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품 마케팅이 아니라 패션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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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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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비자리, 디렉터 미켈레
경영·디자인 완벽한 역할 분담
밀레니얼 세대 분석한 적은 없어
거리에서 패션 에너지 찾고 싶어
10일 저녁 중국 상하이 유즈 뮤지엄에서 열린 '아티스트 이즈 프레즌트' 오프닝 행사에 참석한 구찌 CEO 마르코 비자리(사진 왼쪽)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 [사진 구찌]
구찌에서 12년간 일하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프리다 지아니니의 어시스턴트를 하기도 했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2014년 말에는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패션은 그냥 상품일 뿐이었다. 지아니니 퇴진 후 새 디렉터 후보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그러던 12월 어느날 보테가 베네타 회장을 지내고 구찌의 CEO로 막 출근한 마르코 비자리의 갑작스런 전화를 받았다. 자신의 집으로 CEO를 초대한 미켈레는 4시간 동안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숫자나 마케팅 이야기로 말문을 열지는 않았어요. 대신 ‘우리는 어떻게 해야 앞으로 일해야 할 직장을 좋아할 수 있을까?’ ‘왜 우리는 럭셔리 월드에 있을까?’ ‘왜 우리는 패션에 관심이 있을까?’를 얘기했죠. 패션 대신 마케팅에 너무 치중했다는 걸 깨달았고, 이제 그 상자에서 나와야 한다는데 공감했습니다.”(비자리, 이탈리아 계간지 ‘리비스타 스튜디오’ 2018 여름호)

최종 후보 명단에 미켈레를 올린 비자리는 갑작스런 요청을 했다. 2015 FW 남성복 런웨이를 확 바꿔보라는 주문이었다. 쇼가 단 1주일 남은 시점이었다. “전 미켈레가 위험을 어떻게 감수하는지 또 극복하는지 보고 싶었어요. 만약 노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을 찾을 생각이었죠.”

“뭐 상관없었어요. 어차피 다음날이면 잘릴 수도 있는데. 다만 뭔가 아름다운 걸 보여주고 싶었죠. 내 안에 있는 바로 그걸 말이죠.”(미켈레, AnOther 매거진 2018년 봄여름호)

미켈레는 비행기 기술자였지만 수도승 같았던 괴짜 아버지와 영화사에서 일하며 1960년대 로마 영화의 화려함을 찬미하던 멋쟁이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패션 피플이었던 쌍둥이 이모의 옷차림에 대한 평가는 소년의 또다른 낙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주말이면 그를 공원이나 경기장이 아니라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데려갔다. 덕분에 고대 로마·튜더 왕조의 영국·중세 프랑스·르네상스 이탈리아·30년대 파리와 70년대 런던 그리고 80년대 할렘은 숨겨진 것과 금지된 것에 관심 많던 호기심 소년의 우주를 형성했다. 옥션과 벼룩시장에서 모아온 수많은 이상하고 기묘한 물건들 역시 그의 창의력을 완성하는데 일조했다. “모든 오래된 물건들은 말을 걸어요. 그리고 저는 그걸 듣고 싶어하는 유일한 사람이고요.”(독일 잡지 032c)

“미켈레는 저녁을 같이 먹고 싶은 사람입니다. 재주가 많죠. 그와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재미있어요. 그와 밀레니얼 세대 독자 분석을 한 적은 없습니다. 우리는 소비자에게 직접 말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토론했고, 원하는 것을 했을 뿐입니다.”

“저는 인간적인 패션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날씬한 다리와 멋진 금발로 가득한 우아한 제트기 세상이 아니라 거리에서 그런 에너지를 찾고 싶습니다.”(뉴욕타임스 T매거진 10월 15일자)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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