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BR>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노회찬, 그의 자살에 동의하지 않는다. 생전에 그가 보여준 신실한 정치활동에 대한 평가에 인색할 이유는 없으나, 죽음 뒤에 펼쳐지는 과도한 예찬 또한 듣기 거북하다. 한 인간의 삶을 놓고 ○X문제풀이 식으로 접근하거나 흑백논리로 재단하는 것은 천박하다. 우리는 모든 이슈에 대해 다면적으로 분석하여 긍정과 부정적 요소를 함께 말하는 일에 서툴기 짝이 없다.

부작용에 대한 대응책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마구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는 악질이거나 최소한 돌팔이다. 중환자일수록 수술계획은 철저히 실용적이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신약(新藥)을 함부로 사용하는 일도 자제돼야 마땅하다. 일어날 수 있는 현상에 대한 예측은 적확(的確)해야 하고 대비책은 과학적이어야 한다. 그게 진보다. 진보는 그래야 마땅하다.

인류는 교졸한 궤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념가설에 의한 비용을 무수하게 낭비하면서 온존해왔다. 그 중에도 이념과잉의 시행착오로 인해 치러야 했던 희생은 너무 컸다. 그 교조적 가설과 세뇌된 오신(誤信)이 빚어낸 비극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대개의 급진주의자들은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명분의 노예가 되어 자신들의 오판과 부작용에 대해서 무책임하다.

국민들은 문재인정부를 노무현정부의 후예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이제 많은 전문가들이 차이점을 적나라하게 짚어가며 ‘퇴보’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노무현정부의 정책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른 실용주의’로 지칭된다. 교조적 극좌들이 ‘변절’이라고 마구 공격을 해댔을 때, 분노와 좌절을 금치 못하던 노 전 대통령의 처연한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문재인정부가 진보 교조주의의 덫에 걸려든 징조들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현장의 무성한 비명을 무시하고 “최저임금이 고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없다” “최저임금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 그 명징한 조짐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장기 성장동력 확충과는 무관하다. 알바생들의 시급을 올려서 나라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발상은 개그 소재로도 못 써먹을 공염불이다. 안 되면 전 정권 탓만 해온 문재인정권의 핑계가 늘고 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최저임금 인상 파동과 관련 “정부정책 방향이 잘못됐다기보다 우리 경제 구조적 문제 영향이 더 크다”고 말했다. 빠져나갈 구멍부터 만들어 놓고 일하는 장관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최저임금 파동에 대한 대책을 말하는 진보운동가들의 철없는 논리는 소름을 돋게 한다. “자영업자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더 망해야 한다”는 망발까지 주저하지 않는다. 파생될 문제점들에 대한 대비책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안 보이는 그 강퍅한 인식을 떠받치고 있는 알량한 지식의 두께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재벌개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부동산 보유세 강화, 복지증세, 관료개혁…. 단 한 가지도 동의하지 못할 목표는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체력과 체질이 부작용을 견딜만한 상황인지에 대한 철저한 계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이 지난 5월에 쓴 칼럼 한 토막을 빌린다. ‘좋은 음식도 너무 많이 먹으면 탈이 난다. 체질에 맞지 않는 경우는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노회찬이 지난 17대 의원 시절을 반성하면서 내놓은 고백은 오늘날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진보진영에게 필요한 건 실용노선, 즉 실사구시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되돌아봐도 성공한 혁명은 모두 실용노선이었다. ‘실사구시’를 진보의 기본철학으로 삼아야 한다” 자기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의 죽음 앞에서 눈물콧물만 쏟고 있을 계제가 아니다. 그가 남긴 숙제를 풀어내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여 ‘진보의 퇴보(退步)’를 막아내는 게 우선이다. 고(故) 노회찬 의원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