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메카` 시애틀 vs 중남미 등 커피벨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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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09.18. 오후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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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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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1호 파이크 플레이스점으로 유명한 시애틀은 영화 '만추'의 무대이기도 하다. 주인공 애니와 훈이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서 짧은 데이트를 하는 장면. /사진=만추 스틸컷
[올 어바웃 커피-10] 스타벅스가 처음으로 문을 연 시애틀은 '무지개 빛깔' 도시다. 이런저런 사랑 타령이 시애틀이라는 도시를 흐른다. 애니(맥 라이언)와 샘(톰 행크스)의 운명적인 사랑이 이뤄진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먹먹한 외로움이 핑크빛 결말로 이어지는 걸 보여준다. 애니와 이름이 비슷한 '죄수번호 2357번' 애나(탕웨이)가 안개 속에서 훈(현빈)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끝나는 '만추'는 늦가을 회색빛 이야기다.

시애틀 캐피톨 힐 거리의 무지개들(좌상, 우상). 누군가 '예쁜 형님과 오빠'들을 위한 소품 가게를 지나고 있다(하단). 저항 혹은 하위 문화가 발전하면서 1980년대 그런지 록(grunge rock)을 탄생시킨 시애틀에서는 동성 간 결혼이 법적으로 보장된다. /사진=김인오 기자
사랑이란 게 꼭 '남과 여'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사연인 건 아니지 않은가. 그걸 이상히 여기는 사람들을 향해 시애틀의 캐피톨 힐에선 길마다 가게마다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내걸었다.

올해 4월 열린 `2017 세계커피박람회`에 참가한 한 바리스타가 에스프레소 머신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출처=커피엑스포
그리고,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시애틀은 '카페 순례지' 혹은 '현대 커피 문화의 메카'다. 시애틀에선 매년 4월 스페셜티커피협회(SCA)가 주관하는 '세계 스페셜티커피 박람회'가 열린다. 시애틀대학이 있는 무지개 깃발의 언덕, 캐피톨 힐은 애니와 훈이 일장춘몽(一場春夢)같은 데이트를 한 파이크 플레이스와 더불어 시애틀 대표 커피 거리다. 두 곳 모두 스타벅스의 역사가 담긴 곳이기도 하다.

'하나같이 탄 맛이 난다' '우리나라에선 유독 가격을 높여 판다'부터 '밥값만큼 비싼 걸 사 마시다니 허영심 투성이'라는 말에 이르기까지 이런저런 비난도 받은 스타벅스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스타벅스는 21세기 카페의 아이콘이다.

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에 있는 현재의 스타벅스 1호점. 이 곳에선 처음에 쓰던 갈색 바탕의 사이렌 마녀 로고를 쓴다. /사진=김인오 기자
항구에 자리한 파이크 플레이스는 이른바 스타벅스 1호점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이곳에서만 스타벅스의 초창기 사이렌(Siren·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녀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서 뱃사람들을 유혹해 죽음으로 이끈다) 로고가 그려진 커피 용품을 살 수 있다고 알려져 머그컵이나 텀블러를 사들고 나오는 여행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여기는 진짜 1호점이 아니다. 첫 가게는 이곳에서 몇 걸음 안 가는 장소(2000 Western Ave)에서 1971년 문을 열었다가 1977년에 지금의 자리(1912 Pike Place)로 옮겨왔다고 한다.

왜 스타벅스가 인기를 끌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경영학 책들이 수도 없이 분석해왔다. 어쨌거나 첫 가게를 연 건 '경영의 귀재' 하워드 슐츠는 아니다. 영어 선생님이던 제리 발드윈과 역사 선생님인 지브 시글, 작가인 고든 보커는 대학 친구들이었는데 셋 다 커피 마니아이다보니 알프레드 피트(샌프란시스코의 유명 로스팅 카페 피츠 커피 설립자)에게 커피를 배우다가 시애틀로 와서 스타벅스를 차렸다고 한다.

아마존 본사를 비롯해 가까운 곳에 마이크로소프트 레드먼드 본사 등 IT산업이 줄줄이 둥지를 튼 시애틀이 고향이어서 그런지 스타벅스는 무료 와이파이 서비스를 해 온라인 시대의 디지털노마드족(族)의 환호를 받는다.

스페셜티 커피 콩을 둘러싼 커피 시장의 '제3 물결'속에서 문을 연 시애틀 캐피톨 힐 인근 스타벅스 리저브 1호점. /사진=김인오 기자
그래도 카페인 만큼 와이파이뿐 아니라 커피의 맛과 향도 중요하다. 파이크 플레이스에서 육지(?) 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나오는 캐피톨 힐엔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테이스팅룸 1호점이 있다. 스페셜티 커피를 중심으로 커피 시장에 '고급 입맛'을 강조한 제3의 물결이 번지자 스타벅스도 발 빠르게 움직여 문을 연 가게다. 전 세계 지점에서 사용하는 스페셜티 커피 원두를 볶아낸다고 한다.

시애틀 스타벅스 리저브 1호점 한 가운데 자리를 차지한 거대한 커피 장비들은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처럼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사진=김인오 기자
거대 프랜차이즈가 골목 상권을 잠식한다는 말은 캐피톨 힐 거리에는 그다지 맞지는 않는 것 같다. 스타벅스 말고도 소규모 독립 카페들이 앞다퉈 얼굴을 내민다. 공정무역이나 소규모 직거래 형식으로 커피 콩을 사다 로스팅(roasting·커피 콩을 볶는 작업)까지 하는 가게들인데 가장 유명한 건 '라테 아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데이비드 쇼머가 1988년 문을 연 에스프레소 비바체다. 이 밖에도 캐피톨 커피웍스와 칼라디 브라더스, 카페 비트롤라 등을 비롯해 포틀랜드에서 온 스텀프타운 로스터스 등이 곳곳에 둥지를 틀었다.

캐피톨 힐 거리의 크고 작은 독립 로스팅 카페들. 1999년 WTO반대 시위가 열린 시애틀 답게 이 곳의 작은 독립 카페들은 대부분 직거래 형식의 공정무역을 통해 사들인 커피 콩을 쓴다. /사진=김인오 기자
커피의 3물결이라는 말이 확산되는 요즘 트렌드를 이끄는 건 17~20세기에 걸쳐 카페 문화를 만들어온 유럽이 아니라 미국이다. 시애틀 말고도 포틀랜드와 샌프란시스코 등이 카페 여행 명소라고 한다.

취향 차이이기는 하지만 유명한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보다 커피 콩이 자라는 농장에 가보고 싶다면 '커피 벨트(coffee belt)' 나라로 떠나면 된다. 커피야 직접 볶아서 내려 마실 수 있지만 커피 콩은 기후와 고도 때문에 아무 곳에서나 자라지는 않는다(물론 우리나라에도 강원도 등에 작은 커피 농장이 있고 개인이 취미 삼아 커피 나무를 키우기도 한다).

중남미 파나마의 라 루이즈 카페에서 운영하는 보케테 커피 농장 풍경. /사진=김인오 기자
커피 투어리즘(coffee tourism)이 발달한 곳은 중남미 브라질·과테말라·파나마·코스타리카·콜롬비아 등이다. 크고 작은 지역 여행사들이 커피 투어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굳이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혼자 커피 산지에 가서 직접 알아본 후 농장을 고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우거진 커피 나무들 말고도 커피 콩을 따서 가공하는 모든 작업을 볼 수 있다. 농장을 '핀카'와 '아시엔다'로 부르는데 후자가 전자보다 규모가 크다. 아시아에선 베트남·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아프리카에선 에티오피아와 케냐, 르완다같이 커피 생산으로 유명한 나라에서 커피 농장 투어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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