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가을의 미학, 아름다운 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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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0.16. 오전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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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교수(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영성) [문화부 jebo@msnet.co.kr]
유재경 교수(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영성)


리듬은 음악의 시작이자 존재의 근원이다. 음악의 선율이 리듬에서 나오듯이 우리 인생의 여유와 충일함도 리듬에서 나온다. 그러면 삶의 리듬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삶의 리듬은 축제와 휴식에 있다. 우리 삶의 축제 가운데 최고의 축제는 바로 명절이라 하겠다. 그런데 웃음과 기쁨이 되어야 할 명절이 온통 슬픈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명절이 끝난 뒤 90%의 직장인들이 명절증후군으로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축제와 환대의 시간이 눈물과 아픔의 역사로 바뀌고 있다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서양에서 축제(festival)는 라틴어 '페스티발리스'(festivalis)에서 유래된 말로 종교적 의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축제는 공동체 성원들이 만남을 통해 자신의 억압된 본능을 해소하고,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며, 사회를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축제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고, 사람들의 만남에는 서로를 향한 환대가 있었다. 축제는 타인에 대한 환대를 통해 그 진정한 의미가 살아난다.

환대(歡待)는 낯선 사람이나 손님을 관대하게 받아들이고 즐겁게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환대는 주인과 손님이 만남을 통해 서로의 관계가 친밀해지는 과정이다. 그레그 모텐슨이 파키스탄 코르페 마을에서 경험한 이야기는 이러한 환대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모텐슨은 그의 책 『세 잔의 차』에서 환대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발티 사람과 한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당신은 이방인이다. 두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당신은 손님이다. 그리고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당신은 가족이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네, 죽음도 마다하지 않네."

환대는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의 문화에도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환대는 사랑과 섬김과 더불어 신약성경의 핵심적 주제를 이루고 있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손님과 주인 사이에 주고받는 평범한 일상, 즉 식탁의 대화(table talk)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경험한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구원과 가장 유사한 의미를 가진 단어는 환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마태복음 10:40)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환대는 나를 변화시키는 배움의 터전이다. 환대는 나를 열어 낯선 사람을 나의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의 공간은 나의 집이나 방과 같은 물리적 장소일 수도 있고,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나의 내면의 세계일 수도 있다. 물질적 공간이든 정신적 공간이든 타인을 향해 나의 공간을 열어줄 때 우리는 변화를 경험한다. 내면 깊이 감추어진 자신의 감정을 열어보이는 과정에서 치유가 일어나고, 지적인 솔직함을 드러내는 자리에서 지식의 향연을 경험할 수 있다. 자신의 세계를 열어 타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한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초월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환대(hospitality)의 라틴어 어원 '호스페스'(hospes)는 주인(host)과 손님(guest)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환대의 아름다움은 주인과 손님의 뒤바뀜에 있다. 환대는 주인과 손님이 서로 간 주고받는 호혜적 관계로 머무는 데 만족하지 않고, 주인이 손님이 되고 손님이 주인이 되는 데까지 나아간다. 환대는 상대를 받아들이고, 나의 것을 내어주는 것에서 시작하여 손님을 극진하게 섬기는 세계로 향한다. 그래서 성경의 이야기는 극적이다. 레위라는 세관원이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었고, 많은 손님들이 잔치에 찾아왔다. 예수님도 그 자리에 함께한 손님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잔치가 진행되면서 예수님의 역할이 손님에서 주인으로 바뀌는 일이 일어났다(누가복음 5:27-39). 여기에 축제의 절정이 있고 환대의 아름다움이 있다. 성경은 이러한 환대의 이야기를 통해 과연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낯선 사람을 받아들여 주인으로 섬기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다. 가을에도 우리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매일 낯선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간다. 타인을 만나는 우리의 마음은 평안하고 환영하는 마음인가 아니면 거부감과 적개심으로 가득 찬 마음인가? 우리의 만남이 서로에게 즐거운 축제의 자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름다운 환대의 자리에서 가을의 미학이 꽃피기를 소망한다.

유재경 교수(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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