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은 사촌 사이' 15년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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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9.04. 오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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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놀이를 하고 있는 친지들.
한 어르신이 촌수를 설명하고 있다.


요즘은 형제 간끼리도 명절이나 대소사를 제외하고는 모이는 일이 거의 없다. 지역적으로 떨어져 살아서이기도 하고 형제간 누군가는 의가 안 맞아서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반남박씨 후손들로 구성된 '사이좋은 사촌 사이' 모임은 사촌끼리 15년간 우애있게 정을 나누며 지내오고 있다. 사촌를 비롯해 조카인 육촌, 손주 팔촌까지 합치며 자그마치 109명이나 된다.

15년간 우애있게 정을 나누며 지내오고 있는 '사이좋은 사촌 사이' 모임


사촌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사촌 모임.


사촌


'사이좋은 사촌 사이'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박찬영(57) 씨는 "어른들이 모이게 되니 다음세대 자녀들도 만남의 기회가 돼 서로 연락하고 교류의 기회가 돼 좋다"면서 "다음 세대도 이런 아름다운 전통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박정옥 여사 금혼식 계기로 모임 결성
사이좋은 사촌 사이 모임은 영주에 사는 반남박씨 가문으로 박정옥, 일서(타계), 욱서, 정남, 헌서, 차남, 철서 등 7남매의 후손들로 구성된 모임이다. 정옥 여사는 5남매, 일서 4남매, 욱서 4남매, 정남 3남매, 헌서 3남매, 차남 3남매, 철서 2남매를 둬 사촌만 24명(1명 미혼), 배우자까지 포함하면 47명. 이에 손주까지 합치면 109명이나 된다.
모임은 2004년 박정옥(85) 여사의 금혼식 때 시작됐다. 박 여사 아들 조성주(60) 씨는 "어머니 금혼식 때 외삼촌과 사촌, 조카들이 와서 축하해줬다. 헌서(71) 외삼촌이 '사촌끼리 얼굴도 모르고 지내며 되겠느냐'며 제안을 해 좋은 모임 한번 만들어보자며 시작하게 됐다"며 "처음에는 얼마 가겠느냐 반신반의했지만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올해는 지난 8월 말에 충북 제천시 청풍에 있는 펜션을 빌려 모임을 가졌다. 성주 씨는 "매번 60~80명 정도 참석하는데 사촌에서 시작해 육촌, 팔촌까지 모임때마다 총인원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영주, 대구, 서울 돌아가면 모임 가져
모임은 본 고향인 영주와 대구, 서울에서 3년마다 돌아가면서 준비한다. 사촌들이 사는 곳이 달라 세 군데로 나눴다. 1년에 한번, 봄이나 가을에 토·일요일(1박 2일)에 모임을 갖는다. 주로 콘도나 펜션을 빌려서 하는데 주최하는 쪽에서 간식 등 먹거리를 준비한다. 비용은 회비와 특별 찬조금으로 충당한다. 모임은 안부를 묻는 등 인사를 나누는데만 한참 걸린다. 손주들의 재롱을 보면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다 얘깃거리가 궁해지면 윷놀이 등으로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모임때마다 하는 놀이는 '이름 맞히기' 게임이다. 촌수는 대충 아는데 인원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워 가계도를 그려놓고 빈칸에 들어갈 이름을 써는 게임이다. 사촌, 이종사촌, 고종사촌, 외사촌을 알겠는데 처(妻)자가 붙어있거나 시(媤)자가 들어가면 복잡해진다. 그리고 오촌, 육촌을 넘어가면 더 어려워진다. 성주 씨는 "인원이 많다보니 촌수가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고 이름 외우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가계도를 그려 설명한다"고 말했다. 성주 씨는 "수십명이 커다란 종이에 이름을 써 가며 촌수를 따지고 공부하다는 모습이 이채롭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서울 모임은 모두가 기다린다. 연극이나 난타 공연을 감상하거나 인사동, 신촌 등 서울거리를 구경하는 등 프로그램이 다채롭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이 학수고대한다. 성주 씨는 "서울 모임때 대구 음식 10미 가운데 납작만두랑 막창을 가지고 갔는데 다른 지역 사촌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고 했다.
사촌모임은 보통 사촌과 육촌, 팔촌들로 모이는데 5년 단위로 윗세대 어르신들을 모시고 큼직한 이벤트를 벌인다. 2013년 10주년 행사때는 경주에 있는 콘도 한 층(방 10여개)과 연회장을 빌려 행사를 치렀다. 성주 씨는 "주위에서 '어떻게 행사를 치렀고 몇명이나 참석했냐'며 물으면 그냥 웃는다"고 했다.
아들아들 모임에 대해 박정옥 여사는 "정을 주고받는 모임이 훈훈해 너무 보기 좋다. 손주, 증손주들도 이를 본받아 친척은 물론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으면 한다"고 했다.
박헌서 씨는 "10주년 경주 행사때 찍은 100여 명 들어가 있는 사진을 거실에 걸어놓았는데 집을 방문한 목사님이 보시고 이 모임이 수련회 모임이냐며 물었다"면서 "우애있게 지내는 모습이 너무 좋다. 좋은 모임이 되도록 마음으로 격려하고 싶다"고 말했다.
헌서 씨 맏사위인 김준식(65·영주시) 씨는 이 모임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사위가 사촌 모임에 참여하는 것 쉽지 않다. 고맙기도 해 만사 제쳐놓고 참석한다"면서 "처갓집 모임이지만 형님동생하면서 친하게 편하게 지낸다. 앞으로도 잘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옥 여사 딸 조경애(59) 씨는 "처음에는 여자들, 특히 며느리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남자들은 술을 마시는 등 앉아서 음식을 먹는데 비해 여자들을 음식을 하는 등 시중을 들었다. 그래서 올케들이 많이 고맙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변했다. 식사를 주문해서 먹거나 음식점에서 해결하고 주최측은 간식 정도만 준비한다"고 했다.

경애 씨는 "긴가민가하면 지금까지 왔는데 만날 때마다 반갑고 든든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모임이 뿌듯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박정옥 여사 며느리 서형숙(60·성주씨 아내)씨는 "이런 모임은 처음본다. 처음에는 유별나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냥 편하게 참석한다. 그래도 주위 사람이 많이 부러워하는 것을 보면 좋은 모임같다"고 했다.

◆모임, 계속 이어갈 터

모임을 시작한지 14년이 됐다. 그동안 세대도 바뀌었고 인원도 늘어났다. 성주 씨는 "요즘은 육촌 조카들이 결혼해 아이를 낳아 모임때마다 2, 3명 늘어난다"고 했다.
성주 씨는 "처음에는 안 된다. 얼마 못갈 것이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왔다. 핵가족 시대인 만큼 다음 세대가 안 할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연결시켜주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라고 했다.

성주 씨는 "외할아버지가 어려운 이웃을 많이 도와주었다. 특히 돈이 없이 학교에 못하는 주위 아이들에게 학자금 대주는 등 훌륭한 어른이었다"며 "아랫대까지는 기대하지 않지만 좋은 의미로 만나는 만큼 특별한 의미 두지 말고 가볍게 좋은 만남을 이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4년 전부터 회장을 맡은 박찬영 씨는 "14분(한분 타계) 가운데 13분도 이제 연로해 건강도 걱정되고 해 내년에는 의미 있는 이벤트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찬영 씨는 이어 "우리 자식들이 전통적 가족 관계의 장점과 의미를 알고 이 모임을 이어주길 기대한다"면서 "모임 때마다 사촌끼리는 죽을 때까지 이 모임을 계속 하자고 말하곤 한다"고 했다.

최재수 기자 bio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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