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어느 결혼식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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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결혼식 두 곳을 다녀왔다. 러시아 속담을 인용한 주례사가 인상적이었다. 항해를 떠날 때에는 한 번 기도를 하고, 전쟁터에 나설 때에는 두 번 기도를 하고, 결혼하려면 세 번 기도를 해야 한다고 했다. 풍랑을 헤쳐 가야 하는 항해보다 총탄을 뚫고 가야 하는 전쟁보다 결혼이 더 힘든 여정일 수 있다는 의미다.

올해는 결혼식이 작년보다 5%가량 줄었다고 한다. 높은 청년실업률과 주거비용 탓이 크다. 그 장벽을 뚫고 백년가약을 맺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청년들이다. 그러니 그들을 축하하는 자리는 북새통이다. 자칫 어수선해지기 십상이다. 그런 결혼식을 기억에 각인시키는 건 그들만의 특별한 연출이다.

'아들을 결혼시킨다'는 지인 A씨의 연락을 받고 달려간 결혼식도 독특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사람이 바로 A씨였기 때문. '앗, 아들 결혼식이라고 했는데' 하며 다시 청첩장을 꺼내봐도 마찬가지다. 신랑 아버지가 신부 손을 잡고 입장했다. 신부 입장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장면이다.

눈길을 끄는 독특함은 지인 B씨의 아들 결혼식에도 있었다. 신부 손을 잡고 입장하는 아버지가 양복을 입지 않았다. 개량 한복으로 단장했는데 단연 눈길을 끌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왜'라는 질문도 없이 틀에 짜인 결혼식 예복을 상상한다. 신랑·신부 어머니는 한복을 입고 아버지는 양복을 입는다. 그 고정관념에서 빠져나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결혼식은 좀 더 특별해졌다.

이쯤에서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왜 아버지 손을 잡고 입장할까. 입시난·구직난을 헤치며 새로운 여정의 문턱에 서 있기는 신부도 마찬가지다. 신랑처럼 당당하게 혼자 입장해도 될 것인데 왜? 어느 성당의 신부님이 주례사에서 그 답을 내놓은 적이 있다. "성경 창세기에 하느님이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어 아담에게 인도했다고 적혀 있다. 그 장면을 결혼식에 구현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하느님을 대신해 신부 아버지가 딸을 낳아 기른 후 사위에게 인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설명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멀고도 오래된 이야기에서 유래된 의식이다. 청년들이 맞는 도전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고정관념을 깨는 개성 있는 결혼식 장면이 반가운 이유도 그 때문이다.

[최경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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