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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바야흐로 결혼의 계절입니다.
ⓒ 임윤수
바야흐로 성혼의 계절인 가을입니다. 지금이야 계절에 관계없이 세트장처럼 마련된 예식장에서 통과의례 같은 결혼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결혼이란 인륜지대사라 할 만큼 한 집안의 큰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응당 곡식을 거둬들여 조금은 풍부해지는 수확의 계절인 가을에 결혼이 주로 이루어졌던 게 당연한 일일 겁니다. 요즘이야 결혼을 한다고 해도 모든 게 다 상품화 되어 있으니 별다른 준비 없이 돈만 있으면 되는 시절이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혼 적령기에 가까운 아들이나 딸이 있으면 아름아름 혼수를 준비하고 예단을 마련하였습니다. 새댁이 될 처녀가 되면 어머니로부터 살림하는 법을 공부하는 것은 물론 원앙금침의 베개 마구리가 될 헝겊에 희(囍)자를 수놓고, 시부모님들이 앉을 푹신한 방석을 만들기 위해 고운 천에 오색실로 한 땀 한 땀 수(壽)자 등을 수놓던 일들이 바로 결혼을 준비하던 그때의 모습들이었습니다.

결혼 며칠 전부터 일가친척들이 모여 이불바느질을 하고 결혼식 때 사용할 음식을 마련하였습니다. 나라에서 금지했지만 밀주도 몰래 담그고, 식혜도 담갔습니다. 한두 마리의 돼지를 잡고 떡은 물론 부침개와 전들도 풍족하게 부치니 이웃집에 결혼식이 있으면 그 동네는 몇 며칠 동안 고소한 기름 냄새로 덩달아 코를 벌름거려야 했습니다.

▲ 폐백대추는 결혼을 하였으니 반드시 아들을 낳으라는 그런 의미뿐 아니라 왕과 같은 자식을 두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 임윤수

▲ 대추는 결혼식에서 뿐 아니라 제상에서도 으뜸의 과실로 올려집니다.
ⓒ 임윤수
결혼이 있는 가을이면 그 집에선 유난히 김치도 많이 담가야 했고 집 단장에도 신경을 써야 했으니, 결혼식 날 하루쯤 복작거리는 요즘의 결혼식과는 일찌감치 준비도 마음도 달랐습니다. 시대가 변하니 풍속도 변하여 요즘은 부조를 한다고 해야 기껏 돈 봉투를 접수시키는 일에 불과하지만 예전의 부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때도 돈을 부조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결혼식에 꼭 필요한 음식이나 물건을 부조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주떡이나 무지개떡을 해오고 술을 담가오기도 했지만 옷감이나 잔치에 소용되는 약과 등을 부조하기도 했습니다.

결혼식은 물론 그 준비 과정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이토록 변했지만 결혼식 때 드리는 폐백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폐백은 혼례 때 새 식구가 될 신부가 시부모나 그밖의 시댁 어른들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기 위해 준비하는 특별한 음식을 말합니다. 이렇듯 새댁이 시댁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느라 차리는 폐백음식에는 폐백닭이나 폐백산적도 있지만 빠트리지 않는 것은 폐백대추와 밤입니다.

밤과 대추는 폐백에뿐만 아니라 제사를 지낼 때도 빠지지 않는 조율시이(대추, 밤, 곶감, 배)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대소사를 막론하고 의식에 사용되는 모든 것에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은 뜻이 있듯 폐백이나 제상에 올리는 음식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 3톨의 밤알은 3정승을 의미합니다.
ⓒ 임윤수

▲ 밤송이의 가시부터 고소한 알밤에까지 깊고도 깊은 그런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 임윤수
결혼식장에서 부모님들께 폐백을 드리며 분명 받았을 대추나 밤, 조상들의 음덕을 기리며 지냈던 제상에 올렸던 대추와 밤은 물론 곶감과 배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를 알고 계셨습니까? 가문과 지방에 따라 그 해석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필자 역시 사실은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폐백대추를 받았고 제상을 대했지만 이제부터라도 그 의미를 새겨 봅니다.

예식장에서 식을 마치면 신랑과 신부는 별도로 마련된 폐백실로 올라가고, 그곳에서 시어른들께 큰절로 인사를 드립니다. 이때 시부모님들은 어김없이 대추를 던져주는데, 대추는 그 씨앗이 단 하나로 왕이 될 만한 후손이 나오라는 뜻도 있지만, 대추는 꽃이 피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말이 있어 결혼을 하였으니 반드시 대 이를 자식을 얻으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답니다.

대추에 이어 던져주는 게 밤입니다. 밤은 무수히 보아왔듯 가시송이 안에 탱글탱글한 3개의 밤톨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3개의 밤톨은 3정승을 의미하니 이왕 얻을 자식 훌륭하게 자라 3정승만큼 출세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밤은 이렇듯 그 수자적인 의미뿐 아니라 밤송이와 밤톨의 각 부위에도 나름대로 숨은 뜻을 가지고 있답니다.

우선 밤송이의 앙상하고도 날카로운 가시는 내유외강의 추진력을 상징하고, 밤톨껍질은 살면서 닥치게 될 풍파에 그 껍질의 단단함만큼 잘 견디는 힘, 방어력을 말한답니다. 밤톨껍질을 벗기면 볼 수 있는 껍질 속의 포근한 털은 부모로서의 따스한 보호력을 말하며, 속껍질의 떫은 맛은 살아가면서 맛봐야 할 인생살이의 맛이 이렇듯 떫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이를 극복할 인내력을 가르치고 있답니다.

▲ 주렁주렁 달린 감은 그 씨앗이 6개로 6조판서와 같은 자손을 기대하는 어른들의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 임윤수

▲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는 팥이 나지만 감은 그 씨를 심어도 자라난 나무에서는 감이 달리지 않고 고염이 열리는 고염나무가 됩니다. 그러니 자식을 낳았다고 다 자식이 아니라 교육을 잘 시켜야 된다는 걸 말해줍니다.
ⓒ 임윤수
대추와 밤이 폐백에 빠지지 않지만 이에 못지않게 깊은 의미를 가지고 제상에 오르는 감(곶감)이 있습니다. 감은 그 씨가 6개로 그 수에서 6조 판서를 의미하기며, 인간들의 물리적 감각 영역인 오감의 세계를 벗어난 육감의 세계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감에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합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는 팥이 나지만 감은 그 씨를 심어도 자라난 나무에서는 감이 열리지 않고 고염이 달리는 고염나무가 됩니다. 고염은 감과 비슷하게 떫은맛을 가졌지만 대추알 정도로 작기 때문에 거의 쓸모가 없는 그런 과실입니다. 감나무는 결국 이 고염나무에 접을 붙여주어야 하니, 감을 제상에 올리는 건 ‘자식이라고 낳았다고 다 자식이 아니라 고염나무 접붙여야 땡감이든 홍시든 딸 수 있듯 자식도 낳았으면 교육을 잘 시켜야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걸 의미한답니다.

이왕 낳은 자식 육조판서의 대열에 낄 정도로 훌륭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넘어서면 씨앗이 8개인 배가 됩니다. 누런 황금빛 배는 그 빛깔에서 부귀를 상징하며 넉넉한 배즙만큼 지혜로운 자손이 번창하고, 8도 관찰사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총명한 자손을 갈망하는 그런 기원이 담겨 있답니다.

▲ 하얗게 피어나는 이화(梨花)지만 열리는 배는 부런 황금빛 과실이니 부귀를 상징하고 그 씨앗의 숫자가 8도 관찰사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 임윤수
결국 폐백음식이 되었든 제사음식이 되었든 궁극적으론 훌륭한 자손을 기대하는 어버이들의 마음이며 기원입니다. 제상에 음식을 차려놓고 조상의 음덕을 기른다고 정성을 드리지만 결국은 내 자식, 내 자손 번창하고 성공하게 해 달라는 애틋한 기도입니다.

한때는 산아제한이 최고의 애국이며 미덕인 것처럼 선전하더니 이젠 줄어드는 신생아숫자를 어쩌지 못해 사회적 안달이 되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왕 되고 3정승 되는 출세일변도의 기원보다는 더불어 살 수 있는, 몸과 마음이 튼튼한 그런 자식 서넛 낳기를 기원하는 게 애국이며 사회적 기원일 듯합니다.

▲ 휙 하니 던져주는 대추와 밤에는 이렇듯 자손번창을 기워하는, 간절하고도 애틋한 어버이의 마음이 담겨있었습니다.
ⓒ 임윤수
사주단자에 예물을 진 함재비가 등장하고, 삼일근친 온 신랑을 시렁에 매달아 발바닥을 치며 다루던 그런 떠들썩한 옛 모습이 그립습니다. 고만고만한 형제들이 좁은 골방에서 옹색하게 자랐지만 그 옹색함 속에 넉넉함이 있었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널찍한 독방에서 넉넉하게 자라지만 왠지 예전보다는 배려심이 적어보이는 요즘 세상이 가난하게 느껴집니다.

입안에 넣은 밤 맛이 아직 떫게 느껴지니 아직은 밤의 속껍질쯤을 벗기고 있는 모양입니다. 떫은 속껍질을 벗기고 나면 달콤하고 고소한 그런 밤맛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우두둑’ 알밤 한 톨을 씹어봅니다. 괜스레 그 의미도 알지 못하고 받았던 폐백대추와 폐백 밤을 다시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이며 나일 먹었다는 방증일 겁니다.

▲ 깊어가는 가을만큼이나 이렇듯 사모관대하고 다시 한 번 새신랑소리를 듣고 싶다는 욕망도 커져만 갑니다.
ⓒ 임윤수
바야흐로 결혼 시즌이 되었으니 무수한 신혼부부들이 탄생할 겁니다.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들녘만큼 몸도 마음도 풍부한 그런 신혼, 다산다복의 열매가 주렁주렁 예약되는 그런 결혼이며 삶이 되길 기원해 보렵니다.

덧붙이는 글 | 밤에는 세톨뿐 아니라 외톨이나 두 톨 그리고 네 톨을 가진 것도 있지만 대개는 세 톨입니다. 감 또한 개량종엔 씨 없는 감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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