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어느 66세 창업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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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9.19. 오후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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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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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임상연 중견중소기업부장] 2009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금요일 오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소비재기업의 한 임원은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 64세.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한 나이가 아니지만 조직에서 존재 의미를 부정당한다는 것은 누구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처다. 그는 그날, 회사 앞 레스토랑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기다린 아내와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셨다고 한다. 아마도 40년 경력의 베테랑을 밀어낸 회사를 안줏거리로 삼지 않았을까.

남들과 달랐던 것은 그 이후다. 손주를 돌보거나 체스를 두면서 소일하는 흔한 노년 대신 직장 경험을 바탕으로 2011년 친환경 포장재 전문 벤처기업을 차린 것. 환경을 파괴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재를 대체하는 사업이다. 그의 나이 66세에 시작한 인생 2막이었다. 때마침 친환경 포장재 수요가 늘면서 회사의 수익은 매년 2배가 늘었고, 각종 특허와 20개 넘는 기술 및 환경 관련 상도 받았다.

미국 유망 벤처기업 펄프웍스(PulpWorks)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최고경영자)인 폴 태스너(73)의 이야기다. 그는 지난해 6월 글로벌 지식공유플랫폼 테드(TED) 강연에서 자신의 창업스토리를 약 7분간 진솔하게 전했다. 늦깎이 창업을 결심한 이유부터 자금조달 등 창업과정까지 몇 마디 단어로 재치있게 설명했지만 결코 쉽지 않았을 그의 창업 스토리는 깊은 여운을 줬다.

그는 특히 강연에서 “젊은 창업가에 대해 이야기하듯 나이 든 창업가에 대해서도 더 많은 이야기를 하자”며 시니어 창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을 역설했다. 오랜 경력과 열정을 지닌 시니어 창업가들도 젊은 창업가들 못지 않게 모든 부문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시니어 창업이 고령화 문제와 일자리 창출에 일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태스너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재인정부는 창업정책을 청년에게 집중하지만 사실 창업이 가장 활발한 연령대는 40대 이상 시니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체 신설법인 10곳 중 7곳 이상은 시니어(72%)가 세웠다. 이중에는 60대 이상이 설립한 기업이 5438개사로 30대 미만(3599개사)보다 많다. 창업기업 생존율도 시니어가 우수하다. 정부가 창업을 지원한 기업 중 30대 미만 연령대의 5년 생존율은 19.5%에 그쳤지만 40대 57.9%, 50대 55.1%, 60대 이상도 46.3%에 달했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국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피에르 아주레이 교수팀이 2007~2014년 미국에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설립한 270만명의 창업가를 조사한 결과 창업 당시 평균나이는 41.9세였다. 성장률 상위 0.1%에 드는 고성장 스타트업 창업가의 경우 평균 45세로 더 높다. 아주레이 교수는 40대 이상 시니어의 창업이 더 활발하고 성공 가능성도 높은 이유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쌓은 지식과 인맥 등 ‘경험’을 꼽는다.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그들의 열정에 경험이 불쏘시개가 된 것이다.

최근 자영업 위기와 일자리 감소가 국내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특히 가뜩이나 과밀화된 자영업 시장에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시니어가 몰리면서 악순환이 반복되는 모습이다. 정부가 청년창업 못지않게 시니어 창업에도 관심을 보여야 하는 이유다. 시니어 창업은 고용 및 자영업 시장의 꼬인 실타래를 푸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시니어의 열정과 경험을 사회·경제적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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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연 중견중소기업부장 syl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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