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월급’ 받으며 사회생활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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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0.29. 오후 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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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함께하는 교육] 학교협동조합, 현장실습 대안될까?

지난해 5월 성수공고 에코바이크과 학생들이 한영욱 교사와 자전거 실습실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현장실습 4주 동안 야간조에서 일했어요. 꼬박 하루 8시간을 같은 자리에 서서 일하는데, 쉬는 시간은 5분씩 3번 주더라고요. 그것도 화장실 가느라 다 쓰고…. 일하다 구토하고 쓰러지고, 결국 폐렴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징계를 내렸어요. 제가 현장실습을 제대로 못 끝내고 왔다는 이유로요.”(서울 특성화고 졸업생 이아무개군)

“친구들끼리 그래요. 우린 ‘일용직 노동자’라고. 현장실습 회사 사장님은 ‘너희 한 달에 90만원 받는 것도 감지덕지라 생각하라’고 해요. ‘너랑 네 친구 중에 누구부터 자를까?’라는 말은 수시로 들었고요. 삶에 도움이 되는 전문기술을 배우고 싶어 특성화고에 왔는데, 주변 어른들은 단순히 ’성적’만으로 저희를 판단하더라고요….”(경기 특성화고 졸업생 최아무개양)

올해부터 특성화고 현장실습 전면폐지

지난 2016년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엘지유플러스 여고생 자살, 제주 음료회사 기계 사고…. 3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특성화고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현장실습 기간에 학생이 일하다 사망하는 사고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18~19살 나이에 특성화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공장 등에서 일하다 죽는 학생들. 지난 19일 특성화고 현장실습에 문제의식을 가진 서울·경기 지역 특성화고 졸업생 3명을 만났다. 그들은 기자에게 “‘현장실습’이라 적고 ‘노동력 착취’라 읽는다”는 자조 섞인 말을 건넸다.

정부는 올해부터 현장실습생의 안전 확보·학습권 보장을 위해, 학생을 노동력 제공 수단으로 활용하는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전면 폐지했다. 교육부는 지난 9월6일 ‘학교협동조합 지원계획’을 내놨다.

교육부가 내놓은 안을 보면 학생 대상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 학교협동조합, 마을기업 등 지역의 다양한 사회적경제 기관을 찾아내는 한편, 학교협동조합의 설립 인가와 관리·감독 권한을 교육부에서 시·도교육감에게 위임하는 것이 주요 뼈대다. 절차를 간소화해 지역 교육청 단위가 학교협동조합이 필요한 교육공동체를 보다 쉽게 지원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현장실습 폐지가 예고되면서 ‘학교협동조합’이 특성화고 현장실습 문제점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학교협동조합은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 지역주민들이 공동 소유해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를 일컫는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학교협동조합은 ‘학교 매점’이나 ‘문구점’의 형태로 운영한다. 하지만 최근 특성화고에서 학교협동조합을 만들어 ‘우리 학교, 우리 일터’로 만드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인권 사각지대로 불린 현장실습
올해부터 전면 폐지하면서
특성화고 학생들 ‘어디서 일해야 해요?’
지역·학교 손잡고 ‘협동조합 실습’ 대안
‘공고생’들이 정비 특강 열고
마을주민 대상 평생교육까지
안전한 학교에서 ‘착한 돈’ 버는 경험


지난 5월30일 선일이비즈니스고등학교 사회적협동조합 '무한창업'이 창립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학교협동조합추진단 누리집


학교 안에 ‘우리 일터’가 있는 거잖아요

서울 성수공업고등학교는 지난 2011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에코바이크과’를 개설했다. 자전거·모터사이클 정비에 대한 이론을 배우고, 실습을 통해 전문 기능 인력을 키워내기 위해서다. 이 학과를 중심으로 성수공고에 학교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지난 2016년 11월14일 창립총회를 열고, 학생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학생들은 1계좌에 1만원을 내면 된다. 교직원과 동네 주민, 학부모는 10계좌, 10만원 이상이면 조합원 자격이 생긴다. 교육현장 주체들이 ‘아이들이 일할 일터’를 직접 만든 것이다. 현재 지역주민 76명을 포함한 100여명의 조합원이 이 학교협동조합에서 진행하는 실습·정비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뜻을 같이하는 지역주민 조합원과 학부모들이 모아둔 출자금으로 아이들 교육실습·수당에 관한 문제도 해결했다. ‘임금체불’ 없이 마음 놓고 실습해볼 수 있는 여건을 교육 주체 스스로 마련한 것이다.

성수공고가 학교협동조합을 만든 이유는 학생들에게 취업과 연계한 현장실습 터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 학교 한영욱 교사는 “협동조합 법인체가 되면 학생들이 현장실습은 물론 급여를 받으며 일할 수 있다”며 “협동조합 현장실습이 확산하면,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일어나는 가슴 아픈 일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역사회(마을)와 학교, 학생과 학부모가 손잡으면 ‘청소년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불리는 특성화고 현장실습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 조합원들은 주민 대상 정비 실습 교육에서 보조 강사로 활동하며 전공 지식을 탄탄히 한다. 일한 만큼 급여를 받는 것은 물론이다. 특히 학교협동조합에서 실력이 쌓인 ‘학생 강사’들을 주강사로 배치해 전문 기술인으로서의 자긍심도 키운다.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초과 근무·폭언 등이 없으니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 만족도도 높다.

한영욱 교사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이라 하면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떠올린다. 하지만 특성화고 교육과정에서 현장실습은, 아이들이 전문 기술인으로 성장하는 도약대 역할을 하는 기간이지 사회의 어두운 단면부터 접하는 기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5월 성수공고 에코바이크과 학생들이 한영욱 교사와 자전거 실습실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학교·지역사회 손잡고 일자리 만들어

기존 특성화고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 콜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하다 자살한 특성화고 3학년 학생의 전공은 반려동물 쪽이었다. 전공·희망 진로와는 무관한 곳에 취업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학교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학교협동조합이 전공과 무관한 현장실습 파견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을까. 지난 10월11일 전남 구림공업고등학교에서도 학교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이 학교에는 ‘한옥건축과’가 개설돼있다. 특수학과인 만큼 현장실습을 제대로 해볼 업체 등을 찾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한옥 건축을 전공으로 삼은 아이들을 ‘엉뚱한 곳’에 실습 보낼 수는 없었다. 이 학교 민방기 교장은 ‘학교와 지역사회의 교집합’을 현장실습의 대안으로 떠올렸다. 그 해답이 바로 학교협동조합이었다.

비진학 고졸 청년층 고용의 질이 매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학교와 지역사회가 유기적으로 연계해 학생들의 진로를 함께 찾아주는 대안을 생각해본 것이다. 민 교장은 “학생과 지역주민, 교직원이 조합원으로 참여한다. 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을 학생 복지와 지역사회를 위해 재투자하는 경제 공동체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구림공고 한옥 건축과 학생들은 조합 현장실습을 통해 한옥건축 시공과 보수, 목공예품 제작·판매, 초등학생 대상 체험학습 프로그램 등을 운영할 예정이다. 특수용접사와 전기기능사, 목공기능사 등 국가기능사 시험에 합격한 학생들이 조합 활동(현장실습)을 통해 수익도 내고, 수익 일부는 후배를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한다. 학교협동조합의 가치가 안전한 현장실습뿐 아니라 윤리적 경제활동과도 이어지는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고, 학교와 마을 안에서 직접 실습하니 자연스레 ‘훈훈한 학교문화’가 자리 잡았다.

지난 24일 개소식을 진행한 ‘무한창업 선일이비즈니스고등학교 사회적협동조합’(이하 무한창업)도 있다. 조합 설립·창립총회, 사업 계획, 쇼핑몰 만들기까지 학생들이 모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올고딩’(올바른 고등학생들의 공유경제) 누리집도 만들었다. 무한창업 학생 조합원들은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전공을 살려 함께 일하는 협동조합을 일군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강조했다.

학교협동조합이 확산하기 위해서는 지역별 지원센터가 생기는 게 급선무다. 장이수 서울학교협동조합협의회 대표는 “학교협동조합 지원센터가 서울에만 있다 보니, 지방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며 “대부분 학교협동조합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지방에서는 설립 관련 기초 자료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특성화고에서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 매점’ 유형 조합에서 ‘현장실습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걸 실감하지요. 다만 권역별 지원센터가 생겨, 필요한 학교와 학생들이 마음껏 ‘협동조합’을 접하고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지윤 <함께하는 교육> 기자 kimjy1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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