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먹어치우는 덩치 큰 하마 시인이 눈물로 쓴 시들
1994년 근로자문화예술제에서 시부문에 당선한 후 2002년 시전문잡지 『시사사(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한 이기범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청설모와 놀다』를 펴냈다.
이기범 시인은 경기도 안산 상록구에 살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진도군 조도면 앞바다에서 침몰하며 304명이 수장되었고 그 사망자 대부분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었다. 하루 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안산시민들은 크나큰 슬픔과 절망에 빠져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의 도시’ 안산시민 이기범 시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기범 시인의 시집 『청설모와 놀다』에는 세월호에 바치는 헌시가 시집 곳곳에 쓰여 있다. 「젖은 필통」, 「4월은」, 「비정상적인 아침」, 「익숙한 것에 대한 단상」 등등의 시가 그것이다. ‘세월호’라는 크나큰 재난에 대한 은유를 아는 일은 그것 때문에 아프고 멱살이라도 잡고 빗당겨치기 기술을 보이고 싶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아픔이기 때문이고, 또래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이기 때문이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하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지독한 아픔을 잘 알고 뜨거워서 아팠던 것이다. 세월호는 상처투성이었다. 얼굴을 버리고 돌아서는 사람이었다. 어제까지 내 곁에 있던 사람, 아들 딸 삼촌 누나 이모 할머니 등 식구가 등을 돌리며 떠나버렸다. 당연 자발적 이별은 아니다. 모두 한 사람이다. 시인은 그 유린당한 희망과 분노를 ‘별’로 표상했다. 아, 별은 졌다. 아프다.
살며 먹으며 쓰고 읽으며 보며 우리는 산다. 사는 일이 거미줄처럼 복잡한 듯 얽혀 있지만 결국 간결하다. 〈동물의 세계〉라는 다큐멘터리를 지켜보다 보면, 저리 큰 짐승이 어찌 제 몸보다 작은 짐승에게 쩔쩔매며 살을 뜯기고 겁먹고 살까 의아하게 바라본 일이 있을 것이다. 이기범 시인은 덩치 큰 지독히 순한 짐승이다.
그는 자신의 시 속에서 “불을 지르고 채 익지도 않은 대한민국을 씹는다”, 파전을 젓가락으로 여러 번 찢어 달고 새콤한 거짓의 세상을 먹어치운다. 옷장 안에 넣어두는 물 먹는 하마 다음으로 더 식성이 좋은 하마는 이기범 시인이다. 슬픔의 대한민국을 먹어치우는 덩치 큰 하마. 먹어치우는 동안 시인은 눈물을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