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PC방 살인사건으로 본 심신미약 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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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미약 감정은 의학적 판단… 결과 수용여부는 재판부 고유권한

정신장애·변별능력 관련 法조항 필요… “치료·처벌대상 구분해야”

‘형벌 책임주의’ 원칙에 입각

형법 제2장 1절 10조에 규정

구체기준 없어 판례 의존 많아

1개월여 정신과전문의와 면담

뇌파·행동·인성 검사 등 거쳐

의사 7명·공무원 2명이 심사

치매·최면상태 등도 심신미약

음주·약물중독탓 인정 받기도

여아 폭행·강간·중상해 입혔던

조두순‘미약’인정받아 곧 출소

강남역 묻지마 살인범도‘감경’

‘흉기’ 준비한 수원 PC방 사건

‘조현병’가해자 무기징역 선고

인천 초등생 살인범도 不감경

의료계 “정신질환, 원인 아냐”

음주·마약제외 개정안 계류중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의 피의자 김성수(29)가 심신미약으로 인해 형을 감경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며 논란이 일고 있다. 그가 경찰에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우울증 등 심신미약으로 처벌이 감경돼서는 안 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에는 현재 100만 명 이상이 동의한 상황이다. 역대 청와대 국민청원 사상 가장 많다. 형법에는 ‘심신미약으로 인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고 돼 있다. 이는 ‘책임 없는 자에게 형벌을 부과할 수 없다’는 형벌 책임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법에는 사물을 변별하는 능력 등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어 법원의 판단은 매번 상황에 따라 달랐다. 심신미약 자체보다 범행 당시와 전후 상황을 더 중요하게 봤기 때문이다.

1. 심신미약 감경이란

형법은 제2장 제1절을 통해 ‘죄의 성립과 형의 감면’을 규정한다. 구체적으로 심신미약과 관련해서는 제10조를 통해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심신장애로 인해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항목이 없어 심신미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론과 판례에 의존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법원에서는 조현병, 조울증과 같은 내인성 정신질환뿐만 아니라 치매나 최면상태 등의 의식장애 등도 심신장애·미약으로 보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정신질환뿐만 아니라 음주, 약물중독, 충동장애도 법원에서 심신미약으로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

2. 왜 감경논란 촉발됐나

논란이 촉발된 것은 지난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강서구 피시방 살인 사건.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라는 글을 통해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젊은 청년의 사연이 알려지면서부터다. 피해자 지인의 가족이라는 청원자는 게시글에서 “(피해자가) 모델을 준비하며 고등학교 때도 자기가 돈 벌어야 한다며 알바 여러 개 하고 그러면서도 매일 모델 수업을 받으러 다닌 성실한 형이라고 한다”며 “언제까지 우울증, 정신질환, 심신미약이라는 단어들로 처벌이 약해져야 하느냐”고 전했다. 어려운 처지에도 성실하게 살아온 청년이 잘못 없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점에 분노가 가중됐다는 의미다.

또 그간 음주를 심신미약으로 판단해 형을 감경받은 사례 등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사법 불신이 커졌다는 점을 분노의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강력 범죄를 저질러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범죄자 중에도 심신미약이 인정돼 감형된 사례가 있다. 왼쪽부터 8세 여아를 성폭행하고 중상해를 가한 조두순, 영등포 초등학생 성폭행범 김수철,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 씨, 중학생인 딸의 친구를 성추행하고 살해한 이영학. 오른쪽 위 원안 사진은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 피의자 김성수.


3. 심신미약 판정은 어떻게

충남 공주시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에서 입원 절차를 마친 뒤 보통 2∼3주, 길게는 한 달 정도 정신과 전문의와의 개인 면담이 이뤄진다. 뇌파, 행동검사와 다면적 인성검사도 함께 진행된다. 다른 환자와의 교류 등 감호소 생활도 다양한 각도로 평가한다. 이 과정에서 담당 주치의는 정신질환이 있는 척하는 경우를 염두에 두고 관찰해야만 한다. 이후 모든 검사를 종합해 최종적으로 정신감정서를 작성하게 된다. 감정엔 정신과 전문의 7명과 담당 공무원 2명이 심의위원으로 참여한다. 다만 심신미약 판정은 의학적인 판단이며 감정 결과 수용 여부는 재판부의 고유 권한이다.

4. 인정땐 무조건 감경되나

법정에서 형법상 심신미약 상태가 인정된다면 형벌을 감경받아 법정형 범위가 낮아지게 된다. 다만 일반적인 정신병질, 이른바 심신장애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무조건 형벌이 감경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형법상 심신미약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요소인 ‘심신장애’와 심리적 요소인 ‘사물 변별 능력 또는 의사결정 능력의 미약’이 함께 존재해야 한다. 심리적 요소인 후자는 법률적인 사항이므로 법원이 판단한다. 조철옥 탐라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논문 ‘강력범죄자의 정신이상 항변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75명의 정신장애 범죄에 대해 감정의가 44명(58.7%)을 ‘심신상실’, 26명(34.7%)을 ‘심신미약’, 5명(6.6%)을 ‘책임 능력이 있다’고 감정한 반면, 법원은 ‘심신상실’ 16명(21.3%), ‘심신미약’ 44명(58.7%), ‘책임 능력이 있다’ 15명(20%)으로 판정했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우울증 진단서를 내는 것만으로는 형법상 심신미약 상태를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여기서 나온다.

5대표적 감경사례는

살인·강간 등의 흉악범죄도 심신미약이 인정돼 형벌을 감경받는 경우는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2008년 여자 어린이를 유인해 강간, 폭행하고 중상해를 입힌 조두순(당시 56세)은 법원에서 검찰의 구형량인 무기징역보다 낮은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조 씨가 술에 취하면 정상적 행동을 하지 않는 자신의 성향을 알면서도 술을 마신 뒤 범행을 저질렀다”고 강조했지만 법원은 “알코올 의존증 환자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조 씨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모(당시 34세) 씨 역시 피해망상 등의 심신미약 상태가 인정돼 검찰이 구형한 무기징역보다 낮은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6감경불가 사례는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심신미약 상태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만성 신경 정신 질환이다. 당시 피고인들은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를 집으로 유인해 살해하고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치밀하고 잔혹한 계획 범죄’를 저질렀음을 이유로 피고인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았고 18세 미만인 피고인이 받을 수 있는 최장기형인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심신미약이 인정됐지만 무기징역이라는 중형이 선고된 경우도 있다. 2015년 경기 수원의 PC방에서 흉기를 휘둘러 1명을 숨지게 하고 3명에게 부상을 입힌 이모(42) 씨에 대해 법원은 이 씨가 조현병을 앓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1·2심에서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당시 1심은 “이 씨가 흉기를 미리 준비했고 피해자 수가 많은 데다 부상자들이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며 고통받고 있다”며 중형을 선고했다.

다만 살인죄의 경우 법정 최고형은 사형이기 때문에 이 경우에도 형벌이 감경은 된 셈이다.

7왜 재판부마다 다르나

재판부마다 심신미약으로 인한 양형에 대한 판단이 다른 이유는 판사들은 질환 자체보다 범행 당시 상황과 피고인의 재범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는 ‘정신적 장애가 있는 자라고 해도 범행 당시 정상적인 사물 변별 능력과 행위통제 능력이 있었다면 심신장애로 볼 수 없다’고 명시했다. 실제 일선 법원에서도 정신질환 자체보다 범행 당시와 전후 상황에 주목한다. 이 때문에 심신미약을 감경 사유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범행이 계획적이거나 피해 정도가 심각하면 높은 형을 선고할 수도 있다. 다만 재판부에 따라 정신질환 등을 이유로 형량을 낮추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는 만큼, 관련법 조항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은 심신미약자의 의미나 행위의 내용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어 정신장애 항목을 세분화하고 사물 변별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에 대한 개념화를 확실히 해 치료 대상과 처벌 대상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는 요구다.

8. 의료계 입장은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는 최근 입장문을 통해 “사건과 관계없는 다른 선량한 정신질환자들이 오해와 편견으로 고통을 받는 경우가 있다”며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과 심신미약 상태는 전혀 다른 의미”라고 밝혔다. 협회는 “기본적으로 심신미약이란 형법상의 개념으로 정신의학이 아닌 법률상의 개념”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중대한 범죄는 사회의 안전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엄중히 처벌받아야 한다”며 “따라서 심신미약 상태의 결정은 단순히 정신질환의 유무가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과 심도 있는 정신감정을 거쳐 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리는 전문적인 과정을 거친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신질환과 심신미약은 동일 선상에 있는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협회는 “정신질환은 그 자체가 범죄의 원인이 아니며 범죄를 정당화하는 수단은 더더욱 아닐 것”이라며 “치료받아야 하는 정신질환이 있다면 치료를 받게 하고 처벌받아야 할 범죄가 있다면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9. 보완점은 없나

현행 형법상 심신미약 감경 규정은 필요적으로 적용하게 돼 있어서 재판부의 재량권이 적다는 한계가 있다. 자의적으로 유발한 음주 등 상태를 심신미약으로 인정하거나 특히 성범죄·아동 대상 범죄 등에서도 심신미약을 감경 사유로 인정하는 법체계 하에서는 비판 여론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한 형법·관련법 개정안들이 수십 건 계류돼 있다. 형법 제10조의 강행규정을 임의규정으로 바꿔 재판부가 범죄의 질에 따라 감경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를 두도록 하거나 ‘음주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의 약물에 의한 심신장애의 경우 형을 감경하지 않는다’는 항목을 추가하는 등의 개정안들이다.

10 감경되는 다른 경우

형법에는 심신미약처럼 필요적 감경 사유로 농아의 범죄행위인 경우나 종범의 범죄행위인 경우 등을 규정해놨다. 미수범이거나 범행 후 수사기관 등에 자수했을 경우 등은 임의적 감경사유다. 이 밖에 법관은 형법 제53조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때 작량(酌量)해 그 형을 감경할 수 있다’는 조항에 따라 감경할 수도 있다. 감경으로 법정형의 범위 자체를 낮추고 형법 제51조 등에 따라 양형 사유를 살핀다. 이때 △범인의 연령·성행·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이 고려된다.

임정환·이정우·김리안·손우성 기자 yom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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