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해상왕국을 향하여]해운 정보·금융등 SW로 해상강자 ‘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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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영국 런던의 세인트 마리 엑스에 위치한 한 커피숍에 선주와 하주들이 삼삼오로 모였다.

당시는 영국의 지배를 받던 식민지 대표들이 필라델피아에 모여 영국 본국과 통상중지 및 상품 배척 등을 결의한 때로 긴장이 고조되던 때였다. 더욱이 아메리카가 독립을 선언하는 등 세계를 이끈 영국의 위상이 위기를 맞았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위기감을 느낀 영국의 선주와 하주들은 ‘발틱(Baltic)’이라는 커피숍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각자의 해상정보를 교환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커피숍은 해상정보를 교환하는 ‘만남의 장’이 됐고 230여년이 지난 현재 발틱커피숍은 전 세계 해운시황과 정보가 집결하는 해운메카로 발돋움했다.

◇해운의 메카 ‘발틱’=커피숍에서 시작된 발틱거래소는 영국 런던 금융가에 위치하고 있다. 발틱거래소를 중심으로 금융가가 형성됐다고 하는 표현이 더 옳을 만큼 발틱은 역사와 전통을 지닌 곳이다.

또 보험과 은행 등 금융산업이 함께 성장, 런던은 해운의 중심이자 세계 금융의 중심이기도 하다.

발틱거래소는 지난 92년 북아일랜드의 구교 준군사조직인 아일랜드공화군(IRA)의 폭탄테러로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사라졌다가 3년 뒤인 95년 바로 옆 건물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발틱거래소는 현재 정보교환의 장소로서는 더이상 의미가 없다. 인터넷 등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전 세계 해운업계 관계자들이 굳이 발틱에 모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은 전 세계 해운의 메카이자 해운시장을 좌지우지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영국에는 해운선사가 없다.

현재 영국계 선사인 P&O네드로이드가 덴마크계 해운선사인 머스크시랜드에 인수합병(M&A)되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세계 3위 선사인 P&O가 머스크시랜드에 매각되면 사실상 영국에는 이렇다할만한 해운선사가 없게 된다. 18∼19세기 세계 최대의 선박 건조국가였던 영국은 더이상 선박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빌 라인스 박틱거래소 이사는 “영국에는 대형 해운회사가 없지만 런던에 ‘발틱거래소’가 버젓히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 런던은 해운 메카로서의 정통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로 해운중심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 발틱거래소는 상징적인 의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전 세계의 해운정보를 취합, 매일 매일 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우리나라 증권거래소가 매일 매일 종합주가지수를 발표하듯이 말이다.

라인스 이사는 “해운시황을 알려주는 수많은 지표는 파생상품으로 개발, 전 세계 해운회사 및 금융회사들이 사고 판다”며 “영국은 선박과 항만 등 하드웨어보다는 해운정보와 해운 금융상품 등 소프트웨어로 해상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윤근 한진해운 런던 지점장(상무)은 “영국의 조선소나 터미널 등 하드웨어부문은 후진국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며 “하지만 영국은 정통과 고급인력, 정보 등 3박자가 갖춰진 해운 소프트웨어 강국임에 틀림없다”고 소개했다.

◇해상 007, 클락슨 = 런던은 클락슨(Clarkson) 등 전 세계 해운 정보기관의 집합소다.

영국 비밀정보국(M16) 소속 007 제임스 본드가 해외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한다면 클락슨과 SSY, 호위로빈슨(Howe Robinson) 등의 회사들은 해운정보를 수집하는 해상정보국이나 다름없다.

이들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모두 해상 007인 셈이다.

런던에는 이와 같은 정보 및 중개회사가 수십개나 운영되고 있으며 이중 메이저급 회사만 7∼8개에 달한다.

이들 회사의 주요 업무는 선주와 하주를 연결하는 해운중개(Broking)와 신조선 및 중고선 매매 중개, 시황정보 제공, 운임선도거래(FFA: Forward Freight Agreements) 등 파생상품 중개업무 등이다.

우리나라에서 해운리서치 전문 회사로 알려진 클락슨도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두고 있다. 클락슨의 주요 업무중 리서치 업무는 한 부분에 불과할 정도로 이 회사는 다양한 해운관련 영업을 하고 있다.

시황정보 제공 및 다양한 중개 업무를 통해 클락슨이 지난해 올린 매출액은 모두 8740만파운드다. 원화로 환산하면 1조7300억원이 훨씬 넘는 금액이다.

전 세계 40여곳에 지사를 두고 있는 클락슨의 전 직원 수는 400명. 1인당 생산성이 43억원이 넘는 셈이다. 이들은 전화와 컴퓨터만 가지고 전 세계 해운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마틴 스톱포드 클락슨 이사는 “전 세계 40여곳에 지사를 두고 다양한 해운정보(벌크·탱크·컨테이너 등)를 수집한다”며 “수집된 정보는 70명의 리서치 요원들에 의해 가공 작성, 전 세계 해운회사에 판매된다”고 말했다.

해운회사는 클락슨에 의해 제공된 해운정보를 이용, 향후 시황을 예측하고 영업에 활용한다는 게 스톱포드 이사의 설명이다. 발틱거래소에서 집계된 각종 지표를 이용한 파생상품의 중개업무도 클락슨의 주요 매출원중 하나다.

또 해운회사와 조선회사를 연결하는 선박매매(S&P) 중개업무도 빼놓을 수 없는 업무다.

김혁기 STX팬오션 런던사무소 차장은 “영국 런던은 모든 정보의 기초가 되는 각종 지수를 산정하는 발틱거래소와 해운시황 및 정보를 수집하는 중계회사, 보험 및 P&I 클럽, 650여개가 넘는 전 세계 은행들의 집합소”라며 “이같은 힘으로 영국은 해운중심 국가이자 전 세계 해운산업을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 fncho@fnnews.com 조영신기자

■사진설명=세계 해운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발틱거래소. 각국의 해운정보를 취합해 매일 지수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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