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등대의 불빛에 담긴 문명의 진보와 아픔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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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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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등대의 세계사
ㆍ주강현 지음 |서해문집 | 376쪽 | 2만원



189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이민자들은 자신이 미국에 도착했음을 등대의 불빛을 보고 알았다. 사람을 실어나르던 배가 미국 뉴욕주 남동부, 롱아일랜드의 끝자리에 위치한 몬타우크 등대의 불빛을 보고 방향을 찾았기 때문이다. 미국 이민국 통계에 따르면 1892~1924년 2000만명의 이민자 중 1428만명이 뉴욕에 내렸다. 뉴욕 곳곳에 내린 상당수 이민자는 뉴욕 최초의 등대 몬타우크의 불빛을 보지 않았을 리 없다. 그들은 그 불빛 속에서 어떤 희망과 꿈을 그렸을까.

책은 해양 문명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등대를 탐구한다. 등대는 바닷길을 밝히며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빛으로 기능했다. 고대 계획도시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졌던 인류 최초의 등대 파로스부터 로마의 오스티아 등대에 이르기까지 고대 등대는 지중해 문명의 시작을 밝혔다.

제국의 등장, 정복 전쟁의 시작과 함께 등대는 살육의 역사와도 함께했다. 바다를 정복해야만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시대, 사람들은 등대의 불빛과 함께 전쟁을 일삼았다. 특히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등 이베리아 세력이 부상한 대항해 시대에는 등대가 필수적이었다. 뱃사람과 상인을 안내하던 등대가 “오직 식민의 등대로만 기능한 경우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에서 볼 수 있다. 포르투갈이 개척한 항로는 에스파냐의 필리핀 항로, 멕시코 항로와 이어져 세계를 하나로 연결했다”. 불빛을 따라 노예와 물자가 오갔다. 등대가 밝힌 것은 인류 문명의 진보와 함께한 아픔의 역사였다.

저자는 동아시아의 등대에도 집중한다. 중국 등대의 역사는 타이완 해협에서 시작됐다. 해양실크로드를 꿈꿨다. 메이지시대 일본의 등대는 제국주의의 발단을 알렸다. 세계를 탐험하는 각국의 배들이 바다를 떠돌 때, 한국의 등대도 불을 비추기 시작했다. 책은 바다 침입자들의 모습을 알리는 횃불과 함께 한국 근대사가 문을 열었다고 서술한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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