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콘텐츠 바로가기

뉴스

목록

R데스크]유교현판이야기-노송정 종택

2017-07-24 ㅣ 이호영 ㅣ 359

◀ANC▶

한국선비문화의 보고
유교현판이야기 기획시간입니다.

오늘은 퇴계 태실이 있는
노송정 종택의 현판에 담긴 이계양선생의
지조를 전해드립니다.

이 호 영
◀END▶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노송정 종택은 퇴계 조부 이계양의 고택입니다.

퇴계 모친이 공자가 문안으로 들어온
꿈을 꾼 뒤 퇴계를 낳게 됐다는
솟을 대문 성림문聖臨門을 지나면 노송정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노송정 방의 현판 옥루무괴屋漏無愧는
시경에서 인용한 것으로 옥루는 방안의
가장 어둡고 후미진 서북쪽 모퉁이를
말하는 것으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부끄럽지 않다는 자신의 내면의 수양을 강조한 말입니다.

노송정 선생은 1455년 세조가 어린 단종을
몰아내자 출사할 생각을 접고 이곳 온혜리에
이주했으며 집 주위에 오래된 소나무가 많아
노송정을 당호와 아호로 삼은 것입니다.

◀INT▶권진호 박사/한국국학진흥원
"의롭지 못한 권력에 빌붙지 않고 단종에 대한
변치않는 지조를 빗대어 표현한 것입니다.
심지어 그의 지조는 단종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주위 높은 산에 올라가 북쪽을 바라보면서
큰 절을 올리며 돌아오곤 했습니다.
지금도 이 주위에 그 산은 북망봉이라 하여
노송정 이계양의 지조를 상징하고 있는 산이기도 합니다."

노송정 내당에 있는 퇴계 선생 태실은
두 사람이 간신히 누울 정도로 작습니다.

그의 후손 이가원이 선생의 학덕과 태어난 상징적인 의미를 태실 중수기에 적어두고 있습니다.

노송정은 논어 자한편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에서 따온 글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도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INT▶권진호 박사/한국국학진흥원
"공자는 논어에서 세한연후에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 라고 했듯이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푸르름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노송정 현판에는
노송정 이계양 선생의 변치않는 꿋꿋한 지조를 표상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S/U)이곳 노송정 종택에서 퇴계 종택까지
거리는 2km 남짓 됩니다.
이곳을 찾는 후학들은 두 종택을 통해
퇴계 선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mbc뉴스 이호영입니다.
이호영
이호영 기자 (상주·문경· 의성·청송·영양) hoyoung@andongmbc.co.kr 이호영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춘풍추상(春風秋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