것이 요지입니다.[23]

 

세상의 모든 것들은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없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수많은 관계 그리고 수많은 시공으로 열려 있는 관계가 바로 관계망입니다.[29]

 

서구문명의 구성 원리에 대한 반성이 주목하는 것이 바로 동양적 구성원리입니다.[32]

 

도는 길처럼 일상적인 경험의 축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서양의 철학과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37]

 

인성을 고양시킨다는 것은 먼저 기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시가 아닌 것을 키우는 것입니다.[42]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는 것을 인이라 합니다. 자기가 서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세워야 한다는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론이 확대되면 그것이 곧 사회적인 것이 됩니다.[42]

 

모든 사상은 대립,모순,긴장,갈등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다.[43]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지양을 통하여 21세기의 새로운 구성원리를 모색하고 있다는 중국 모델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46]

 

현대 자본주의가 쌓아가고 있는 모순과 위기 구조는 근본 담론을 더욱 절실하게 요구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금언이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걸음을 재촉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47]

 

우리가 [시경]의 국풍 부분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백성들이 부르던 노래라는 데 있습니다.[52]

 

우리가 [시경]의 국풍 부분을 읽는 이유는 시의 정수는 이 사실성에 근거한 그것의 진정성에 이끼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과 정서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과 생각은 지극히 관념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52]

 

[시경]의 독법은 우리들의 문화적 감성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기르는 일에서 시작해야 합니다.[53]

 

비 개인 긴 강둑에 풀빛 더욱 새로운데

남포에는 이별의 슬픈 노래 그칠 날 없구나.

대동강물 언제나 마르랴

해마다 이별의 눈물 물결 위에 뿌리는데 [55]

 

[시경]의 이러한 사회시로서의 성격은 문학의 사실주의적 전통으로 이어졌으며 동시에 고대사회를 이해하는 귀중한 사료로 [시경]의 가치가 인정되기도 합니다. 문학의 길에 뜻을 두는 사람을 두고 그의 문학적 재능에 주목하는 것은 지엽적인 것에 갇히는 것입니다. 반짝 빛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문학 본령에 들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 역사적 관점에 대한 투철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 시대와 그 사회의 애환이 자기의 정서 속에 깊숙히 침투되어야 하는 것이 지요.[57]

 

공자는 『시경』의 시를 한마디로 평하여 ‘사무사’思無邪라 하였습니다.(詩三百篇 一言以蔽之思無邪). ‘사무사’는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특함이 없다는 뜻은 물론 거짓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시인의 생각에 거짓이 없는 것으로 읽히기도 하고 시를 읽는 독자의 생각에 거짓이 없어진다는 뜻으로도 읽습니다. 우리가 거짓 없는 마음을 만나기 위해서 시를 읽는다는 것이지요.[58]

 

사실과 전설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더 진실한가를 우리는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사실보다 전설 쪽이 더 진실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학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의 내면을 파고들어갈 수 있는 어떤 혼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시경의 시가 바로 이러한 진실을 창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이란 결국 진실을 구성하는 조각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의 조합에 의하여 비로소 진실이 창조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문학의 세계이고 시의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62]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란 시가 있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65]

 

여러분은 무엇이 변화할 때 사회가 변화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미래가 어디로부터 다가온다고 생각합니까?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식민지 의식의 전형입니다. 권력이 내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입니다.[77]

 

강의 서두에 합의한 바와 같이 ‘『주역』의 관계론’에 초점을 두기로 합니다.  『주역』에 담겨 있는 판단 형식 또는 사고의 기본 틀을 중심으로 읽기로 하겠습니다. 판단형식 또는 사고의 기본 틀이란 쉽게 이야기한다면 물을 긷는 그릇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바다로부터 물을 긷는 것입니다. 자연과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나름의 인식 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87]

 

우리가 보통 점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상相, 명命, 점占으로 나눕니다. 상은 관상觀相 수상手相과 같이 운명 지어진 자신의 일생을 미리 보려는 것이며, 명은 사주팔자四柱八字와 같이 자기가 타고난 천명, 운명을 읽으려는 것입니다. 상과 명이 이처럼 이미 결정된 운명을 미리 엿보려는 것임에 반하여 점은 ‘선택’과 ‘판단’에 관한 것입니다. 이미 결정된 운명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판단이 어려울 때, 결정이 어려울 때 찾는 것이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인간의 지혜와 도리를 다한 연후에 최후로 찾는 것이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89]

 

『주역』은 오랜 경험의 축적을 바탕으로 구성된 지혜이고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진리를 기초로 미래를 판단하는 준거입니다. 그런 점에서 『주역』은 귀납지歸納知이면서 동시에 연역지演繹知입니다. 『주역』이 점치는 책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경험의 누적으로부터 법칙을 이끌어내고 이 법칙으로써 다시 사안을 판단하는 판단 형식입니다. 그리고 이 판단 형식이 관계론적이라는 것에 주목하자는 것입니다.[90]

 

 

 

 

공자 이전 2500년은 점복占卜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 이후의 시기는 『주역』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시대입니다. 경經은 원본 텍스트이고, 전傳은 그것의 해설입니다. 예를 들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이란 책은 『춘추』라는 텍스트()를 좌씨左氏(좌구명左丘明)가 해설한() 책이란 의미입니다. 공자학파가 경에 대한 해설을 이루어 놓기 이전에 『주역』은 복서미신卜筮迷信의 책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해설의 의미는 대단히 큽니다. 그것이 바로 텍스트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이 철학적 해석이 곧 사물과 사물의 변화를 바라보는 판단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유구한 삶의 역사적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91]

 

『주역』은 춘추전국시대의 산물이라고도 합니다. 춘추전국시대 550년은 기존의 모든 가치가 무너지고 모든 국가들은 부국강병이라는 유일한 국정 목표를 위하여 사활을 건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는 신 자유주의 시기였습니다.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가 수립되기 이전의 혼란한 상황이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할수록 불변의 진리에 대한 탐구가 절실해지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 시기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 이론에 대한 근본적 담론이 가장 왕성하게 개진되었던 시기였음은 전에 이야기했습니다. 한마디로 『주역』 은 변화에 대한 법칙적 인식이 절실하게 요청되던 시기의 시대적 산물이라는 것이지요.[92]

 

『주역』의 독법에서 가장 먼저 설명해야 하는 것이 위位입니다. 즉 ‘자리’입니다. 어떤 효의 길흉화복을 판단할 때 그 효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효가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가를 보고 판단합니다.... 양효가 양효의 자리 즉 1, 3, 5에 있는 경우와 음효가 음효의 자리인 2, 4, 6에 있는 경우를 득위得位라 합니다. 효가 그 자리를 얻지 못한 경우 이를 실위失位라 합니다.[100]

 

자신의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동양학에서는 그것보다는 먼저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체의 능력은 개체 그 속에 있지 않고 개체가 발 딛고 있는 처지와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고 하는 생각이 바로 『주역』의 사상입니다. 어떤 사물이나 어떤 사람의 길흉화복이 그 사물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주역』사상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득위得位와 실위失位의 개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이 곧 서구의 존재론과 다른 동양학의 관계론입니다.[102]

 

나도 물론 중간을 매우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 선호하는 이유가 무난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내가 중간을 선호하는 이유는 앞과 뒤에 많은 사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가 가장 풍부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바둑 7급이 바둑 친구가 가장 많은 사람이라고 하지요. 바둑 1급은 비슷한 상대를 만나기가 쉽지 않지요. 중간은 그물코처럼 앞뒤로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 자리입니다. 그만큼 영향을 많이 받고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103]

 

위보다 응을 더 상위의 개념으로 치는 것이 『주역』 사상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의 도처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집이 좋은 것보다 이웃이 좋은 것이 훨씬 더 큰 복이라 하지요. 산다는 것은 곧 사람을 만나는 일이고 보면 응의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가 소유의 개념이라면, 응은 덕德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저변에서 지탱하는 인간관계와 신뢰가 바로 응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105]

 

사상이란 어느 천재의 창작인 경우는 없습니다. 어느 천재가 집대성하는 경우는 있을지 모르지만 사상이란 장구한 역사적 과정의 산물입니다.[107]

 

공자는 『주역』을 열심히 읽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 하였습니다. 죽간竹簡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많이 읽은 것으로 유명하지요.[107]

 

 

 

 

지천태괘와 천지비괘에서 공통적인 것은, 어느 것이나 다 같이 교交와 통通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교와 통이 곧 ‘관계’입니다. 이것이 『주역』에서 우리가 확인하는 관계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계란 다른 것을 향하여 열려 있는 상태이며 다른 것과 소통되고 있는 상태에 다름 아닌 것이지요. [119]

 

최후의 괘가 완성 괘가 아니라 미완성 괘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깊은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변화와 모든 운동의 완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자연과 역사와 삶의 궁극적 완성이란 무엇이며 그러한 완성태完成態가 과연 존재하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태백산 줄기를 흘러내린 물이 남한강과 북한강으로 나뉘어 흐르다가 다시 만나 굽이굽이 흐르는 한강은 무엇을 완성하기 위하여 서해로 흘러드는지,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무엇을 완성하려고 바람 서리 견디며 서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실패가 있는 미완성은 반성이며, 새로운 출발이며, 가능성이며,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완성이 보편적 상황이라면 완성이나 달성이란 개념은 관념적으로 구성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완성이나 목표가 관념적인 것이라면 남는 것은 결국 과정이며 과정의 연속일 뿐입니다.[128]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날 만연한 ‘속도’의 개념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속도와 효율성, 이것은 자연의 원리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자본의 논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도로의 속성을 반성하고 ‘길이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129]

 

『주역』 사상을 계사전에서는 단 세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역易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가 그것입니다.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궁하다는 것은 사물의 변화가 궁극에 이른 상태, 즉 양적 변화와 양적 축적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질적 변화는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통通의 의미입니다. 그렇게 열린 상황은 답보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워진다(進新)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구久라고 할 수 있습니다.[130]

 

계사전에서 요약하고 있는 『주역』 사상은 한마디로 ‘변화’입니다. 변화를 읽음으로써 고난을 피하려는 피고취락避苦取樂의 현실적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주역』에는 사물의 변화를 해명하려는 철학적 구도가 있으며 그것이 사물과 사건과 사태에 대한 일종의 범주적範疇的(kategorie) 인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64괘를 칸트의 판단 형식判斷形式과 같은 철학적 범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범주적 판단 형식은 근본에 있어서 객관적 세계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진술 형식陳述形式이나 최상위 유개념類槪念과 통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주역』은 세계에 대한 철학적 인식 구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131]

 

공자의 시대는 기원전 500년 춘추전국시대입니다. 5천 년 중국 역사에서 꼭 중간으로, 중국 사상의 황금기인 소위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대입니다..... 춘추전국시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춘추전국시대는 철기鐵器의 발명으로 특징지어지는 기원전 5세기 제2의 ‘농업혁명기’에 해당됩니다. 이 시기는 철기시대 특유의 광범하고도 혁명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국강병에 의한 패권 경쟁이 국가 경영의 목표가 되고 침략과 병합이 자행됩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적 가치가 붕괴되고 오직 부국강병이란 하나의 가치로 획일화되는 시기입니다. 신자유주의와 무한경쟁으로 질주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패권주의적 경쟁과 다르지 않습니다. 둘째, 춘추전국시대는 사회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함께 구舊 사회질서가 붕괴되는 사회 변동기입니다..... 셋째, 춘추전국시대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백화제방의 시기입니다.[ 139]

 

우리가 이 지점에서 합의해야 하는 것은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時制라는 사실입니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西周 시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 공자의 인간 이해를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의 인권사상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관을 이유로 들어 그를 반인권적이고 비민주적인 사상가로 매도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전 독법은 그 시제를 혼동하지 않음으로써 인人에 대한 담론이든 민民에 대한 담론이든 그것을 보편적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관점이 이 고전의 담론을 오늘의 현장으로 생환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41]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142]

 

사회 변화 역시 그것의 핵심은 바로 인간관계의 변화입니다. 인간관계야말로 사회 변화의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준거입니다. 『논어』에서 우리가 귀중하게 읽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입니다.[145]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을 중심으로 사회적 관점을 정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 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사회 변혁의 문제를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재편 과정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정치 혁명 또는 경제 혁명이나 제도 혁명 같은 단기적이고 선형적線型的인 방법론을 반성하고 불가역적不可逆的 구조 변혁의 과제를 진정으로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146]

 

 

 

 

君子不器   - 「爲政」

그릇이란 각기 그 용도가 정해져서 서로 통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릇()의 의미는 특정한 기능의 소유자란 뜻입니다. 군자는 그릇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구절의 의미입니다. 군자의 품성에 관한 것이며 유가 사상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기도 합니다.[150]

 

子曰 道之以政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구格   - 「爲政」

 

첫째, 형刑과 예禮를 인간관계라는 관점에서 조명해보는 것입니다......정치란 바로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형은 인간관계의 잠재적 가능성을 가두는 것이며 반대로 예는 인간관계를 열어놓음으로써 그것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우는 구조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부끄러움()에 관한 것입니다. 덕德으로 이끌고 예禮로 질서를 세우면 부끄러움도 알고 질서도 바로 서게 되지만, 정형政刑으로 다스리면 형벌을 면하려고만 할 뿐이며 설사 법을 어기더라도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중략)

 

사회의 본질에 대하여 수많은 논의가 있습니다만 나는 사회의 본질은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끄러움은 인간관계의 지속성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일회적인 인간관계에서는 그 다음을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회란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성 자체가 붕괴한 상태라고 해야 하는 것이지요.[154, 156]

 

미인은 대체로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그 일익을 담당하려는 자세가 부족합니다. 소위 꽃으로 ‘존재’ 하려는 경향이 우세합니다. 미인이라는 자의식이 없는 사람이 열심히 일함으로써 자기를 실현하려고 하는 것에 비해 매우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지요. 존재론과 관계론의 차이입니다.[158]

 

우리는 미를 상품화하는 문화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인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과장되기도 합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상품미학에 이르면 미의 내용은 의미가 없어지고 형식만 남게 됩니다. 디자인과 패션이 미의 본령이 되고 그 상품이 가지고 있는 유용성은 주목되지 않습니다.[159]

 

 ‘아름다움’이란 우리말의 뜻은 ‘알 만하다’는 숙지성熟知性을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름다움’의 반대가 아름다움입니다. 오래되고, 잘 아는 것이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새로운 것, 잘 모르는 것이 아름다움이 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이 아니면 결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오늘의 미의식입니다. 이것은 전에도 이야기했습니다만 소위 상품미학의 특징입니다. 오로지 팔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 상품이고 팔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상품입니다. 따라서 광고 카피가 약속하는 그 상품의 유용성이 소비단계에서 허구로 드러납니다. 바로 이 허구가 드러나는 지점에서 디자인이 바뀌는 것이지요. 그리고 디자인의 부단한 변화로서 패션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결국 변화 그 자체에 탐닉하는 것이 상품미학의 핵심이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아름다움이 미의 본령이 아니라 모름다움이 미의 본령이 되어버리는 거꾸로 된 의식이 자리 잡는 것이지요.[159]

 

子曰 君子和而不同小人同而不和  - 子路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한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163]

 

화和의 논리는 자기와 다른 가치를 존중합니다. 타자를 흡수하고 지배함으로써 자기를 강화하려는 존재론적 의지를 갖지 않습니다. 타자란 없으며 모든 타자와 대상은 사실 관념적으로 구성된 것일 뿐입니다. 문명과 문명, 국가와 국가 간의 모든 차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이러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됨으로써 비로소 공존과 평화가 가능하며 나아가 진정한 문화의 질적 발전이 가능한 것입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가 바로 이러한 논리라고 생각하지요.[165]

 

돌이켜보면 우리나라는 중국과 같은 대륙적 소화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불교, 유학, 마르크시즘, 자본주의 등 어느 경우든 더욱 교조화되는 경향을 보여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동의 논리에 대한 비판적 관점과 화의 논리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물론 보다 종합적이고 심도있는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166]

 

 

 

 

子曰 德不孤必有隣    - 里仁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또는 이웃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백범일지에는 백범선생이 상서尙書의 한 구절인 상호불여신호相好不如身好 신호불여심호身好不如心好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이 글의 뜻은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는 것으로 미모보다는 건강이 더 중요하고 건강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166]

 

나는 이 ‘신호불여심호’에 한 구절을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심호불여덕호’心好不如德好가 그것입니다. “마음 좋은 것이 덕德 좋은 것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덕의 의미는 논어의 구절에 나와 있는 그대로입니다. ‘이웃’()입니다. 이웃이란 그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입니다. 심심이 개인으로서의 인간성과 품성의 의미라면 덕은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에 무게를 두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덕은 당연히 인간관계에 무게를 두는 사회적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168]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게 마련이다.” 이 구절은 사람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168]

자공인 정치에 관하여 질문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정치란 경제(足食), 군사(足兵) 그리고 백성들의 신뢰(民信之)이다.” 자공이 묻기를 “만약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하겠습니까?” “군사를 버려라”(去兵). “만약 (나머지)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리지 않을 수 없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하겠습니까?” “경제를 버려라(去食). 예부터 백성이 죽는 일을 겪지 않은 나라가 없었지만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는 것이다.[170]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능력은 그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 있으며 이 인간관계는 신뢰에 의하여 지탱되는 것이지요. 신信은 그 글자의 구성에서 보듯이 ‘인人+언言’의 회의會意로서 그 말을 신뢰함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는 까닭은 그것을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서라고 합니다. 신信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라고 풀이되고 있지만 언言은 원래 신神에게 고하는 자기 맹세이므로 신信이란 곧 신神에 대한 맹세로 보기도 합니다. 사람들 간의 믿음이라는 뜻은 후에 파생되었다고 보지요. 그만큼 신信의 의미는 엄격한 것이지요.[171]

 

정正은 정整이며 정整은 정근整根입니다. 뿌리를 바르게 하여 나무가 잘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치의 근원적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정치란 그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잠재력을 극대화한다는 것은 바로 인간적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적 잠재력의 극대화는 ‘인간성의 최대한의 실현’이 그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 잠재력과 인간성이 바로 인간관계의 소산인 것은 다시 부연할 필요가 없지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정치란 신뢰이며 신뢰를 중심으로 한 역량의 결집이라는 사실입니다.[172]

 

진정한 지知란 무지無知를 깨달을 때 진정한 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의 지가 어느 수준에 있는 것인가를 아는 지知가 참된 지라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愚야 말로 지의 최고 형태라는 것이지요.[186]

 

세상 사람은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당신이 먼저 말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187]

 

광고 카피의 문장과 표현이 도달하고 있는 그 형식에 있어서의 완성도에 대하여는 누구나 감탄하고 있는 일이지만 광고 내용을 그대로 신뢰하는 소비자는 없습니다. 그런 경우 사史하다(사치스럽다)고 하는 것이지요. 반대로 사회운동 단체의 성명서처럼 도덕성과 정당성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서 주장을 전개하는 형식이 다듬어지지 않은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 언어를 적절히 절제함으로써 훨씬 더 진한 감동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격을 떨어트려놓아 아쉬움을 금치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지요. 질이 승하여 야野한(거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195]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 옹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199]

 

이상적인 교육은 놀이와 학습과 노동이 하나로 통일된 생활의 어떤 멋진 덩어리(일감)를 안겨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무엇을 궁리해가며 만들어내는 과정이 바로 그러한 것인데 즐거움은 놀이이고 궁리는 학습이며 만들어내는 행위는 노동이 되는 것이지요.[200]

 

맹자의 생몰 연대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공자 사후 약 100년경인 기원전 372년에 태어났다고 하며, 향년 74세에서 84, 94, 97세 등 여러 설이 많으나 사전史傳에 확실한 기록이 없습니다. 대체로 공자 사후 약 100년 뒤에 산동성 남부에서 출생했으며 이름은 가軻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자가 춘추시대 사람이라면 맹자는 전국시대 사람입니다.[211]

 

 

 

 

많은 연구자들의 일치된 견해는 공자의 인仁이 맹자에 의해서 의義의 개념으로 계승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중심 사상이 인에서 의로 이동했다는 것이지요. 인과 의의 차이에 대해서 물론 논의해야 하겠지만 한마디로 의는 인의 사회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212]

 

만약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하시면, 대부大夫들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해야 내 영지領地에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할 것이고, 사인士人이나 서민들까지도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할 것입니다. 위 아래가 서로 다투어 이利를 추구하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213]

 

『맹자』는 그의 주장과 같이 “문구의 생략과 중복이 절묘하고, 흐름이 경쾌하고 민첩하며, 비유가 풍부하고,..... 어떠한 상대도 설복시킬 정도로 논리가 정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의문, 감탄, 부정구否定句 등 문장의 형식도 다양하고 자유자재하여 한문의 문법과 예문의 교범으로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맹자』입니다.[215]

 

임금을 바꿀 수 있다는 맹자의 논리는 이를테면 민民에 의한 혁명의 논리입니다. 맹자의 민본 사상의 핵심입니다. 임금과 사직을 두는 목적이 백성들의 평안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임금을 몰아내고 현인을 새 임금으로 세울 수 있음은 물론이고 사직단도 헐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사직단은, 비유한다면 로마교황청입니다. 그로부터 임금의 권력이 나오는, 당시 최고의 종교적 권위입니다. 그러한 권위와 성역마저도 가차 없이 헐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맹자의 민본 사상입니다.[217]

 

이 점이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즐거움()과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행복의 조건 즉 낙樂의 조건은 기본적으로 독락獨樂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219]

 

사람이 모두 남에게 차마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령 지금 어떤 사람이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면 깜짝 놀라고 측은한 마음이 생길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사귀려고 하기 때문이 아니며 마을 사람이나 친구들로부터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며, (반대로 어린아이를 구해주지 않았다는) 비난을 싫어해서도 아니다.

 

이로써 미루어 볼진대 측은해 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해 하는 마음은 인仁의 싹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義의 싹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싹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知의 싹이다. 사람에게 이 네 가지 싹이 있음은 마치 사람에게 사지四肢가 있는 것과 같다.

 

이 네 가지 싹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선善을 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선한 본성을 해치는 자이고, 자기 임금은 선을 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임금을 해치는 자이다. 이 네 가지 싹을 가지고 있는 사람 누구나 그것을 키우고 확충시켜 나갈 줄 안다면 마치 막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이나 막 솟아나기 시작한 샘물처럼 될 것이다(크게 뻗어나갈 것이다). 그 싹을 확충시켜 나갈 수 있다면 그는 천하라도 능히 지킬 수 있고 그것을 확충시켜 나가지 않는다면 자기 부모조차도 제대로 모실 수 없게 될 것이다.[225]

 

잘 아는 바와 같이 이 장은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이 표명된 구절입니다. 성선설의 요지는 모든 사람은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이것을 입증하는 것으로 우물에 빠지는 어린아이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측은지심으로부터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사단을 모두 이끌어낸다는 것은 분명 논리의 비약입니다. 우물의 어린아이 이야기로써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측은지심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렇게 논리적인 비약과 무리를 남겨둔 채 서둘러서 인의예지의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매우 선언적 주장을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 장의 목적이라는 ‘사단의 확충’으로 넘어갑니다.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장에서 맹자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인의예지의 사단과 이 사단의 확충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맹자의 성선설은 다분히 윤리적 개념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매우 이데올로기적인 개념이라는 것이지요.[226]

 

반구제기反求諸己는 우리를, 나를, 내부를 먼저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운동의 원인은 내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개인이든 국가든, 자기반성自己反省이 자기 합리화나 자위自慰보다는 차원이 높은 생명 운동이 되기 때문입니다.[232. 233]

 

나는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의 지속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맹자가 사단四端의 하나로 수오지심羞惡之心, 즉 치恥를 들었습니다만 나는 이 부끄러움은 관계가 지속적일 때 형성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239]

 

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절망적인 것이 바로 인간관계의 황폐화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라는 것은 그 뼈대가 인간관계입니다. 그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가 바로 사회의 본질이지요.

 

맹자께서 말하기를, 공자께서 동산에 오르시어 노魯나라가 작다고 하시고 태산泰山에 오르시어 천하가 작다고 하셨다. 바다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하고, 성인聖人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은 언言에 대하여 말하기 어려워하는 법이다. 물을 관찰할 때는 반드시 그 물결을 바라보아야 한다(깊은 물은 높은 물결을, 얕은 물은 낮은 물결을 일으키는 법니다). 일월日月의 밝은 빛은 작은 틈새도 남김없이 비추는 법이며,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군자는 도에 뜻을 둔 이상 경지에 이르지 않는 한 벼슬에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243]

 

춘추전국시대는 결국 法家법가 사상에 의하여 통일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바와 같이 秦始皇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했습니다. 진秦이 천하를 통일한 이후에 사상계의 통일도 당연히 뒤따르게 됩니다. 焚書坑儒분서갱유도 그러한 사상 통일의 일환입니다. 유묵儒墨 논쟁이나, 유법儒法 논쟁은 일단락됩니다.

 

그러나 통일의 주역인 법가 사상은 난세亂世를 평정하는 과정에서는 대단한 역동성을 발휘했지만 치세治世의 통치 이데올로기로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적합하지 못하게 됩니다.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은 단기전에서는, 법가적 정책이 그 역량을 결집하고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가동하는 데 탁월한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국가의 진정한 부국강병을 만들어내는 데는 적합하지 못하게 됩니다. 진정한 부국강병이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부문의 자생력自生力을 길러 내고 꽃피움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이러한 장기적인 재생산성을 법가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었지요..... 그리하여 유가 사상이 지배층의 통치 이념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진한 이후의 제도 폭력이 지배하는 역사적 조건에서 피지배 계층을 중심으로 하여 저항적 지반이 광범하게 형성된 것은 역사의 필연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체의 인위적 규제를 재앙으로 규정하고, 자연이라는 근본적 질서를 회복할 것과 진정한 인간의 자유를 주창하는 노자의 반문화反文化 사상이 지배 사상에 대한 비판 담론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비판 담론뿐만 아니라 나아가 저항 담론과 대안 담론으로서 그 지반을 넓혀가게 됩니다.[256]

 

道可道 非常道名可名 非常名.....  - 1

도道라고 부를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며,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참된 이름이 아니다. 무無는 천지의 시작을 일컫는 것이고, 유有는 만물의 어미를 일컫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로서는 항상 그 신묘함을 보아야 하고, 유로서는 그 드러난 것을 보아야 한다. 이 둘은 하나에서 나왔으되 이름이 다르다. 다 같이 현玄이라고 부르니 현묘하고 현묘하여 모든 신묘함의 문이 된다.[ 263]

 

노자 철학에 있어서 무無는 ‘제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인식을 초월한다는 의미의 무입니다. 그런 점에서 무의 의미는 무명無名과 다르지 않습니다. 유명有名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인간의 인식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이지요.[264]

 

도道란 어떤 사물의 이름이 아니라 법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노자의 도는 윤리적인 강상綱常의 도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최대한의 법칙성 즉 우주와 자연의 근본적인 운동 법칙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일반적 의미의 도라는 것은 노자가 의미하는 참된 의미의 법칙, 즉 불변의 법칙을 의미하는 것이 못 됨은 물론입니다. 노자의 도는 인간의 개념적 사고라는 그릇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의 사유를 뛰어넘는 것이지요.[269]

 

결론적으로 무의 세계든 유의 세계든 그것은 같은 것이며, 현묘한 세계입니다. 유의 세계가 가시적이기 때문에 현묘하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무의 작용이며, 현상 형태이며, 그것의 통일체이기 때문에 현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아이는 단순할지 모르지만 그 어머니 때문에 복잡한 경우와 같은 것이지요.[271]

 

자연이야말로 최고最高, 최선最善, 최미最美의 모델이라는 것이 노자의 인식입니다. 천하 사람들이 알고 있는 美와 善이란 사실은 인위적인 것이라는 인식이지요. 자연스러움을 외면한 인위적인 미나 선은 진정한 미나 선이 아니라는 것이지요.[273, 274]

 

미와 선은 지역이나 시대에 갇혀 있는 사회적 개념입니다. 미와 선의 그러한 특성을 한마디로 인위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한 기존의 인위적인 미와 인위적인 선에 길들여진 우리의 관념을 반성하자는 것이 이 장의 핵심입니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제2장은 유가적 인식론과 실천론에 대한 반성입니다. 인식의 상투성을 반성하고, 나아가 실천 방식에 있어서도 그러한 인위적 작풍을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 노자의 생각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제2장의 핵심 개념은 인식과 실천의 반성입니다.[274]

 

무위無爲의 방식으로 정치를 하면 혼란이 있을 리 없다.[278]

 

노자는 또 지자智者들로 하려금 함부로 무엇을 벌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자들이 벌이는 일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자가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일들을 지자가 저지르고 있는 것이지요. 현賢을 숭상하고, 難得之貨를 귀하게 여기게 하고, 욕망 그 자체를 생산해내고, 심지心志를 날카롭게 하는 등 작위적인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 지자들이지요. 자본주의 체제하의 지자들은 특히 그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지요. 노자는 바로 이러한 일련의 작위를 경계하는 것입니다.[282]

 

노자의 철학은 한마디로 ‘물의 철학’이라고 합니다.

이 장은 매우 유명한 장입니다. 특히 ‘상선약수’上善若水는 인구에 회자되는 명구입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노자가 물을 최고의 선과 같다고 하는 까닭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입니다.

첫째,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다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투지 않는다는 것을 매우 소극적인 의미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다투어야 마땅한 일을 두고도 외면하면서 회피하는 도피주의나 투항주의投降主義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다투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주체적 역량이 미흡하거나 객관적 조건이 미성숙한 상태에서 과도한 목표를 추구하는 경우에는 그 진행 과정이 순조롭지 못하고 당연히 다투는 형식이 됩니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하는 일이 못 되는 것을 노자는 ‘쟁’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 처한다는 것이지요.... 비천한 곳, 소외된 곳, 억압받는 곳 등 여러 가지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 구절이 노자 정치학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대단히 풍부한 민초들의 정치학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286]

 

춘추전국시대는 무한 경쟁의 시대입니다. 부국강병의 방법론을 두고 수많은 이론이 속출하게 됩니다. 직접 일하지 않고 패자覇者에게 기생하여 지식을 팔고,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사사로운 이해를 도모하는 지식인 계층이 사회적으로 확대됩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노자는 패권 경쟁을 반대하고 그에 기생하는 지식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러면서도 노자는 자신의 주장을 사회학과 정치학의 차원을 넘어 철학적 논리로 승화시킵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이라는 최고의 철학적 체계를 완성합니다. 여기에 시대를 초월하고 있는 『노자』의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자는 자신의 철학적 논리로 패권 경쟁을 둘러싼 일체의 행위를 반자연의 무도無道한 작위로 단정하고 있는 것입니다.[286, 287]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품성은 백성, 즉 민중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뢰함으로써 신뢰받는 일입니다. 백성을 믿고 간섭하지 않는 것이 훌륭한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태상의 정치이며, 이를테면 무치無治입니다. 무치가 가능하기 위해서 임금은 백성을 신뢰하고 백성은 임금을 신뢰하는 관계가 성립되어야 하는 것입니다.[296]

 

노자 사상은 상당 부분이 법가 사상으로 계승되기도 합니다. ‘상선약수’를 설명하면서 언급했습니다만, 진시황의 분서갱유도 사실은 노자를 계승한 것이라고 평가됩니다. 『노자』는 도교의 기본 교리로 경전화되기도 하고, 불교 사상의 정착과 송대 성리학의 본체론과 인식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입니다. 그 이외에도 문학, 회화, 藝道, 舞蹈, 그리고 무위無爲의 관조적 삶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야에 걸쳐 깊이와 多彩를 더했다고 평가됩니다. 韓非子의 通御術, 兵家의 虛實 戰法도 노자의 영향에서 발전했음은 물론입니다.

 

노자의 철학은 귀본歸本의 철학입니다. 본本은 도道이며 자연입니다. 그런 점에서 노자의 철학을 유가 사상에 대한 비판 담론으로 규정하는 것은 노자를 왜소하게 읽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자 철학이야말로 동양 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당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 25)는 것이 노자의 철학이기 때문입니다.[305]

 

“우물 안 개구리(井底蛙)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자』 외편外篇 「추수」秋水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대목이 바로 ‘우물 안 개구리’의 출전입니다. 이 우물 안 개구리의 비유는 장자 사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조敎條에 묶인(束於敎) 굽은 선비(曲士)들이 바로 우물 안 개구리와 같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도道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일갈一喝합니다.[309]

 

근본적인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와 해방’에 있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입니다. 이른바 장자의 자유주의 철학입니다. 개인을 지도, 감독, 보호하려는 일체의 행정적 또는 이념적 규제를 ‘인위적 재앙’으로 파악하였습니다. 춘추전국시대는 거대한 사상적 혼란기였습니다. 사이비 사상가와 철학자들이 횡행하는 이른바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상은 그 시대를 조망할 수 있는 것이 못 되었음은 물론이고 겨우 패권 경쟁을 위한 정책 대한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어서, 결과적으로 우물을 벗어나지 못한 개구리에 지나지 않으며 여름을 넘기지 못하는 메뚜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장자의 생각입니다.[310]

 

장자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 『장자』 제1편 「소요유」逍遙遊입니다. ‘소요유’는 글자 그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입니다. 소요逍遙는 보행步行과는 달리 목적지가 없습니다. 소요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하릴없이 거니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소요는 보행보다는 오히려 무도舞蹈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춤이란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동작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동작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장자의 소요유는 ‘궁극적인 자유’, 또는 ‘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보여주기 위한 개념입니다. 인간의 삶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어떠한 가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소요유의 의미이고 나아가 장자 사상의 핵심입니다.[311]

 

아마 이러한 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 때문에 우리의『장자』 독법이 부정의 철학으로 기울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장자의 소요유가 단지 소요를 위한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소요유는 장자의 고차원의 사회 철학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312]

 

『노자』의 서술 방식은 사설辭說을 최소한으로 하는 엄숙주의가 기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내용에 있어서도 최소한의 선언적 명제命題에 국한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장자』는 만연체를 기조로 하면서 허황하기 짝이 없는 가공과 전설 그리고 해학과 풍자로 가득 차 있습니다. 두 책의 제1장이 그러한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314]

 

장자의 세계에서 최고의 경지는 도를 터득하여 이를 실천하는 노자의 경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도와 일체가 되어 자유자재로 소요하는 경지를 의미합니다. 아무것도 기대지 않고(無待), 무엇에도 거리낌 없는(無碍) 경지가 장자의 절대 자유의 경지라 할 수 있습니다.[318]

 

『장자』가 우리 시대에 갖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대안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자』가 우리들에게 펼쳐 보이는 드넓은 스케일과 드높은 관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한 스케일과 관점은 바로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깨달음은 그 자체로서 귀중한 창조적 공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바라보는 것이지요.[319]

 

사물은 어느 것이나 저것 아닌 것이 없고 동시에 이것 아닌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대적 관점(自彼)에 서면 보지 못하고 주관적 관점(自知)에서만 본다. 그래서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은 저것으로부터 말미암는다고 하여 이것을 (혜시惠施는) ‘저것과 이것의 모순 이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生과 死, 사와 생 그리고 可와 不可, 불가와 가는 (서로가 서로의 존재 조건이 되는) 모순 관계에 있다. 가가 있기에 불가가 있고 불가가 있기에 가가 있는 법이다. 그러기에 성인은 특정한 입장에 서지 않고(不由) 하늘에 비추어 본다고 하는 것도 역시 이 때문이다.[322]

포정이 칼을 놓고 대답했다.

 

“제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道입니다. 기술을 넘어선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온통 소뿐이었습니다. 3년이 지나자 소의 전체 모습은 눈에 띄지 않게 되었지요. 지금은 마음으로 소를 대할 뿐 눈으로 보는 법은 없습니다. 감각은 멈추고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입니다. 천리天理에 의지하여 큰 틈새에 칼을 찔러넣고 빈 결을 따라 칼을 움직입니다. 소의 몸 구조를 그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아직 한 번도 인대를 벤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큰 뼈야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324]

 

밭일을 하던 노인은 불끈 낯빛을 붉혔다가 곧 웃음을 띠고 말했다.

“내가 스승에게 들은 것이지만 기계라는 것은 반드시 기계로서의 기능(機事)이 있게 마련이네. 기계의 기능이 있는 한 반드시 효율을 생각하게 되고(機心), 효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본성을 보전할 수 없게 된다네(純白不備). 본성을 보전하지 못하게 되면 생명이 자리를 잃고(神生不定) 생명이 자리를 잃으면 도道가 깃들지 못하는 법이네. 내가 (기계를)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이 여겨서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뿐이네.[329]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짚어보지요. 장자의 논거는 오늘날의 논의와는 그 장을 달리 합니다. 기계로 말미암아 노동이 종속적 지위로 전락하고,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경멸적 문화가 자리 잡는 그러한 일련의 반 노동 과정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지요. 좀 더 근원적인 문제를 꿰뚫어보고 있습니다. 일과 놀이와 학습이 통일된 형태가 가장 바람직한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계는 바로 이 통일성을 깨트리는 것이지요. 노동은 그 자체가 삶입니다..... 노동이 삶 그 자체, 삶의 실현임에도 불구하고 기계로 말미암아 노동이 다른 목적의 수단으로 전락되는 것이지요. 노동을 그 본연의 지위로부터 끌어내리는 일을 기계가 하지요.[331]

 

(목수) 윤편이 말했다.

“신은 신의 일(목수 일)로 미루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수레바퀴를 깎을 때 많이 깎으면(축 즉 굴대가)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하여 *굴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한 깎음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뿐 입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더 깎고 덜 깎는) 그 중간에 정확한 치수가 있기는 있을 것입니다만, 신이 제 자식에게 그것을 말로 깨우쳐줄 수가 없고 제 자식 역시 신으로부터 그것을 전수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흔 살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손수 수레를 깎고 있습니다. 옛사람도 그와 마찬가지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전하지 못하고(글로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337]

 

나비 꿈

어느 날 장주莊周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재미있게 지내면서도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깨어보니 다시 장주가 되었다. (조금 전에는)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고 (꿈에서 깬 지금은)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꾸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 무슨 구분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이를 일컬어 물화物化라 한다.

 

장자를 夢蝶主人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 ‘나비 꿈’ 때문입니다. 장자 사상을 대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핵심적인 의미를 놓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비 꿈’은 인생의 허무함이나 무상함을 이야기하는 일장춘몽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장자의 ‘나비 꿈’은 두 개의 사실과 두 개의 꿈이 서로 중첩되어 있는 매우 함축적인 이야기입니다. 첫째는 장자가 꾸는 꿈이며 둘째는 나비가 꾸는 꿈입니다. 이 두 개의 꿈은 나비와 장자의 실재實在가 서로 침투하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이것은 9만 리 장공長空을 날고 있는 붕새의 눈으로 보면 장주와 나비는 하나라는 것이지요. 장주와 나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는 개별적 사물은 미미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요. 커다란 전체의 미미한 조각에 불과한 것이지요.[345]

 

묵자에 관한 『사기』의 기록은 단 24자입니다. “묵적은 송宋나라 대부로서 성城을 방위防衛하는 기술이 뛰어났으며 절용을 주장하였다. 공자와 동시대 또는 후세의 사람이다.”라는 기록이 전부입니다. 현재의 통설은 묵자는 은殷나라 유민遺民들의 나라인 송 출신으로 주周 시대의 계급 사회로 복귀하는 것을 반대하고 우禹 시대의 공동체 사회를 지향하며, 일생 동안 검은 옷을 입고 반전反戰, 평화, 평등 사상을 주장하고 실천한 기층 민중 출신의 좌파 사상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367, 368]

 

공자는 서주西周 이래의 예악禮樂에 나타난 귀족 중심의 통치 질서를 새로운 지식인(君子)의 자기 수양과 덕치德治의 이념을 통하여 회복(維新)하려고 노력했지요. 이네 반하여 묵자는 종래 귀족 지배 계층의 행동 규범인 예악을 철저히 무정하고 유가의 덕치 이념 대신에 생산에 참여하는 모든 인민의 협동적 연대(兼相愛)와 경제적 상호 이익(交相利)을 통하여 사회를 새롭게 조직하려고 했습니다. 유가와는 달리 숙명론을 배격하고 인간의 실천 의지, 즉 힘()을 강조합니다. 실천 의지를 추동推動하기 위한 장치로서 귀鬼와 신神의 존재를 상정하고, 그리고 천자의 절대적 통치권을 주장합니다. 만민 평등의 공리주의公利主義와 현자 독재론賢者獨裁論을 표방합니다. 묵가 학설의 이러한 개혁성과 민중성은 유가 사상과 대항하면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러한 과도기가 끝나고 중국 사회가 토지 사유를 중심으로 하는 지주 관료 계층의 엄격한 가부장적 신분 사회로 정착되면서 묵가학파는 사라지게 됩니다. 상하의 계층적 차별을 무시하고 평등주의를 주장하는 묵가 학설은 결국 그 학설의 사회 경제적 기반의 와해와 함께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지요.[372, 373]

 

天下之亂物皆起不相愛   - 兼愛

사회의 혼란은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374]

그렇다면 겸상애와 교리지법이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묵자가 말하기를, 그것은 다른 나라를 자기 나라 보듯이 하고, 다른 가家 보기를 자기 가 보듯이 하고, 다른 사람 보기를 자기 보듯이 해야 한다.[375]

 

성악설은 인성론이 아니라 순자의 사회학적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교육론과 예론禮論, 제도론制度論을 전개하기 위한 근거로 구성된 개념이라는 사실입니다. 전국시대의 사회적 혼란의 제거를 실천적 과제로 삼았던 순자가 그의 주장을 개진하는 과정에서 천론에 대한 비판과 함께 성선설의 관념성을 비판하는 것이 바로 성악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다. 선이란 인위적인 것이다. 사람의 본성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이익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본성을 그대로 따른다면 쟁탈이 생기고 사양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사람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질투하고 증오하는 마음이 있다. 이러한 본성을 그대로 따르면 남을 해치게 되고 성실과 신의가 없어진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감각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본성을 그대로 따르면 음란하게 되고 예의와 규범이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본성을 따르고 감정에 맡겨버리면 반드시 싸우고 다투게 되어 규범이 무너지고 사회의 질서가 무너져서 드디어 천하가 혼란에 빠지게 된다.  - 性惡 [413]

 

예禮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가? 사람은 나면서부터 욕망을 가지고 태어난다. 욕망이 충족되지 멋하면 그것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욕망을 추구함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이 없다면 다툼이 일어나게 된다. 다툼이 일어나면 사회는 혼란하게 되고 혼란하게 되면 사회가 막다른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옛 선왕이 이러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예의를 세워서 분별을 두었다. 사람의 욕구를 기르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되, 욕망이 반드시 불질적인 것에 한정되거나 물物이 욕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일이 없도록 함으로써 양자가 균형 있게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예의 기원이다. 그러므로 예란 기르는 것이다.  - 禮論[418]

 

유가나 묵가는,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백성은 임금을 부모와 같이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법관이 형벌을 집행하면 음악을 멈추고, 사형 집행 보고를 받고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 선왕의 정치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자식은 부모를 따르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임금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할 수는 없다. 눈물을 흘렸다면 그것은 임금이 자기의 인仁은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좋은 정치를 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해내海內의 모든 사람들이 공자의 인仁을 따르고 그 의義를 칭송했지만 제자로서 그를 따른 사람은 겨우 70명에 불과했다. 임금이 되기 위해서는 권세를 장악해야 하는 것이지 인의를 잡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금의 학자들은 인의를 행해야 임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임금이 공자같이 되기를 바라고 백성들이 그 제자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나 마차가지이다.[434]

 

한비자(BC. 280-233)는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법가의 대표입니다.... 법가 사상 형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람으로 먼저 제齊나라의 관중管仲을 듭니다..... 이러한 중앙 집권적 체제를 가장 성공적으로 수립하고 단기간에 부국강병을 이끌어낸 나라가 바로 진秦나라였습니다. 그것을 추진한 사람은 재상인 상앙商?이었습니다.[437, 439]

 

 

 

 

항상 강한 나라도 없고 항상 약한 나라도 없다. 법을 받드는 것이 강하면 강한 나라가 되고, 법을 받드는 것이 약하면 약한 나라가 된다. 법은 귀족을 봐주지 않는다. 먹줄이 굽지 않는 것과 같다. 법이 시행됨에 있어서 지자智者도 이유를 붙일 수 없고 용자勇者도 감히 다투지 못한다. 과오를 벌함에 있어서 대신도 피할 수 없으며, 선행을 상줌에 있어서 필부도 빠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윗사람의 잘못을 바로잡고, 아랫사람의 속임수를 꾸짖으며, 혼란을 안정시키고 잘못을 바로잡으며,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공평하게 하여 백성들이 따라야할 표준을 하나로 통일하는 데는 법보다 나은 것이 없다. 관리들을 독려하고 백성들을 위압하며, 음탕하고 위험한 짓을 물리치고 속임과 거짓을 방지하는 데는 형보다 나은 것이 없다. 형벌이 엄중하면 귀족이 천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못하며, 법이 자세하면 임금은 존중되고 침해받는 일이 없다. 임금이 존중되고 침해받는 일이 없으면 임금의 권력이 강화되고 그 핵심을 장악하게 된다. 그러므로 옛 임금들이 이를 귀중하게 여기고 전한 것이다. 임금이 법을 버리고 사사롭게 처리하면 상하의 분별이 없어진다. [441]

 

춘추전국시대가 법가에 의해 통일되고 이 과정에서 형성된 중앙집권적 전제군주 국가라는 권력 형태는 진秦을 거쳐 한漢으로 이어지고 다시 역대 왕조를 거쳐 20세기 초 신해혁명 때까지 이어짐으로써 2천 년 이상 지속되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448]

 

탁과 밭 책과 현실

정나라에 차치리라는 사람이 있었다. 자기의 발을 본뜨고 그것을 그 자라에 두었다.

시장에 깔 때 탁을 가지고 가는 것을 잊었다. 신발을 손에 들고는 탁을 가지고 오는 것을 깜박 잊었구나 하고 탁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다시 시장에 왔을 때는 장은 이미 파하고 신발은 살 수 없었다. (그 사정을 듣고)사람들이 말했다. “어째서 발로 신어보지 않았소?”(차치리의 답변은) “탁은 믿을 수 있지만 내 발은 믿을 수 없지요.”[451]

 

불교사상은 관계론의 보고라 할 수 있습니다. 연기론은 그 자체가 관계론입니다.[471]

 

모든 투쟁은 사상 투쟁에서 시작한다고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깨달음의 의미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깨달음의 의미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깨달음의 의미를 지극히 명상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은 고전 읽기의 시작이며 그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477]

 

과거란 지나간 것이거나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는 흘러가고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는 다같이 그 자리에서 피우고 지는 꽃일 따름입니다.[505]

우리의 창신은 결과적으로 온고창신이라는 보다 현실적인 곡선의 형태로 수정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교조와 우상을 과감히 타파하는 동시에 현실과 전통을 발견하고 계승하는 부단한 자기 성철의 자세화 상생의 정서를 요구하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고전 강독이 바로 그러한 자세와 정서를 바탕으로 진행되었다고 생각합니다.[505]

 

동양적 삶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인성의 고양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인성의 내용이 바로 인간관계이며 인성을 고양한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은 인으로 나아가고 인은 덕으로 나아가고 덕은 치국으로 나아가고 치국은 평천하로 나아갑니다.[506]

 

시와 산문을 읽는 것은 바로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가슴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조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문사철과 나란히 시서화에 대한 교육을 병행해왔다는 이야기를 강의 초반에 나누었습니다.[509]

 

사상은 감성의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합니다. 사상은 이성적인 논리가 아니라 감성적 정서에 담겨야 하고 인격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성과 인격은 이를 테면 사상의 최고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상은 그 형식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의 육화된 사상이 되지 못합니다.[509]

 

사상은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것입니다. 단지 주장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의 사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509]

 

 

IP *.126.231.229

프로필 이미지
정야
2009.11.17 16:09:41 *.11.176.203
맑은 정신으로 골라먹은 느낌이다. '사업이 최고의 예술'에 이르렀구나.ㅎㅎ
내가 '경영이 삶'이라는 걸 깨친것 만큼이나 비트가 있다. 넌 이미 '함께'였는데 더 깊은 관계와 함께 한다면
예술가로 우뚝서게 될 것이라 믿는다. 철이도 홧팅!!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32 주역강의 -서대원 혁산 2009.11.23 3833
2131 오쇼의 장자강의 [2] 효인 2009.11.23 3358
2130 동양고전 선택- <순자 荀子> [2] 예원 2009.11.23 4579
2129 북리뷰 31 : How to Live , 갈림길에서 삶을 묻다. [1] 범해 좌경숙 2009.11.23 2435
2128 논어한글역주 - 김용옥 지음 [2] 숙인 2009.11.23 4912
2127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 [1] 백산 2009.11.23 4439
2126 장자 - 오강남 풀이 [2] [3] 書元 이승호 2009.11.23 4785
2125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 신영복 file [4] 숙인 2009.11.17 6256
» 나의 동양고전 독법 - 강의 [1] 혁산 2009.11.17 2399
2123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2] 효인 2009.11.17 2269
2122 '강의, 나의 동양 고전 독법' - 신영복 [1] 희산 2009.11.17 2130
2121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file [1] 예원 2009.11.17 2575
2120 나의 동양 고전 독법 강의 - 신영복 [1] 혜향 2009.11.17 2293
2119 북리뷰 30 : 신영복 - 강의 [4] 범해 좌경숙 2009.11.17 3141
2118 [30]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 인용문 수희향 2009.11.17 2568
2117 [30]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 저자 & 내가 저자라면 [1] 수희향 2009.11.17 2438
2116 운동학습과 제어 [3] 백산 2009.11.16 13573
2115 나의 동양고전 독법-강의(신영복) [2] 書元 이승호 2009.11.15 3202
2114 '니체, 천 개의 눈, 천개의 길' - 고병권 file 희산 2009.11.09 3147
2113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고병권 정야 2009.11.09 2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