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영화]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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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지난 1세기 동안 끊임없이 인간의 삶과 죽음을 탐구해 왔다. 그 중에서도 특정 인물 또는 집단의 생존기를 다룬 영화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인간이 감당하지 못할 재난 상황을 전제해야 하는 생존 영화들은 인물의 사투를 통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자체로 드라마틱하고 사람들에게 더 강한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시대의 사상과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했던가. 최근 영화들을 살펴보면 영화는 극중 인물들을 점점 더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과연 인물들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영화 ‘캐스트 어웨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공간도 다양하다. 높은 산이나 협곡에서 조난 당하는 인물들이 있는가 하면(‘에베레스트’, ‘127시간’ 등),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지는 인물도 있고(‘캐스트 어웨이’, ‘라이프 오브 파이’ 등), 저 먼 우주 행성에 갇힌 인물들도 있다(‘마션’, ‘인터스텔라’ 등). 오늘은 사건이 펼쳐지는 공간별로 세 편의 생존 영화를 골랐다.

BEST 1. 망망대해에서 살아남기 ‘라이프 오브 파이’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등을 연출한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은 이미 세계적인 거장이다. 그의 첫 3D 영화로도 주목받은 작품 ‘라이프 오브 파이’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브로크백 마운틴’에 이어 이안 감독에게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긴 영화다.

주인공 파이(본명 피신)는 가족들과 함께 인도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 화물칸에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동물원의 동물들을 태웠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폭풍을 만나 배가 뒤집어지고, 바다 위 구명보트에는 파이와 다리를 다친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 그리고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의 호랑이만이 살아 남는다. 다른 동물들을 공격하고 날뛰던 하이에나가 결국 호랑이에게 제압당하고, 호랑이와 단 둘이 남게 된 파이는 위치도 알 수 없는 망망대해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는 원작 소설이 가진 풍부한 이야깃거리들을 담아내면서도, 3D 기술을 통해 다층적인 이야기의 시각적인 구현에도 성공을 거둔 영화다. 맹수와 함께 바다에 표류한 파이의 처절한 생존기와 관객들의 눈을 황홀하게 하는 영상미가 대비를 이루는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단순한 생존 영화에 머무르지 않고 후반부에 등장하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극장 밖을 나서는 관객들을 깊은 생각에 잠기게끔 만드는 영화다. 4월 12일 재개봉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BEST 2. 외떨어진 우주에서 살아남기 ‘그래비티’

영화 ‘그래비티’


‘라이프 오브 파이’와 같은 해 개봉한 영화 ‘그래비티’는 개봉과 함께 숱한 화제를 불러모았던 작품이다. “우주를 담은 영화는 ‘그래비티’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은선 기자)이라는 극찬과 함께 2013년 올해의 영화 목록에 올랐는가 하면, 반대로 그 해의 과대평가된 영화 목록에도 숱하게 오르내렸다. 사람들의 말이야 어찌됐건 화제가 된 덕분에 1억 달러의 제작비로 전 세계에서 7억 달러를 벌어들였고(국내 관객 수 322만 명), 아카데미에서도 감독상을 포함해 무려 7관왕에 올랐다.

딸을 잃고 도망치듯 우주로 온 엔지니어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 분)는 동료들과 위성 정비 작업을 하던 중,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한다. 파괴된 러시아 위성의 잔해들이 날아와 충돌한 것. 동료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고 라이언은 광대한 우주에 홀로 남게 된다. 산소는 부족하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슬픔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던 라이언은 살기 위해 지구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 영화에는 ‘살기 위해 우주에서 지구로 돌아간다’는 한 줄 시놉시스 속에 담지 못할 이야깃거리들이 제법 많다. 황홀한 경험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오프닝 롱테이크 장면과 우주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 산드라 블록의 연기 등 90분의 러닝타임 속에서 관객들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특히나 관객들이 극한의 상황에서 삶의 의지를 되찾아가는 주인공 라이언에게 깊이 몰입을 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21세기 가장 눈여겨봐야 할 SF 영화 중 한 편이다.

BEST 3. 무너진 터널에서 살아남기 ‘터널’

영화 ‘터널’


‘터널’은 ‘끝까지 간다’의 김성훈 감독이 만들고 하정우, 배두나가 주연으로 나선 영화다. 소재원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정수(하정우 분)는 터널을 지나던 중 터널이 무너져 그곳에 갇힌다.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 분)은 발을 동동 구르고 구조대원들은 정수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보지만 쉽지 않다.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가는데, 정수의 일이 남의 일인 사람들은 자기 잇속을 챙기느라 혈안이다.

‘터널’은 굉장히 현실적이고 시니컬한 재난 영화인 동시에 낙천적인 생존 영화다. 터널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무척 적지만, 사실 우리 일상에서 재난은 불청객처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이미 여러 차례 확인했다. 별안간 무너져 내린 다리, 별안간 무너진 백화점, 별안간 침몰한 여객선, 갑작스레 불이 붙어 순식간에 전소돼 버린 건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사회에는 부실 공사와 비리가 만연하고,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곳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남기가 미션인 시대를 살고 있다. ‘터널’은 그 지점을 정확히 지적하는 현실적인 영화다.



하지만 영화는 슬픔과 우울함만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 “생명이 승리하는 걸 보고 싶었다”는 김성훈 감독의 인터뷰처럼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영화 곳곳에 유머러스하고 인간미 넘치는 장면들을 배치해 놓았다. 특히 극중 정수와 강아지 ‘탱이’가 보여주는 케미는 장면을 빛내기까지 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거의 1인극에 가까운 연기를 펼치면서도 결코 지치지 않는 하정우에게 빚을 지고 있다. ‘터널’ 속 터널 생존기를 통해 하정우라는 배우가 만개하고 있음을 실감하는 영화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필자 소개

이상헌. 영화를 혼자 보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 시간은 한정적이지만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인생은 짧고 볼 만한 영화는 너무나 많다.

[이상헌 영화 칼럼니스트 2sanghac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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