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원제: Blade Runner)=감독: 리들리 스콧/출연: 해리슨 포드, 룻거 하우어, 숀 영, 대릴 한나, 조 터켈, 브라이언 제임스, 윌리엄 샌더슨/제작: 1982년 미국/러닝타임: 117분/시청연령: 15세.
 

블레이드 러너

[위클리오늘=설현수 기자] ebs 추석특선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별칭은 '저주받은 걸작'이었다. 필립 K.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원작으로 하지만 영화는 원작의 몇 가지 설정만 가져왔을 뿐 원작을 충실히 따르진 않았다. 

리들리 스콧은 '블레이드 러너'를 4시간 분량으로 완성했으나 제작자들은 영화의 음울하고 비관적인 정서를 반기지 않았다. 말하는 것보다 말없이 보여주는 것이 많았기에 영화가 지나치게 난해하다고 판단했고, 결국 초기 개봉 버전은 릭의 내레이션과 릭과 레이첼의 온전한 해피엔딩을 추가해 2시간이 안 되는 러닝타임으로 편집이 됐다. 

영화가 개봉한 1982년은 경제 불황이 미국을 옥죄고 있었다. 미국은 소련의 위협에 맞서는 것과 동시에 국가 내부적으론 '건강한 미국, 그 근간이 되는 온건한 가정'의 이미지를 설파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주요한 과제였다. 

자연스럽게 '블레이드 러너'는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꾸준히 '블레이드 러너'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한 팬들이 있었고, 팬들의 성원으로 '블레이드 러너'는 개봉 10년 뒤인 1992년, 감독판을 발표한다. 

감독판에서 릭의 내레이션은 도로 삭제됐고, 영화는 릭과 레이첼이 도망을 꾀하는 엘리베이터 장면에서 끝이 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종이로 만들어진 유니콘 장면의 의미를 되살려줄, 릭이 꿈 속에서 유니콘을 보는 장면도 추가됐다. 

감독판이 재평가를 받으며 영화의 자잘한 편집 실수를 만회한 파이널 컷 버전이 2007년 공개됐다. 수차례 편집을 거듭한 비운의 걸작 '블레이드 러너'는 그 때야 비로소 완성됐다. 

지금 보아도 대단한 수준의 특수효과도 놀랍다. 지금이었다면 컴퓨터 그래픽으로 완성해야 했을 로스앤젤레스의 미래 배경은 당시 실물 미니어처로 작업한 결과물이다. 

배경의 난잡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빛과 연기 등을 투입했다고 한다. 빛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은 '블레이드 러너'를 흥미롭게 보는 방법 중 하나다. 탈초점 장면에서, 리플리컨트의 동공이 움직일 때, 인물들이 뛰어다니는 도시의 골목에서 빛이 변화하는 과정도 몹시 흥미진진하다.

▶ '블레이드 러너' 줄거리

2019년 11월, 미래 도시 로스앤젤레스. 지구는 종말에 가까워지고 인구 과밀화로 인해 수많은 인류는 다른 행성으로 이주했다. 이때 타이렐 코퍼레이션이 만든 복제인간, 리플리컨트가 다른 행성을 식민화 하는 동력으로 쓰였다. 

넥서스6 버전의 리플리컨트는 인간과 매우 흡사한 외견과 지능을 가졌으며, 신체적 능력은 인간을 훨씬 상회한다. 4년에 불과한 짧은 수명은 일종의 제동 장치다. 

리플리컨트는 인간이 하기 힘든 일들, 가령 군병이나 성노예 등으로 활용됐다.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사고를 하는 리플리컨트는 자신들이 놓인 상황에 불만을 품고 식민 행성을 탈출해 타이렐로 들어가 수명을 늘리기 위해 지구로 잠입한다. 

전투용 리플리컨트 로이 배티(룻거 하우어)와 레온(브라이언 제임스), 살인 기계 조라(조안나 캐시디), 성노예 프리스(대릴 한나)다. 

한편, 은퇴한 블레이드 러너인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는 지구로 불법 잠입한 리플리컨트를 '폐기'하기 위해 불려 나온다. 

블레이드 러너는 질문과 응답의 과정, 이때의 동공 반응을 통해 인간과 리플리컨트를 구분할 수 있는 기술을 가졌다. 

릭은 타이렐에 소환돼 리플리컨트를 개발한 타이렐 박사를 만난다. 타이렐은 자신의 조카의 기억을 이식해 제작한 고기능 리플리컨트 레이첼(숀 영)을 소개 받고 연인이 된다. 

리플리컨트들이 하나씩 폐기되고, 수명을 늘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로이는 타이렐 박사와 조로증을 앓는 유전과학자 세바스찬을 살해한다. 릭과 로이는 최후의 접전을 펼친다.
 
▶ '블레이드 러너' 주제

과학 기술 수준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 도시, 음울하고 황폐한 그곳을 보며 외려 인간의 퇴보를 생각해 볼만하다. 인간은 자신과 흡사한 로봇을 만들어냈지만 로봇이 인간의 삶을 온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인간과 리플리컨트는 감정과 기억으로 분류 가능하다. 짧은 수명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서라도 리플리컨트들은 기억과 감정을 잃은 채로 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블레이드 러너로부터 질문을 받은 리플리컨트는 입력된 대로 자연스럽게 응답할 수는 있지만, 세밀한 감정과 기억의 근원에 관해 설명하기는 어려워한다. 그 어려움은 눈을 통해 포착된다. 

<블레이드 러너>에선 유독 눈의 이미지가 강조된다. 블레이드 러너들은 동공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인간과 리플리컨트를 구분 짓는다. 

로이는 눈을 파내는 것으로 타이렐을 살해한다. 로이는 타이렐의 눈, 타이렐의 기억에 분노한다. 최후의 순간 로이는 울 듯한 표정으로 릭에게 말한다. "난 네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것들을 봤어. 오리온 전투에 참가했었고 탄호이저 기지에서 빛으로 물든 바다도 봤어. 그 모든 기억이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죽을 시간이 됐어." 

로이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과 함께 올 기억의 사라짐, 자신이 보았던 것들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없어져 버릴 것을 두려워한다. 

감정과 기억의 유무로 인간은 리플리컨트를 자신들과 다른 존재로 규정했지만 리플리컨트가 시간과 기억, 존재의 소멸을 슬퍼하는 지경에 이르면 결국은 인간과 리플리컨트가 어떻게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블레이드 러너' 감독 리들리 스콧

1937년 11월30일 영국에서 출생한 리들리 스콧은 초창기부터 뛰어난 비주얼리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웨스트 하틀풀 예술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뒤 영국 왕립 예술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커리어 초기엔 <BBC>에서 프로덕션 디자이너로 일했고 얼마 뒤엔 TV시리즈의 연출도 맡았다. 프리랜서로 독립한 뒤 광고제작자로 일했고, 이 때 만든 숱한 광고는 훗날 그의 영화의 비주얼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영화 연출 데뷔작 <결투자들>(1977)은 그 해 칸영화제에서 최고의 데뷔작으로 꼽혔다. 아직도 회자되는 걸작 <에이리언>(1979)이 그의 두 번째 작품이었고, <블레이드 러너>는 그가 세 번째로 만든 영화였다. 

<블랙 레인>(1989), <델마와 루이스>(1991), <화이트 스콜>(1996), <지 아이 제인>(1997), <글래디에이터>(2000), <블랙 호크 다운>(2001), <한니발>(2001), <킹덤 오브 헤븐>(2005), <아메리칸 갱스터>(2007), <프로메테우스>(2012), <마션>(2015), <에이리언: 커버넌트> 등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들었고, <지 아이 제인>이나 <한니발> 등의 영화는 혹평을 들었지만 대개는 다종다양한 수작들이었다. 

현재 그가 기획하고 드니 빌뇌브가 연출한 <블레이드 러너 2049>가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케네스 브래너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제작했고, 석유 재벌 상속자 존 폴 게티 3세의 납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올 더 머니 인 더 월드>를 후반작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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