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어니스트 클라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가상현실 게임을 소재로 한 미래형 SF다. 얼핏 외형상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초중고생 용인 듯하지만 1980년대를 중심으로 한 20세기의 문화를 담아 고른 연령층의 추억을 소환해줄 폭넓은 포용력을 자랑한다.

공해, 인구 증가, 실업, 빈곤 등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극을 향해 치닫는 암울한 2045년의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 괴짜 천재 제임스 할리데이(마크 라이런스)는 5년 전 가상현실 게임 오아시스를 만들어 절망적인 사람들의 삶에 활력소를 불어넣어 준 뒤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오아시스 안에 숨겨둔 3개의 미션에서 우승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오아시스 소유권 등 전 재산을 물려준다는 유언을 남겼다. 오아시스 안에 아바타로 들어가면 어떻게든 변할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신세계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여기에 푹 빠져 있다.

빈민촌에 사는 18살 웨이드 와츠(타이 쉐리던)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이모네 얹혀산다. 평소 할리데이를 신처럼 섬겨온 그는 5년째 우승자를 배출하지 못한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할리데이가 생전에 자료실로 만든 할리데이 저널을 방문해 한 가지 단서를 잡아낸다.

오래전 오아시스 회사에 욕심 많은 인턴 소렌토(벤 멘델슨)가 있었다. 그는 할리데이의 눈에 들진 못했지만 남다른 사업 수완으로 승승장구해 IOI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회사를 만들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그 역시 부하직원들을 오아시스에 투입해 열쇠를 차지하는 데 혈안이 돼있다.

▲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 이미지

웨이드는 기지로 단서의 비밀을 풀어 첫 미션에서 열쇠를 찾아 오아시스 내에서 영웅이 된다. 그의 아바타는 퍼시발이고, 아르테미스(사만다, 올리비아 쿡), H(헬렌, 리나 웨이스), 쇼, 다이토 등의 아바타 친구들이 있다. 퍼시발은 친구들에게도 비밀을 알려줘 순위에 오르게 만든다.

이 사실을 안 소렌토는 직원들을 총동원해 오아시스에서 퍼시발과 친구들을 죽이려 하는가 하면 현실에서 심복 피날레에게 웨이드를 찾아내 죽이라고 명령한다. 퍼시발과 아르테미스 사이의 대화를 해킹한 소렌토는 그들의 정체를 알아내고 회유를 시도하지만 거절당하자 빈민촌을 폭파한다.

이모를 잃었지만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웨이드는 아르테미스의 실물인 사만다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IOI에 아버지를 잃은 뒤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반군에 들어가 암약 중이었다. 둘은 오아시스에 들어가 친구들을 불러내 소렌토와의 본격적인 대결을 펼치자고 손을 맞잡지만 사만다가 붙잡히는데.

140분이란 결코 짧지 않은 러닝타임 내내 단 1초도 한눈을 팔 수 없다. 매 신과 시퀀스가 화려하고 내용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 측면에서만 놓고 보면 완벽에 가깝다. 스타 배우에 대한 아쉬움은 ‘킹콩’ ‘쥬라기 공원’ ‘처키’ ‘건담’ 등 유명 영화 및 컴퓨터게임의 캐릭터와 설정 등이 채워준다.

스필버그는 2001년 ‘A.I.’를 통해 과학 발전의 끝이 환경의 파괴와 인류의 멸종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A.I.’가 인공지능을 통한 진정한 인간미 혹은 인간이란 정체성을 묻는 가운데 파랑새란 희망에 집중했다면 ‘레디 플레이어 원’ 역시 유사한 시점에서 출발하면서도 아날로그식 문화를 강조한다.

▲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 이미지

할리데이는 인류의 삶을 바꿀 정도로 디지털의 혁명을 이뤘지만 정작 자신은 아날로그에 머물렀다. 사람들이 두려워 은둔에 가깝게 살았고, 사랑마저 얻지 못했다. 세계 최고의 갑부지만 사람과 소통하지 못해 불운했다. 가장 큰 비극은 제일 가까운 친구를 잃은 것. ‘그까짓 돈이 뭐라고’라는 뜻.

모든 사람들에게 허구 세계를 만들어준 그는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들에게 아날로그의 추억을 되돌려줌으로써 인간미란 희망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오아시스 안에 ‘대중문화를 분석해 단서 찾기’라는 장치를 만든 것이다. 그 메시지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기는 게 아니라 즐기라는 것!

첨예하다 못해 잔인한 경쟁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이 얼마나 낭만적인 캐치프레이즈인가! 공존하는 세상이 아니라 남을 짓밟거나 심지어 소멸시켜야 내가 살아남는 살벌한 현실 속에서. 심지어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릴 게 아니라 반대로 후진도 해보자는 내용은 정말 통쾌하다.

밴 헤일런의 ‘Jump’로 오프닝을 장식한 뒤 아하의 ‘Take on me’,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블론디의 ‘One way or another’, 비지스의 ‘Stayin' alive’ 등 1970~80년대를 장식한 나름대로 의미를 갖춘 팝의 명곡을 대거 동원했다. 특히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의 도입은 ‘빵’ 터지게 만든다.

널리 알려졌듯 ‘샤이닝’은 인디언 학살이란 참극을 통한 미국의 탄생부터 ‘아메리칸드림’이란 허상 위에 구축된 오늘날의 세계 최강국의 내면을 까발림으로써 이제 역사를 되돌아보고 제대로 평가하자는 자아비판이다. 그게 할리데이와 그가 사랑했던 여자와의 데이트용이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 이미지

존 휴즈 감독과 ‘조찬클럽’, 클락 켄트(슈퍼맨)의 안경 등의 인용도 유사한 맥락이다. ‘조찬클럽’을 거론한 건 ‘레디 플레이어 원’이 결코 하이틴 영화가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동화란 의미다. ‘슈퍼맨’에서 가장 허망한 건 슈퍼맨이 단지 안경 하나 걸쳤을 뿐인데 사람들이 그의 정체를 몰라본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여기서 슈퍼스타가 된 퍼시발에게 ‘클락 켄트 안경’을 씌움으로써 변장을 시키는 설정은 결코 ‘슈퍼맨’에 대한 조롱이 아니라 오아시스라는 세계에 대한 은유다. 좁게는 인식론에서 넓게는 현상학에 근거해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 혹은 불순한 신앙이 얼마나 허망한지에 대한 알레고리다.

식사 잠 용변 빼고 다 되는 디지털의 유토피아 오아시스에 집착했던 웨이드가 그토록 강렬히 원해 만난 사만다는 그러나 자신의 공간을 “여기선 모든 게 느려”라고 설명한다. 일순간에 변신하고, 한순간에 새로운 무기를 꺼내드는 초고속의 세계 오아시스를 건설한 할리데이는 정작 말도 행동도 매우 느리다.

IOI, 혁신적인 온라인기업(Innovative Online Industry)은 말만 혁신적이지 사실 자본주의 체제이거나 그것을 주도하는 이기적이고 제왕적인 대기업이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법 도덕 양심 따윈 꾸깃꾸깃 처박아둔 채 다양한 범죄는 물론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는 진저리칠 만큼 잔인한 자본주의.

‘A.I.’에서 소름 끼치는 결말을 내놨던 스필버그는 이번엔 매우 따뜻하게 매조진다. 소통과 나눔의 미학. 아바타를 통해 성적인 ‘느낌’까지 가능하다고 허풍 떨지만 매우 현명한 메시지로 결론짓는다.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손자와 과거가 그리운 할아버지의 동석이 가능한 오락영화다. 12살. 3월 28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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