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에도 지적인 형사 캐릭터가 나올 때 됐죠"
영화 '암수살인' 형사 역 맡은 김윤석
실화를 극화한 ‘암수살인’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김윤석은 “영화에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이 존재한다는 건 배우가 연기할 때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쇼박스 제공
왜 또다시 형사여야 했을까. 동어반복의 위험을 결코 모를 리 없는 그의 선택이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시나리오가 저에게 왔다는 건 굉장한 행운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바라 왔던 일이죠.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에 목말랐습니다.” 확신에 찬 답변에 질문이 머쓱해졌다.
영화 ‘추격자’(2008)에선 출장 안마소를 운영하는 전직 형사였고, ‘거북이 달린다’(2009)에선 시골 마을의 무기력한 형사였다. ‘극비수사’(2015)에선 점괘를 보는 도사와 유괴사건 공조 수사를 펼쳤다. 그리고 3일 개봉하는 신작 ‘암수살인’에서는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신념으로 움직이는 ‘지능형’ 형사 김형민을 연기한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김윤석(50)은 “지금까지 보여 준 형사 캐릭터 중에 가장 돋보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형민은 수감된 살인범 강태오(주지훈)가 “총 일곱 명을 죽였다”며 추가 살인을 자백하자 그 자백이 사실임을 직감하고 수사에 뛰어든다. 강태오가 적어 준 살인 리스트에서 증거를 찾고, 강태오를 회유해 얻어 낸 단서들을 조합해 진실에 다가간다. 김윤석은 “영웅이 아닌 파수꾼에 가까운 형사를 그렸다”고 말했다.
“수사물이 흔한 장르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상투적인 표현이 있어요. 정의는 늘 승리하며 주인공은 육체적으로 우월하죠. 통쾌함을 주기 위해 액션도 빠지지 않고요. 하지만 김형민은 오로지 두뇌싸움으로 사건을 추리해 갑니다. 매우 현실적인 모습이기도 하죠. 한국 영화에도 지적인 형사 캐릭터가 나올 때가 됐어요. 제가 어릴 적 좋아하던 ‘형사 콜롬보’처럼요. 콜롬보는 구질구질한 코트 자락 날리면서 오로지 수첩과 볼펜 한 자루만 가지고 결국 범인을 잡아 내더란 말이죠.”
김윤석은 “이야기에 밀도가 있다면 상업적 장치를 가미하지 않고도 장르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다”며 “‘암수살인’이 모범 사례가 됐으면 한다”고 바람도 보탰다.
김윤석과 주지훈의 연기가 매우 강렬하다. 쇼박스 제공
강태오는 사건 단서를 미끼로 김형민을 도발하고, 김형민은 강태오에게 적당히 져 주거나 때론 외면하면서 심리전을 펼친다. 김윤석과 주지훈이 펼치는 명연기는 ‘암수살인’의 또 다른 미덕이다. 서로 부딪히는 눈빛이 칼날 같아서 절로 숨통이 조여 온다. 김윤석은 “주지훈에게 호감을 느꼈고 후배이지만 배우기도 했다”며 “공동작업을 하면서 공유했던 에너지가 좋은 추억과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강태오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김형민의 ‘절제력’과 ‘집요함’은 김윤석의 기질과도 통한다. “한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건 닮은 듯하다”고 김윤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스크린에서 빚어 온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강인한 신념을 품고 끝을 향해 돌진하면서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타짜’(2006)의 아귀도, ‘화이’(2013)의 석태도, ‘1987’(2017)의 박처장도, 비록 악인일지언정 끝끝내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극과 극을 오가며 연기하는 게 즐겁습니다. 그런 캐릭터가 지닌 특유의 연극적인 매력도 있고요. 돌이켜 보니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홀로 파멸하는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네요. 그 캐릭터들이 강렬하게 기억됐다는 건 그만큼 입체적으로 보였다는 의미니까 다행스럽습니다.”
쉬이 잊히지 않는 캐릭터를 매번 새롭게 내놓을 수 있는 건 그가 늘 자신의 연기 방법론을 가다듬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도 그는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작품을 더 정확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욕을 부려서 굳이 필요 없는 요소를 집어 넣으면 연기에 불순물이 섞여 정체성을 잃게 됩니다. 본질을 놓치지 않고 자기 길을 제대로 가는 게 중요해요.”
형사 김형민은 살인범이 추가 자백한 살인 리스트를 치밀하게 분석해 암수범죄의 실체에 접근해 간다. 쇼박스 제공
‘암수살인’은 부산에서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각색해 스크린에 옮겼다. 신고도 없고 시신도 발견되지 않아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거나, 사건 인지가 됐더라도 용의자 신원 파악 등이 해결되지 않아 공식 범죄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암수범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던 실제 피해자 유족이 제작진의 사과를 받아들여 소송을 취하한 것도 “암수범죄의 경각심을 제고하고 부디 다른 암수범죄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김윤석은 “관심”을 촉구했다. “이 영화의 주제를 하나만 꼽으라면 ‘관심’입니다. 암수범죄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아 벌어진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딛고 서 있는 현실 곳곳에 관심을 두고 함께 살아가자는 것이죠. 관객들도 공감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왜 또다시 형사여야 했을까. 동어반복의 위험을 결코 모를 리 없는 그의 선택이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시나리오가 저에게 왔다는 건 굉장한 행운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바라 왔던 일이죠.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에 목말랐습니다.” 확신에 찬 답변에 질문이 머쓱해졌다.
영화 ‘추격자’(2008)에선 출장 안마소를 운영하는 전직 형사였고, ‘거북이 달린다’(2009)에선 시골 마을의 무기력한 형사였다. ‘극비수사’(2015)에선 점괘를 보는 도사와 유괴사건 공조 수사를 펼쳤다. 그리고 3일 개봉하는 신작 ‘암수살인’에서는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신념으로 움직이는 ‘지능형’ 형사 김형민을 연기한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김윤석(50)은 “지금까지 보여 준 형사 캐릭터 중에 가장 돋보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형민은 수감된 살인범 강태오(주지훈)가 “총 일곱 명을 죽였다”며 추가 살인을 자백하자 그 자백이 사실임을 직감하고 수사에 뛰어든다. 강태오가 적어 준 살인 리스트에서 증거를 찾고, 강태오를 회유해 얻어 낸 단서들을 조합해 진실에 다가간다. 김윤석은 “영웅이 아닌 파수꾼에 가까운 형사를 그렸다”고 말했다.
“수사물이 흔한 장르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상투적인 표현이 있어요. 정의는 늘 승리하며 주인공은 육체적으로 우월하죠. 통쾌함을 주기 위해 액션도 빠지지 않고요. 하지만 김형민은 오로지 두뇌싸움으로 사건을 추리해 갑니다. 매우 현실적인 모습이기도 하죠. 한국 영화에도 지적인 형사 캐릭터가 나올 때가 됐어요. 제가 어릴 적 좋아하던 ‘형사 콜롬보’처럼요. 콜롬보는 구질구질한 코트 자락 날리면서 오로지 수첩과 볼펜 한 자루만 가지고 결국 범인을 잡아 내더란 말이죠.”
김윤석은 “이야기에 밀도가 있다면 상업적 장치를 가미하지 않고도 장르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다”며 “‘암수살인’이 모범 사례가 됐으면 한다”고 바람도 보탰다.
김윤석과 주지훈의 연기가 매우 강렬하다. 쇼박스 제공
강태오는 사건 단서를 미끼로 김형민을 도발하고, 김형민은 강태오에게 적당히 져 주거나 때론 외면하면서 심리전을 펼친다. 김윤석과 주지훈이 펼치는 명연기는 ‘암수살인’의 또 다른 미덕이다. 서로 부딪히는 눈빛이 칼날 같아서 절로 숨통이 조여 온다. 김윤석은 “주지훈에게 호감을 느꼈고 후배이지만 배우기도 했다”며 “공동작업을 하면서 공유했던 에너지가 좋은 추억과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강태오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김형민의 ‘절제력’과 ‘집요함’은 김윤석의 기질과도 통한다. “한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건 닮은 듯하다”고 김윤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스크린에서 빚어 온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강인한 신념을 품고 끝을 향해 돌진하면서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타짜’(2006)의 아귀도, ‘화이’(2013)의 석태도, ‘1987’(2017)의 박처장도, 비록 악인일지언정 끝끝내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극과 극을 오가며 연기하는 게 즐겁습니다. 그런 캐릭터가 지닌 특유의 연극적인 매력도 있고요. 돌이켜 보니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홀로 파멸하는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네요. 그 캐릭터들이 강렬하게 기억됐다는 건 그만큼 입체적으로 보였다는 의미니까 다행스럽습니다.”
쉬이 잊히지 않는 캐릭터를 매번 새롭게 내놓을 수 있는 건 그가 늘 자신의 연기 방법론을 가다듬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도 그는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작품을 더 정확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욕을 부려서 굳이 필요 없는 요소를 집어 넣으면 연기에 불순물이 섞여 정체성을 잃게 됩니다. 본질을 놓치지 않고 자기 길을 제대로 가는 게 중요해요.”
형사 김형민은 살인범이 추가 자백한 살인 리스트를 치밀하게 분석해 암수범죄의 실체에 접근해 간다. 쇼박스 제공
‘암수살인’은 부산에서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각색해 스크린에 옮겼다. 신고도 없고 시신도 발견되지 않아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거나, 사건 인지가 됐더라도 용의자 신원 파악 등이 해결되지 않아 공식 범죄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암수범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던 실제 피해자 유족이 제작진의 사과를 받아들여 소송을 취하한 것도 “암수범죄의 경각심을 제고하고 부디 다른 암수범죄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김윤석은 “관심”을 촉구했다. “이 영화의 주제를 하나만 꼽으라면 ‘관심’입니다. 암수범죄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아 벌어진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딛고 서 있는 현실 곳곳에 관심을 두고 함께 살아가자는 것이죠. 관객들도 공감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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