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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파초

청남

 

 

*파초

 

 

파초는 식물학적 분류에 의하면 나무가 아니고 풀이랍니다.

나무이야기 속에 풀을 함께 넣은 것은 내가 이 파초를 참 좋아하고, 또 얼른 보기에 파초가 풀이라고 하기 보다는 나무를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파초는 파초과에 속하는 대형 초본이며 중국 원산인 온대성 식물입니다. 파초와 사촌격인 바나나도 역시 나무가 아니고 파초과에 속하는 풀인데 높이 lOm에 달하는 이 다년생 상록 초본은 누구라도 나무라고 하지 풀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파초와 바나나를 풀이라고 하는 이유는, 파초와 바나나의 줄기는 목질부를 갖춘 진짜 줄기가 아니고, 보기에만 줄기 같고 사실은 여러 개의 잎싸개(葉鞘)가 모여서 줄기같이 보이는 가짜줄기(僞幹)이기 때문입니다.

바나나의 경우는 높이 lOm, 파초는 높이 5m까지 자라지만 그 줄기는 모두 잎싸개로 이루어진 것들입니다.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서 잘 자라는 파초는, 추위에 약하므로 중부 이북 지방에서는 겨울에 동해를 입기 때문에 노지에서 월동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름내 크게 자란 파초를 겨울이 다가오면 윗둥치를 잘라 버리고 밑부분을 캐서 커다란 통에 담아 온실 안에 넣거나 혹은 얼지 않도록 방안 한 녘에 놓아서 월동을 시킵니다.

 

내가 아는 식물 중에 잎이 가장 큰 것이 바로 파초입니다.

그래서 파초의 매력은 아무래도 그 큰 잎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무더운 여름, 숨이 막힐 듯이 덥고 답답할 때라도 마당 한녘에 서 있는 시원스런 파초잎을 바라보면 마음속에 생기가 살아납니다.

그러다가 한차례 소나기라도 퍼불라 치면 커다란 잎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그렇게도 후련할 수 없습니다.

 

신석정(辛夕汀), 김상용(金商鎔)과 함께 1930년 후반기의 유명한

전원시인(田園詩人) 김동명(金東嗚)은 파초를 보고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습니다.

 

파초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을 향한 불타는 향수

너의 넋은 수녀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너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파초하면 아무래도 여름을 연상하게 되고 그 넓고 싱그러운 잎을 보면 청춘을 느끼게 합니다.

수목의 즐거움과 화초의 아름다움을 모두 함께 지닌 파초는 여름의

여왕이며 그 넓은 잎 속에는 더위에 지친 우리 영혼의 안식처가 있습니다.

활달하고 늠름한 모습은 젊은이의 꿈이요, 소박하고 고유한 멋은

그대로가 순수한 젊은이의 마음입니다.

잎이 다 벌어져, 커다란 거인의 나래가 되어 넌지시 나의 서재 안을 엿보며 주인을 찾는 듯한 정취는 파초 아닌 다른 어느 식물에도 찾아볼 수 없는 다정한 정감입니다.

 

바나나와 너무 많이 닮아서 구별이 잘 되지 않지만, 파초는 바나나에 비해서 결실성이 아주 떨어지고, 열매가 열렸다 해도 바나나보다 작고 먹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파초는 정으로 키우는 식물이고 바나나는 소득을 위해서

키우는 식물입니다.

잎이 아름다운 파초는 예부터 화조화(花鳥畵)의 소재로 많이 등장해 왔는데, 강희안(姜希顏)은 그의 저서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화목류를 9품으로 나누어 평할 때, 파초를 앙우(仰友), 초왕(草王),

녹천암(綠天菴)이라고 부르며 수려하고 부귀한 모습을 높이 평가하여 2품에 올려 놓았습니다.

 

파초와 아주 닮은 것으로 애기파초가 있는데, 파초에 비하면 아주

작지만 꽃의 포엽이 아름답기 때문에 한자명으로 미인초(美人蕉)라고 부르며 관상용으로 많이들 심습니다.

 

파초과의 일종인 마닐라파초는 잎의 엽병에서 실을 뽑아 이용하는데, 이 때문에 이것을 마닐라삼이라 하기도 합니다.

마닐라삼은 인조 섬유가 발견되기 이전에 각종 로프를 만드는 중요한 원료였습니다.

 

 

 

 

파초를 그린 역대 명화는 무척 많지만 이조 때 한 무명 화공이

일본에서 그린 파초야우도(芭蕉夜雨圖)’는 무척 유명합니다.

촉촉히 내리는 밤비를 소재로 한 한 폭의 그림 위에 이조 태종 때

봉례사(奉禮使)로 일본에 건너가서 현지 일본인과 시회를 연 집현전 학자 양수(梁需)는 그 그림 위에 다음과 같은 찬시(贊詩)를 써 넣어

그 그림은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雨滴芭蕉秋夜深(우적파초추야심)

擁衿危坐听高吟(옹금위좌소고음)

遠公何處無人問(원공하처무인간)

異國書生萬里心(이국서생만리심)

 

파초잎에 빗방울 떨어지니 가을밤은 깊었도다

옷깃을 여미고 조심스레 앉았어도 웃으면서 노래하오

멀리 어디서 왔는지 묻는 사람 없어도

이국의 서생, 마음은 고향 향해 만리를 달려가오.

 

지금은 고인이 된 오구네 아버지께서 파초에 대해 다음과 같은 애절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옛날 옛날 박 진사네 아들은 재 너머 동네에 사는 김 진사 댁 무남독녀에게 장가를 들었습니다.

혼례의 여러 가지 절차들 모두 무사히 마치고 드디어 신랑 신부가

맞는 첫날 밤이 되었습니다.

곱게 단장한 신부는 신방에서 신랑이 머리에 쓴 족두리를 내려 주기를 기다리며 다소곳이 앉아 있었습니다.

신랑은 어여쁜 신부를 바라보며 족두리를 내리려고 신부 머리에 손이 가는 순간, 신부 등 뒤 창문에 비친 달 그림자에 누군가가 칼을 휘두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린 신랑은 겁이 났습니다.

틀림없이 신부의 혼전 애인이 신랑을 해치고, 신부를 뺏으려고 온 것이 분명하구나 라고 생각하고 족두리 내리는 것이고 뭐고 그만두고 혼비백산 뒷문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가면 그 괴한이 반드시 자기를 찾아와서 죽일 것만 같아서 집으로도 가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도망을 쳐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만 보면 겁을 내며, 산 속을 헤매면서 온갖 고생을 다

겪고 살아갔습니다.

 

10여 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아간 박 도령은 나이도 들고 철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일이 너무 무섭고 끔찍하기는 하지만 신부가 어떤 놈과 눈이 맞아서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져서 몰래 처가동네에 가보기로 하고, 어느 날 그 동네에 갔습니다.

 

멀리 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김 진사 댁 집은 담이 무너지고 마당에

풀이 우거져서 사람이라고는 살지 않는 폐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박 도령은 동네 주막에 가서 신부 집 내력을 물어봤더니 나이 많은 주모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에 김 진사 댁 딸이 시집을 갔는데,

시집 간 첫날밤 웬일인지 신랑이 도망을 쳐서 행방을 감추어버려

아무리 찾아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신랑이 없어지자 신부는 그때부터 방문을 안으로 닫아 걸고 족두리를 쓴 채 일처 식음을 전폐하고 드디어 굶어 죽어버렸습니다.

신부가 죽자 신부의 부모도 화병이 나서 모두 죽어버렸는데, 신부가 있는 방은 지금도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아무도 들어 가지 못하고, 만일 누구라도 들어가기 위해 문에 손만 대면 큰 열병에 걸려 몹시 앓다가 죽어 버리기 때문에 아직까지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고 신혼 그 때의 상태대로 남아 있으며, 그 집도 흉가라고 해서 아무도 접근을 않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박 도령은 신부에게 간부가 있었던 것이 아니며 무엇인가 오해가 있었던 것이 틀림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즉시 그 집으로 가봤습니다.

그리고 신부가 있는 방문을 열었습니다.

누가 열어도 굳게 닫혀 열리지 않던 문은 박 도령이 손을 대자 쉽게 열렸습니다.

 

방안에는 머리에 족두리를 쓴 신부가 첫날 밤에 앉아 있던 바로 그자리에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박 도령은 조심스럽게 신부의 머리 위에 있는 족두리를 내려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신부는 스르르 옆으로 누우며 한줌의 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마치 박 도령이 언제라도 꼭 돌아와서 오해를 풀고 박 도령의 손으로 족두리를 내려 주기를 기다리기도 한 듯이 박 도령의 손이 닿자 한줌 재가 되어 극락 세상으로 가 버렸습니다.

 

박 도령은 깊은 후회와 비탄에 빠져 들었습니다.

자기의 경솔로 많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불행을 안겨 준 것을 생각하니 죽기보다도 더 큰 뉘우침이 가슴에 치솟았습니다.

그날 밤 박도령은 신혼 첫날 밤에 신부의 족두리들 벗기려고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서 온갖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달빛에 비치는 창 밖에 또 칼을 든 괴한이 어른거립니다.

박 도령은 바로 저 놈이 많은 사람을 불행으로 만든 범인이구나.

내 오늘밤은 기어코 저 놈을 꼭 잡아 구만리장천에서 우는 외로운

고혼들의 원수를 반드시 갚아야지.’하면서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달빛을 흠뻑 받은 커다란 파초가 잎을 바람에 흔들며 서 있었습니다.

박 도령은 땅에 풀썩 주저 앉았습니다. 온 옴에 기운이 쭉 빠졌습니다.

그리고 한없이 한없이 후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길로 박 도령은 머리를 깎고 금강산으로 들어가, 중이 되어 평생토록, 애매하게 죽은 신부와 기타 많은 사람들의 명복을 빌면서 조용히 일생을 보냈습니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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