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제주도의 겨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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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2.19. 오전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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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글 조은희(게스트하우스 제주에내집 운영자, ‘여행의 이유’ 작가)

ⓒShutterstock
JTBC ‘효리네 민박’ 시즌 2에서 제주도의 겨울을 방송한다고 했을 때 나뿐만 아니라 제주로 이주해 살고 있는 주민들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겨울에 뭐 찍을 게 있다고?” 5년 전 가을, 제주에 왔다. 그리고 같은 해 겨울, 우여곡절 끝에 제주 서쪽 끝 바람이 심하기로 유명한 고산리라는 작은 마을에 집을 구했다. 집 앞 카페에서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처음으로 갖게 된 내 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디에도 부딪힐 곳 없는 바람이 휘이익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카페에 앉아 그 소리를 들으며 카페 주인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여기 너무 멋지지 않아요? 영화 바그다드 카페 같아요.” 언니는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이상한 아이로구나.”

지금 내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여행자들은 그때의 나와 같은 말을 한다. ‘효리네 민박’에 오는 여행자들도 같을 것이다. 제주의 자비 없는 겨울바람, 뼛속까지 스미는 습한 겨울 공기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이들이다. 나 역시 두 번째 겨울까지는 그럭저럭 지낼 만했다.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한 후 어떻게들 알고 찾아와주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기쁘다 못해 감동스러웠다. 그래서 돌창고를 개조해 만든 부엌에서 오뎅탕을 끓이고, 정종을 데우고, 뱅쇼를 만들었다. 김이 서린 부엌의 창문에 추위가 아니라 낭만이 서렸다. 여전히 나는 여행자 쪽에 서 있었다.

그러나 다섯 번째 겨울을 나는 지금,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는 발리, 태국, 캄보디아 등 따뜻한 나라로 떠날 궁리를 한다. 게스트하우스는 제주에서 살아보고자 하는 여행자들에게 빌려주고, 제주 이주민들 사이에서 소위 ‘겨울방학’이라고 말하는 기간을 갖는다. 처음에도 말했듯 여행자에게 제주 겨울의 한적함은 매력이고, 추위쯤은 그 낭만에 따른 약간의 대가일 뿐이다.

지금 사는 집에서는 창을 통해 마당이 훤히 보이고, 문을 열고 나서면 바로 땅을 밟게 되며, 머리 위로는 온통 하늘이다. 이것은 내가 원해왔던 삶이고, 많은 도시 사람들이 꿈꾸는 삶이다. 다만 봄, 여름, 가을까지는. 겨울이 시작되면 바람이 분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아니라 매서운 소리를 동반하는 것 말이다. 겨울을 나기 위해 코타츠(이불이 딸려 있는 테이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그 속에 다리를 넣고 귤을 까먹는 장면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를 장만했다. 그리고 그 따뜻한 온기 안에 발을 집어넣는 순간, 피한 여행을 유보하고 3년 만에 제주에서 겨울을 지내보기로 했다. 그런데 하필, 올겨울은 지금까지 겪어본 제주의 어느 겨울보다도 혹독했다. 바람은 물론이고, 연일 계속되는 폭설에 옴짝달싹 못하는 날들이 많았다.

물론 대부분 영상권에 있는 제주의 기온은 영하 10도 아래까지 떨어지는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이 착해 보인다. 하지만 습기를 머금고 바람을 동반한 제주의 추위는 기온을 떠나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그 추위가 실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집 안에서도 입김이 나고, 지금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손이 시리다. 제주의 옛날 집들은 벽으로 바람이 드나들어 보일러를 틀어도 누워 있으면 코가 시리고,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자칫하다간 난방비 폭탄을 맞기 십상이다. 입도 첫해에 한 달 25만 원을 웃도는 난방비를 썼다고 우는 건 흔하게 듣는 사연이다. ‘효리네 민박’을 보는 주민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나도 제주에 살아보고 싶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현실의 제주살이, 특히 제주에서 겨울나기가 녹록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니 제주에서 사는 것이 로망인 분들께. 제주의 봄, 여름, 가을은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겨울마저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그 최악마저 사랑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제주에 오세요. 제주에서의 다섯 번째 겨울을 보내며 나름대로 겨울나기의 노하우도 생겼지만, 역시 겨울을 버티는 가장 좋은 방법은 5년 전 그 바람과 스산함마저 멋있다고 생각했던 여행자의 마음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겨울이라 더욱 청량한 파란 빛깔의 바다와 패기 넘치는 하얀 파도, 들판에 자라는 다양한 작물의 아름다운 색감, 이 계절에도 생기를 잃지 않는 빨간 동백꽃, 눈이 쌓이면 더욱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한라산이 반겨줄 것입니다. 화목난로에 어렵사리 불을 떼고 불멍을 때리며 고구마를 구워 먹고, 코타츠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밀린 영화와 책을 보고, 그러다가 봄처럼 햇볕이 따뜻한 날이 가끔 찾아오면 혹독한 날들에 대한 원망을 언제 했냐는 듯이 자연을 예찬하고 감격해하세요. 그러다 보면 기나긴 겨울이 끝나고 어느새 봄이 찾아와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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