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거부' 판결 반발큰데, '환영'하는 일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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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1.02. 오후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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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군 필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 남성의 이익을 중시하고, 여성 혐오 경향을 보이는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이 판결에 환호하고 있다. ‘예상’ 밖의 일이다.

지난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공판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다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승헌(34)씨에 대해 "병역의무 강제는 양심의 자유 본질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사건을 무죄 취지로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2일 극우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는 이번 판결에 대해 "남성 인권을 생각하며 처음으로 쏘아 올린 공"이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남성들만 ‘독박 국방의무’를 씌워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 옳은 이유’라는 제하의 글에서 글쓴이는 "국가 존립의 의미로 모든 국민이 군대를 가야되는 건 맞지만, 남성에게만 군대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면서 "남성들만 2년간 군대에서 공(公)노예로 희생되고 있다. 이미 남성들에게만 독박을 씌우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시물에는 동의하는 내용의 댓글이 130여개 붙었다.

"애초에 남성만 군복무 시키는 것 자체가 위헌" "모든 국민은 평등한데 그 의무를 남자만 지는 게 말이 되느냐" "이제는 군대에 가는 놈이 바보"라는 의견이 나왔다.

‘독박 병역 반대 집회’를 열자는 제안도 나왔다. 일베 회원들은 "여자들도 군대 징집을 할 계기가 될 것" "1만명 이상 모이면 효과가 있을 것" "정부도 남자들의 이런 시위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라며 동조했다.

어떤 이유가 됐건, ‘병역의 의무’ 면제 조항이 생겼다는 점에서 남성주의자들이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독박 국방’에 대한 불만은 여성혐오 커뮤니티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날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양성(兩性) 모두 국방의무를 져야 한다"는 취지의 글은 50여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여성도 의무 이행에 동참하도록 법률개정을 해달라’는 게시글에는 8만 3200여명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징병이 남성에게만 부과되었기 때문에 30년 넘게 저출산은 심각하고 병역자원은 부족한 상황"이라며 "남녀간 차별을 없애려면 여성도 남성처럼 국방 의무를 이행하도록 법률을 개정해달라"고 적었다.

그간 남성들 사이에서 ‘병역거부자’는 이탈자로 간주되어, 부정적인 시선을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같은 흐름이 역전, 도리어 남성들 사이에서 환영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병역 의무를 진 남성들 사이에서도 ‘독박 국방은 불공평하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면서 "성대결 양상으로 이슈가 옮아가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환영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그동안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소수의 집단이었으나 이번 결정을 계기로 대중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집단’이 됐다고 받아들인다"며 "일부 남성들 중에선 그 집단에 소속되면 자신에게도 하나의 기회가 올 수 있다는 기대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지희 기자 walkaholic@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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