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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환 4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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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환 서울대 중등교육연수원 교수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중어중문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 1037년 1월 8일 지금의 쓰촨성(四川省) 메이산(眉山)에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순(蘇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본명이 식(軾)이고 호가 동파인데 본명보다는 호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스물두 살 되던 해인 1057년에 진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공부를 계속하여 스물여섯 살 되던 해인 1061년에는 제과(制科)에 합격했다. 그러나 신법파의 모함으로 그의 관직생활은 고단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일생의 대부분을 유배생활과 각지의 지방관 생활로 보내다가 1101년 7월 28일 딴쪼우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얻은 병으로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향년 예순여섯 살이었다. 그는 사상의 폭이 매우 넓어서 유가사상을 근간으로 했지만 도가사상(道家思想)과 불가사상(佛家思想)에도 심취해 있었다. 유가사상은 그로 하여금 끝까지 관직을 지키며 지식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도가사상과 불가사상은 곤경에 처할 때마다 쓰러지지 않도록 그를...

  • [『금병매』는 과연 야한 소설일까?] 중국 문학에 관심이 있는 한국 사람이라면 '중국 시' 하면 이백이나 두보 그리고 '소설' 하면 『삼국지』와 『수호지』ㆍ 『서유기』ㆍ 『금병매』를 서슴지 않고 거론한다. 어려서부터 유비ㆍ장비ㆍ조조ㆍ제갈량, 송강, 손오공ㆍ삼장법사ㆍ저팔계, 반금련ㆍ서문경ㆍ무송ㆍ무대 등의 이름을 들었기에 비록 읽지는 않았더라도 상당히 친숙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학에서 소설을 전공하는 학생들 중에서도 네 작품을 다 읽은 학생은 극히 드물다. 특히 노골적인 성(性)의 묘사와 문란한 애정 행각의 대명사로 알려진 야한 소설 『금병매』는 그러한 선입관 때문에 사람들이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부터 전해 내려온 이야기, 즉 서문경과 반금련이 펼치는 온갖 애정 행각이 너무 야해서 함부로 그런 것을 읽으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흥미와 호기심은 있으나 읽기를 포기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금병매』는...

  • [『삼국지』의 역사는 텍스트의 진화사] 『삼국지』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정작 원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다. '통속'이란 요즘으로 치자면 선비나 귀족들이 아니라 일반 시민 대중들이 즐기는 대중적인 장르에 속한다는 뜻이며, '연의'란 "사실을 부연하여 재미있게 풀어 설명한다"는 뜻으로, 그런 내용이 담긴 책이나 창극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통속연의'라는 네 글자를 뺀 『삼국지』는 진수(陳壽)1)가 남긴, 위서(魏書) 30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을 합하여 모두 65권으로 이루어진 역사책이다. 진수는 진(晋)나라 사람이고, 진나라는 조조가 세운 위나라로부터 국권을 선양(禪讓)받은 나라였기 때문에 조조를 정통으로 하여 역사를 기술했다. 그럼에도 조조(曹操), 손권(孫權), 유비(劉備)에 대한 인물 평가는 공정을 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조는 "비범하고도 초인적이며 걸출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유비에 대해서는 "한 고

  • [『초사』는 어떤 책인가?] '초사'라는 명칭은 한나라의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 처음 보인다. 이것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가 완성된 기원전 91년에는 이미 초사가 유행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때의 '초사'는 글자 그대로 초나라의 노래라는 뜻이었다. 왜냐하면 『초사』라는 책은 이보다 조금 뒤인 서한(西漢) 시기의 인물인 유향(劉向)의 손을 거쳐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기 때문이다. 즉, 당시에는 초나라 민요풍의 노래가 유행했었는데 후에 이것이 『초사』라는 책으로 엮어진 것이다. 유향이 『초사』에 넣은 작품은 모두 16개였다. 굴원(屈原)의 작품을 비롯하여 송옥(宋玉), 경차(景差), 회남소산(淮南小山), 동방삭(東方朔), 엄기(嚴忌), 왕포(王褒), 유향 자신의 작품들이 한데 묶였고 이때부터 초사는 책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로 초사는 중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노래이자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었다. [중국인들의 영원한 애국시인, 굴원] 일반적으로

  • [이백의 위상(位相)] 당시(唐詩)를 중국 문학의 꽃이라 말하거니와 이백(李白)의 시는 꽃 중의 꽃이다. 현전하는 그의 시는 문집에서 누락된 일부 작품을 포함해서 대략 1천여 수에 이르는데, 청나라 때에 출간된 『전당시(全唐詩)』에 수록된 시가 약 5만 수이고 시인 수가 2천2백여 명인 것을 생각하면 수량만으로도 그의 시가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양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중국 시가전통에서의 위상이다. 이백은 이전의 시 전통을 집대성하여 찬란하게 빛나는 당시(唐詩)를 탄생케 한 시인이다. 그는 보고들은 모든 것, 나아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것까지도 모두 자신의 시의 재료로 삼아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로 연출해내는 비법을 지닌 듯하였다. 그가 뿜어내는 다양한 빛깔의 언어와 그것들이 빚어내는 천의무봉의 자연스러움은 당시(唐詩)의 성취를 대표하기에 손색이 없다. 시는 시인의 삶과 이상 그리고 절망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백의 시를

  • [중국인의 자부심, 시] 중국의 명주 중 하나인 분주(汾酒)의 술병에는 "주막이 어디에 있는가 물으니 / 목동은 저 멀리 살구나무 마을을 가리키네"라는 두목(杜牧)1)의 시구가 쓰여 있다. 이 광고 문구는 술의 산지가 산서성(山西省) 분양현(汾陽縣) 행화촌(杏花村)이라 두목 시구와 딱 맞아떨어지기도 하지만 살구나무 우거진 곳에 술 익는 내음을 상상하게 하여 마시기도 전에 이미 한가롭고 아름다운 풍경에서 풍겨나오는 향기에 푹 빠지게 하는 묘미가 있어 분주의 명성을 배가시키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고 자극적인 것을 기대하는 이 시대에 긴 호흡을 필요로 하고 잔잔한 여운을 느껴야 하는 시는 더 이상 읽히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중국인은 천 년 전의 시구를 글쓰기의 최첨단이라 할 수 있는 광고 문구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는 수천 년간의 역사를 자랑하며 현재까지도 함께 호흡하고 있는 시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에서 근원한 것으로 보

  • [『홍루몽』, 무엇이 중국인을 열광케 하는가?] 『홍루몽(紅樓夢)』을 언급하면 중국에서는 "무궁무진하게 쏟아져 나오는 화제의 원천"이라고들 말한다. 어느 곳이든 중국인이 모인 자리에서는 이 책이 한번 거론되기만 하면 순식간에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라 좌중의 분위기를 흥분시킨다. 사실 『홍루몽』은 간단히 말하면 그저 한편의 소설일 뿐이다. 하지만 지난 2백여 년 동안 근ㆍ현대의 중국인들에게 『홍루몽』은 소설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이 작품을 '만리장성과도 바꿀 수 없는 중국인의 자존심'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어떻게 하여 감히 '경학(經學)'에 빗대는 말로, 일개 소설을 연구하는 학문을 일컬어 '홍학(紅學)'이라고 말하게 되었을까? 또 그 홍학은 어떻게 하여 20세기 초엽부터 중국은 물론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였던 갑골학(甲骨學) 및 돈황학과 더불어 3대 현학(顯學)1)의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단순한 연애소설로 끝날 것 같았던 『홍루몽』과 그의 작자에

  • [철학을 생활화한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동진(東晋)과 송(宋)의 왕조 교체기를 살았다.1) 후한(後漢) 말기 이래의 정치ㆍ사회적 혼란은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기간에도 계속되었고 위(魏)를 이은 서진(西晋)은 전쟁과 대립으로 얼룩졌던 삼국을 통일하였지만, 황제들의 무능과 이민족의 침략으로 단기간에 막을 내렸다.2) 이민족에게 중원을 빼앗긴 채 남쪽 건업(建業)에 도읍한 동진은 혼란이 극심하여 100여 년 동안에 크고 작은 반란과 전쟁 그리고 농민 봉기가 계속되었다. 도연명이 살던 시기에 재위했던 동진의 제왕 다섯 명 가운데 네 명이 폐위되거나 살해당한 사실이 이러한 혼란을 대변한다. 그리하여 결국 유유(劉裕)에게 멸망당했던 것이다. 도연명은 혼란한 시대를 살면서도, 그 속에서 좌절하거나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다. 그것은 현실과 사회를 중시하는 유가와, 자연과 개인을 강조하는 도가로부터 각각의 장점을 조화해 낸 그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에...

  • [동아시아 상상력의 근원을 찾아서] 당신은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1)의 『상상동물 이야기』라는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 보르헤스, 이 괴짜 작가는 그야말로 상상력의 화신이라 할 만큼 기발한 작품들을 많이 썼다. 그 덕택에 우리는 세상이 평면경에 비쳐진 것처럼 똑바른 것만 아니고 볼록거울이나 오목거울에 비쳐진 것처럼 굴곡지게 생겼다는 것도 알게 되고, 정상적인 일과 더불어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도처에 편재해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당신은 상상력의 힘을 실감하는가? 미국의 한 저명한 잡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오늘날의 첨단 과학 기기는 대부분 과거의 SF소설이나 만화에서 상상했던 일들이 실현된 케이스라 한다.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를 읽어보면 동서고금의 수많은 이상한 동물들이 출현한다. 가령 사자도 이길 수 있다는 일각수(unicorn)에 대한 기록을 보자. 어떻게 일각수를 잡을 것인가? 일각수 앞에 처녀를 데려다...

  • [젊어서는 『수호전』을 읽지 말라] 『수호전(水滸傳)』은 『삼국연의』와 함께 널리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고전 소설이다. 그래서 『수호전』은 늘 『삼국연의』와 함께 병칭되었고, "젊어서는 『수호전』을 읽지 말고 나이 들어서는 『삼국연의』를 읽지 말라"는 유명한 말이 생겨났다. 『삼국연의』에는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으니 이미 삶의 연륜이 쌓인 노회한 사람들에게는 불필요 하다는 뜻이고, 『수호전』은 정의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적합하니 젊음 그 자체가 발산하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는 뜻일 것이다. 『수호전』에는 무려 108명의 비범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각각의 면모를 살펴보면 그들이 대개 사회의 기존 질서에 순응하거나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암흑가 출신이거나 땡땡이 중이거나 관료생활을 했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거나 모함을 받아 도망친...

  • [백거이와 정주영]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부싯돌 불꽃처럼 짧은 순간 살거늘. 풍족한대로 부족한대로 즐겁게 살자, 하하 웃지 않으면 그대는 바보.1) -「술잔을 들며」 예나 지금이나 잊혀졌던 인물이 역사의 무대에 다시 등장해 세인의 눈길을 끌게 되는 것은 그것을 주도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대중의 반향이 사뭇 다르다. 보통사람들은 아무리 떠들어도 돌 위에 물 붓듯 먹혀들어가지 않지만 유명인사일 경우 사정은 달라져 마치 물 위에 돌 던지듯 효력이 금세 크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오랜만에 이 나라 대중에게 백거이와 그의 시를 일깨우고 화제가 되게 한 사람은 현대그룹의 고 아산 정주영 씨였다. 작년엔가 그를 추모하는 기사에서 생전의 그가 서재에 걸어놓고 음미하던 시 한편이 소개되었는데, 바로 위에서 소개한 백거이(白居易)의 「술잔을 들며」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수많은 금언과 경구들이 태산처럼 쌓여 있었을 텐데, 그는 왜 하필 백거이의 그것을 선택하였을까?...

  • [올해도 서른 명의 소동파가 나왔다] "올해도 서른 명의 소동파가 나왔다." 이것은 고려 시대의 문학가 이규보가 그의 「전이지(全履之)에게 답하여 문장에 관하여 논하는 편지」에 인용한 것으로 당시 과거 시험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이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던 말이라고 한다. 서른 명이라고 한 것은 과거 시험 합격자의 수인 33명을 개략적인 숫자로 나타낸 것이니 당시 젊은 학자들이 과거에 합격하기만 하면 모두 소동파(蘇東坡)의 시풍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과거에 합격하기 전에는 시험 준비로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부득이하지만 일단 과거에 합격하기만 하면 그때부터 너도나도 소동파의 시풍을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던 고려 문단의 기풍을 엿보게 하거니와, 조선 시대의 대학자 김종직도 『청구풍아(靑丘風雅)』의 서문에서 "고려 중엽에는 소동파 시만 배웠다"고 한 것을 보면 고려 중엽 이후 우리나라 문인들 사이에 소동파의 시풍을 배우려는 기풍이 만연해...

  • 중국 역사상 최초의 여황제 측천무후 치세 말년에 지금의 중앙아시아 쇄엽(碎葉)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으며 자(字)를 태백(太白)이라 했다. 5세에 아버지를 따라 사천 지방으로 이주하여 유년기를 보낸다. 25세경 고향 사천을 떠나 전국을 만유하며 시우(詩友)를 사귀고 자신의 재능을 인정하여 관직에 추천해줄 인사를 찾아다닌다. 42세에 드디어 오균(吳筠)의 천거로 장안(長安)에 입성, 현종을 알현하고 한림공봉(翰林供奉)이라는 직책을 제수 받는다. 그러나 황제를 대신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연회에 불려질 노래를 짓는 등의 임무에 만족하지 못하고 마침내 채 2년이 못되어 장안을 나온다. 이후 다시 중원 지역을 만유하며 두보ㆍ고적 등의 시인들과 친분을 맺고 혹은 도교에 입문하여 도사 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 후 이백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영왕의 반란에 일조하게 됨으로써 역모에 가담한 죄로 사형에 처해질 위험에 봉착하게 되었으나 지기(知己)의 도움으로 유배형을 받게 되고 다시...

  • [왕유, '벼슬하며 은거한' 그 고뇌에 찬 삶] 자연은 만물의 고향이요, 안식처이다. 더욱이 일상의 고단한 삶에 지친 현대인이 본연(本然)의 순수(純粹)를 동경하며 편히 쉴 곳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자연뿐이다. 중국 당(唐)나라 때 결코 득의하지 못한 벼슬아치로서 고뇌에 찬 삶을 살았던 왕유가 "밝은 달빛은 솔숲 사이로 비쳐 오고 / 맑은 샘물은 산석 위로 흐르는" 자연의 품속에서 정신적 해탈을 추구한 것은 분명 공감(共感)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필자는 강촌(江村)의 자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후 줄곧 도회(都會)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몸소 밭가는 전원의 삶에서 인생의 참뜻을 깨닫고 희열의 노래를 부른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보다는 왕유(王維)의 시를 읽으며 한층 더 공감하게 된다. 중국은 '시(詩)의 나라'라고 일컬어질 만큼 역대로 시의 대가(大家)와 명작이 속출하였으며, 특히 당시(唐詩)의 성과와 지위는 독보적이었다

  • [『반지의 제왕』보다 수백 년 앞선 중국 판타지] 21세기는 판타지(fantasy)의 세기다. 판타지 마니아들의 성전(聖典)인 톨킨(Tolkin, J. R.)의 『반지의 제왕』을 저본(底本)으로 한 영화가 2002년 벽두를 장식했고, 롤링(Rowling, J. K.)을 하루아침에 세익스피어보다 인기 있는 영국 작가로 만들어 버린 해리 포터의 열풍은 아직도 식을 줄을 모른다. 책장 속에서 오랫동안 먼지에 덮힌 채 잊혀진 듯했던 '숨은 이야기'들이 속속 압도적이고 환상적인 영상과 함께 되살아나고 있다. 올 겨울에도 극장가는 『그림형제』, 『나니아 연대기』 등의 판타지의 세계로 관객들을 인도할 것이다. 우리는 이쯤에서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그렇다면 판타지는 서구 문명의 고유한 산물인가? 동아시아 전통 속에는 판타지라고 불릴 만한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 걸까? 돌아보면 우리의 서사 전통 속에도 수많은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존재했다. 『홍길동전』이나 『구운몽』 같은 우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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