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 소설 주인공 '어린왕자'…세계문화유산 통도사에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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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0.19. 오전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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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각' 개척한 이영섭 씨 '어린왕자와 부처님'展

[ 김경갑 기자 ]
프랑스 소설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1900~1944)의 《어린왕자》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감동시키는 고전 중 고전으로 꼽힌다.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 조종사인 화자에게 어린왕자가 일곱 행성에서 겪었던 일들을 전해주는 과정에서 따뜻한 인간애와 섬세한 관찰력을 엿볼 수 있다. 생텍쥐페리는 어린이 눈을 통해 어른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또 어떻게 살 수 있는지를 가르쳐준다. 어린왕자의 시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한다’는 부처의 가르침과도 맞닿아 있다.

소설책 《어린왕자》와 부처의 교훈을 시각예술로 조명하는 이색 전시회가 마련됐다. ‘발굴 조각’이란 독특한 장르를 개척한 이영섭 씨(57)가 다음달 4일까지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펼치는 ‘어린왕자와 부처님’전이다. 올해 《어린왕자》 출간 70주년과 통도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동시에 아우르는 기획전이어서 눈길을 끈다.

경내에는 소설에 등장한 어린왕자와 여우, 바오바브나무를 비롯해 고졸미(古拙美)가 흐르는 백제 불상과 반가사유상, 마애불 등 40여 점을 나눠 배치했다. 이씨는 “오래전 어린왕자를 세계 유명 장소에 묻고 ‘발굴’해내는 작업을 준비해 왔다”며 “어린왕자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장소가 통도사가 된 셈”이라고 했다.

작가가 어린왕자 프로젝트의 첫 전시공간으로 화랑과 미술관이 아니라 고찰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그는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 어린이였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며 “부처의 가르침을 어린왕자의 눈높이나 색깔로 보여주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주문 앞에는 풍화돼 구멍이 숭숭 난 퇴적암 형상으로 6m 크기의 어린왕자(사진)가 입구에 버티고 서 있다. 목도리가 휘날리는 ‘어린왕자’의 모습을 불심의 질감으로 건져 올려서인지 포근하게 다가온다. 또 해학미 넘치는 마애불과 불상은 잊히거나 잃어버린 것들을 그리워하는 현대인의 소망을 일깨워 준다.

그의 작품은 나무를 깎거나 돌을 쪼고, 주물이나 용접 등으로 금속을 조형화하는 기존 조각의 통념을 완전히 뒤집는다. 먼저 땅 위에 드로잉하고 흙을 파낸 다음 그 속에 퇴적암과 기와, 칠보석 등의 파편을 깔고 모래와 반죽한 시멘트를 채운다. 다시 흙을 덮어 일정 시간 굳힌 뒤 이 시멘트 형상을 ‘고구마 캐듯’ 조심스럽게 캐낸다. 황토물을 입히거나 눈과 코, 입술 등의 표정을 그리면 작품이 태어난다. 유물 파편이 박힌 작품은 자연의 갖가지 흔적을 오롯이 드러낸다. 미완성된 듯하지만 세련되고, 성기게 모자란 듯 거칠고 투박하지만 자연스럽고 예스럽다.

이씨는 “앞으로 한국 미의 원형을 ‘발효’시켜 묵묵히 시간을 발굴하는 데 주력하면서 뉴욕, 파리, 런던 등 대도시를 돌며 ‘어린왕자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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