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크엔드]“성인용 장난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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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성인을 위한 장난감’이라는 말에 왠지 뺨을 붉히는 점잖은 성인 여러분!

이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일본 도쿄에서는 ‘성인 장난감’이라는 말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있으니까.

요즘 도쿄에서 지하철을 타면 수첩 크기의 단말기와 펜을 들고 무엇인가에 몰입하고 있는 남성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지만 업무나 스케줄을 조정하는 게 아니다.

이들은 최근 일본 성인들 사이에서 유행 중인 ‘뇌 마사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뇌 마사지는 일본의 대표적인 게임 소프트웨어 제작사 ‘코나미’의 새로운 게임 소프트웨어의 광고 카피다.

가장 히트하고 있는 상품이 바로 ‘닌텐도’의 ‘뇌를 단련하는 어른들의 트레이닝’ 시리즈다. 닌텐도는 지난해 5월에 출시된 1탄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최근 ‘조금 더 뇌를 단련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후속 상품을 내놓았다.

이 기계가 내놓는 문제는 간단하다.

“오늘은 몇 년 몇 월 며칠인가요?” “24 더하기 45는 얼마인가요?” “학교라는 글자를 써 주세요.”

사용자는 이 같은 간단한 문제에 대해 터치스크린이 장착된 게임기 화면에 터치 펜으로 답변을 쓰면 된다. 간단한 조작법과 뇌의 노화를 방지한다는 매력적인 문구가 일본 성인들의 흥미를 자극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이 상품은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본인의 ‘뇌 연령’을 측정해 준다. 연령 측정 뒤 간단한 문제들을 해결하게 함으로써 뇌의 사령탑인 전두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만들어 노화를 막는다는 주장이다.

저출산 때문에 고심하고 있는 일본은 고령사회로 접어든 지 오래다. 1억3000만 명인 일본 인구는 현재 추세가 지속되면 2050년에는 1억 명으로 인구가 줄어든다는 예측이 나온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전개하던 일본의 장난감 메이커들은 이런 추세에 위기감을 느끼고 성인 고객을 찾고 있다.

‘다카라토미’ ‘세가’ 등 일본 업체들은 경쟁하듯 어른들을 위한 장난감을 출시하고 있다.

성인용 장난감들은 블루마블 같은 아날로그적인 스타일의 게임판은 물론 최신 정보기술(IT)을 사용한 게임 소프트웨어까지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액션 게임으로 유명한 ‘남코’는 ‘우뇌의 달인 힘내라 트레이너’를, 다카라는 ‘EQ 트레이너’를 시장에 내놓았다. 다카라토미는 자사 게임을 출시하면서 ‘인간관계가 잘 되지 않는 분, 회사에서 인간관계가 어려운 분들에게 효과적’이라는 광고를 내놨다. 제품의 타깃 고객이 직장인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닌텐도는 “나이가 들면 체력과 마찬가지로 뇌 능력도 떨어진다. 지속적인 운동과 관리로 체력 저하를 방지할 수 있는 것처럼 적극적인 뇌 운동으로 뇌 능력의 하락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제품은 특히 치매 등 노인성 두뇌장애를 걱정하는 ‘노인 예비군’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성인 장난감의 또 하나의 트렌드는 현대인들의 스트레스나 외로움, 과거에의 향수 등 정신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카라토미는 최근 말하는 인형 ‘유메르와 네르르’를 출시했다. 이 인형은 여러 문장이 녹음돼 있는데 사람이 안아 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으면 대화가 시작된다.

인형들은 “언제까지라도 함께야” “상냥한 목소리, 너무 좋아” “꿈을 꾸었어” 등 다양한 문장을 말한다. 이 인형은 성인 여성을 겨냥한 것으로 인형에게 입힐 옷들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아이가 없는 독신 여성이나 자식들을 이미 독립시킨 중장년 여성에게 새로운 육아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여성들은 예쁘게 옷을 입힌 인형 사진들을 인터넷에 띄우기도 하며, 그 결과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다카라토미는 2001년 성인들을 겨냥한 스트레스 해소용 장난감을 출시한 바 있다. 태양열로 머리를 까딱이는 이 인형은 한 해 300만 개가 팔렸다. 이 회사 ‘프런티어 사업본부’ 기획담당자인 가네코 요시노부 씨는 “출산율 저하로 어린이가 줄고 있기 때문에 어른들에게 장난감을 사게 하고 싶다”며 “어른용 장난감 시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필자도 ‘뇌를 단련하는 트레이닝’에 도전해 봤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하지만 대답은 ‘당신의 뇌 연령은 52세’. 30대 중반인 필자에게는 충격적이었다. 게임 소프트웨어가 내리는 판정이지만 웃고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필자도 성인 장난감의 예비 고객임에 틀림없다.

도쿄=장혁진 통신원·극단 ‘시키’ 아시아담당 총괄 매니저 escapegoa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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