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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 아들, 최환희를 불러내는 방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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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빈섬의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어린 진아는 수술실에서 맹장염 수술을 받고 있고, 병원 복도에선 엄마인 세영이 초조한 표정으로 서성거리고 있다. 그 수술이 생사를 가를 위험한 일은 아니지만, 엄마는 딸이 겪고 있을 고통과 불안을 감정이입하며 몹시도 힘겨워한다. 수술이 끝난 뒤 달려가 아이에게 "엄마를 알아볼 수 있겠니?"라고 묻는 엄마. "그럼. 내가 왜 엄마를 몰라봐?"라고 답하는 딸. 그렇게 모녀가 나누는 대화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코끝이 시큰해짐을 느꼈다.

엄마 세영으로 나온 사람은 고인이 된 탤런트 최진실이다. 딸은 6년전 남편이 재혼하면서 데려온 자식이었지만 그녀는 친딸 이상으로 아이를 사랑했다. 하지만 남편 건우(이재룡 열연)는 헤어졌다던 친모 서경(성현아 열연)과 여전히 만나고 있었고, 그런 배신 속에서 겪는 여인의 충격과 고뇌를 다룬 드라마 '나쁜 여자 착한 여자'(2007년 상반기 MBC)는 선과 악, 그리고 낳은 자식과 키운 자식, 사랑과 불륜의 경계를 뒤흔들며 안방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고(故) 최진실과 자녀 환희와 준희. 아래는 일기 기록들.

고(故) 최진실과 자녀 환희와 준희. 아래는 일기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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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의 모성애 연기가 그토록 절절해보였던 것은, 그녀의 감정 표현력이 출중했기 때문인 점도 있지만, 세상의 부조리 속에서도 순수하고 애틋한 사랑을 퍼붓는 한 여인이 부당하게 감당해야 하는 삶의 시련에 대한 깊은 동정 때문이었던 점도 있을 것이다. 그녀의 모성애가 현실 속에서 향해야 했을 두 사람은 최환희와 최준희다. 아이들의 성을 엄마인 자신의 것으로 해야 했던 저간의 사정들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하지만 그만큼 그들이 자신의 분신이었음을 말해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그런 두 아이를 세상에 놔둔 채 그녀는 8년 전 이승을 떴고, 아이들은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을 부당하게 감당하며 이후의 생을 살아왔을 것이다.

최진실의 타계는 국민트라우마였다. 대중은 최고의 탤런트를 하루 아침에 잃어버린 '공황'을 경험해야 했고 후유증은 지금도 다 삭여지지 않을만큼 깊고 길었다. 2008년 그녀에 대한 충격을 수습하기도 전에, 2010년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의 부음을 들었고, 2013년 최진실과 이혼한 환희의 아빠 조성민의 유고(有故)를 접했다. 이 비극적인 가족사 앞에서 국민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고, 그 충격적인 사건의 정면(正面)을 들여다보기도 힘겨웠다. 까닭 없는 죄책감과 이유 없는 울분 따위가 서성거렸을 뿐, 그들의 이야기는 저 '절벽' 앞에서 뚝 끊겨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MBC'위대한 유산'에 출연한 최환희.

MBC'위대한 유산'에 출연한 최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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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28일. MBC는 '위대한 유산- 도시아이 시골살이'란 예능프로그램으로 최진실의 아들 최환희를 불러냈다. 환희는 그 사이에 더욱 의젓하게 성장해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는 스타들(김구라, 두산 베어스 홍성흔, 농구선수 현주엽)의 자녀들이 함께 출연해, '피'는 못 속이는 '끼'의 유전을 보여준다. 많은 이들은 최환희의 곱고 깔끔한 외모에서 최진실을 발견했을 것이고, 조성민의 흔적을 찾아내기도 했을 것이다. 혹자는 최진영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했을 것이다. 환희를 보는 많은 시선은 어쩔 수 없이 착잡하고 복잡할 수 밖에 없다. 그 아이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을 '위대한 유산'은 무엇일까. 엄마처럼 연기를 하고 싶다고 밝힌 그 DNA는 더할 나위 없는 '유산'이지만, 부모들의 불행과 고통이 남긴 그림자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일은 그 유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방송과 대중들은, 환희를 바라보는 일을 안쓰러워 하면서도, 자꾸 그를 불러낸다. 2년전 최환희의 근황이 불쑥 소개된 것은 제주 자치단체 관련기관의 페이스북에서였다. 2013년 가을에 그는 영국 NLCS의 분교인 제주 국제학교에 입학했다. 페이스북에서 환희는 학교에서 배우는 드라마 수업이 재미 있다고 말했고, 나중에 엄마처럼 연기를 하고 싶다고도 했다. 환희는 외할머니(최진실의 모친) 정옥숙씨가 돌봐왔는데, 제주의 학교로 온 뒤로는 혼자서 지내야 했다. 학교 친구들과 사귀면서 외로움을 많이 타던 성격이 변했다고 한다.

2014년 5월 SBS '좋은 아침'에 그가 등장했다. 외할머니, 동생과 더불어 엄마의 묘소를 찾아가는 장면이 비쳤다. 그해 10월 EBS '인생수업'에도 출연했다. 행복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동생의 죽음으로 한때 좌절했던 가수 요조와 동행했다. 이 여행에서 팔다리를 모두 잃은 닉 부이지치란 호주인을 만난다. 그는 오체불만족의 삶을 살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웅변하는 '행복전도사'였다. 환희는 이런 말을 했다. "내게 부모가 없는 것이나 그분이 사지가 없는 것이 모두 같은 고통일텐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환희는 자신의 최근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어머니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이해는 가지만, 나를 버리고 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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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2일 고(故) 최진실 7주기 추모식에서 환희는 제주 국제학교에서 연기수업에 올인하고 있으며 1년 뒤 전공과목으로 결정해 연기자의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그의 롤모델은 황정민 배우이며 그와 같이 멋진 연기를 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갖은 난관을 딛고 일어서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17세 소년에게서 우린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 불행하게 종지부를 찍은 부모가 못다한 삶을 자식이라도 이뤄내주기를 바라는 인지상정일까. 아니면 그 가족이 겪은 고통과 참담과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도와줄 수 없었던 우리 모두의 '부채 의식'이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일까.

하지만 최환희를 방송으로 호출하는 일이, 그를 위한 일인지 그저 우리의 '궁금한 시선'을 위한 일인지를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가 연기자의 길을 걷도록 도와주고 싶은 그 마음이야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임에 틀림 없지만, 아직 성장기에 있는 환희의 삶을 지나치게 '공적인 자리'로 드러나게 하는 일, 그래서 그가 선택사항이 아닌 운명의 무대로 타의에 의해 떠밀어 올려져 또다른 불행이 되도록 하는 것은, 대중적 죄악에 가깝다. 운명에 상처입은 영혼을 조심스럽게 보듬어줘야 하는 것은, 뒤늦게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자꾸 조명을 비춰 그를 쇼윈도에 앉히는 일보다 중요하고 급한 것은 그 스스로 뜻을 세워나갈 수 있게, 가만히 지켜주는 일이다. 어린 진아의 수술실 밖에서 노심초사하던 엄마 세영의 마음처럼 말이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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