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여는세상 시인선 36권. 한영숙 시인의 두 번째 시집『목류』가 발간되었다.
한영숙의 『목류』는 첫시집 이후 10년 만에 만나는 시집이다. 첫시집을 내고 경과한 10년은 자기 시의 전열을 가다듬는 시간으로 부족하지 않다. 시인 자신도 자기가 시인이라는 존재감을 잊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시집 배열을 일람하자면 좋은 시 사이에 덜 좋은 시가 쌀밥에 뉘처럼 섞여 있다. 덜 좋은 시 사이에 좋은 시가 ‘다 그런 건 아니거든요’ 하면서 섞여서 존재감을 부각한다. 어느 쪽이 더 힘이 쎈(!)가는 독자가 납득할 일이지만 절묘한 섞음이다. 시들이 서로를 기만하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음이다. 시집을 내지 않고 있는 동안 시의 배열관계를 연구했는지도 모른다. 약간 오버하자면 자기 시를 자신만의 신체리듬으로 배열할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일 것이다.
아버지의 소멸은 시인에게 다른 언어를 요구한다. 다른 언어에 대한 갈망은 아버지만의 문제는 물론 아닐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나이 탓이 아닐까 싶다.‘곱게 날염된 꽃잎들은 그간 내 몸속 어느 곳에 날아들었던가 어디까지 스며들었던가 그 자국 누가 보았는지 붉고도 깊은 상흔의 자리’(「호르몬을 찾아서」)가 한씨의 삶 속으로 새뜻하게 등장한다. 새뜻하다. 시인은 이 말에 헌신하기 위해 시집을 준비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새뜻함 속에 자신의 애매한 삶과 수범성과 시를 받아들였던 내밀한 순정성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새뜻하고 싶은 새뜻함 속에 지나간 삶을 새롭게 배열하고 상연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씨가 선택한 새뜻함은 언어와 문장이면서 회심하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이런 시적인 태도는 선명한 색채어들을 통해 시 속에 자리잡고 있다.(박세현의 발문 「저 덧없는 기쁨」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