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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대인명사전

오창석

[ 吳昌碩 ]

출생 - 사망 1844년 ~ 1927년

청나라 절강(浙江) 안길(安吉) 사람. 서화가(書畵家)이며 전각가(篆刻家). 이름은 준경(俊卿)이고, 자는 향보(香補)였는데, 중년 이후에 창석으로 바꾸었고, 창석(倉碩) 또는 창석(蒼石)라고 쓰기도 했다. 호는 고철(苦鐵) 또는 부려(缶廬), 대롱(大聾)이다. 어려서부터 수재였는데, 17살 때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이 고향에까지 미쳐 가족을 데리고 오랫동안 노수(濾水)에 살면서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시와 그림, 글씨, 전각에도 조예가 매우 깊었다. 한나라의 비문(碑文)을 많이 읽었고, 역대 전각의 장점을 취한 새로운 전각법을 개발했는데, 서법(書法)과 전각 분야에서의 업적이 탁월하다. 석고문(石鼓文)을 연구하면서 석고 문자를 모방한 글씨를 잘 썼고, 독자적인 전법(篆法)을 창안했다. 오른쪽 어깨를 치켜 올린 신선한 모양의 전서(篆書)와 예서(隸書),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에 모두 정통했고, 30살 이후에는 전서 필법(筆法)으로 그림을 그렸다. 만년에는 주로 전서와 예서, 광초(狂草)를 썼는데, 호쾌하고 분방했다. 또 해서는 굳세고 힘이 넘치는 것이 특징이다.

청나라 말기에 직례지주(直隷知州), 53살 때 만주(滿洲) 안동현령(安東縣令) 등을 지냈지만, 1개월 만에 사직, 10년 남짓의 벼슬 생활을 청산하고 강소(江蘇) 상해(上海)에 몸을 숨기고 문예에 전념했다. 근대 이전 전각의 마지막 대가로,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여 화단(畵壇)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보(印譜)에는 『삭고려인존(削觚廬印存)』과 『오준경인존(吳俊卿印存)』 등이 있고, 서화집에는 『고철쇄금(苦鐵瑣金)』 등이 있다. 저서에 『부려시(缶廬詩)』 4권과 『부려인존(缶廬印存)』 2권, 그 밖에 많은 화집이 있다. 그림에 「등화난만도(藤華爛漫圖)」(1916)와 「모란목련도(牧丹木蓮圖)」(1924), 「벽도개화도(碧挑開華圖)」, 「옥란도(玉蘭圖)」, 「자등도(紫藤圖)」, 「추국가색도(秋菊佳色圖)」, 「파초장미도(芭蕉薔薇圖)」 등이 있다.

관련이미지

오창석의 글씨 전서

오창석의 글씨 전서 출처: 미술대사전(인명편)

출처

제공처 정보

『중국역대 인명사전』은 중국 고대부터 청나라 말기까지 활동한 중국인 12,000여 명의 행적을 정리한 것이다. 현대 인명은 책의 성격과 능력의 한계 때문에 배제되었다고 한다.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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