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거부 ‘진정한 양심’을 어떻게 가려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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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 “신앙기간·학교생활 살펴야”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부당 판결
종교적 신념 구체적 잣대 필요성
비종교적 거부자 증명 쉽지않아

대법원이 1일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게 부당하다는 첫 판결을 내렸지만 후폭풍이 만만찮다.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와 단순 병역기피자를 어떻게 구별할지 구체적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라고 해도 개별 재판부 판단에 따라 병역 거부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나올 수도 있다.

2일 대법원에 따르면 상고심에 계류 중인 병역거부 사건은 227건으로 집계됐다. 이 사건들 역시 전원합의체 결론에 따라 다시 심리될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병역법 위반을 판단할 구체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주장에 대해서는 교리가 어떤지, 실제로 신도들이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지, 종교가 피고인을 정식 신도로 인정하는지, 신앙 기간과 종교적 활동 등이 판단 요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정한 양심을 판단하기 위해 가정환경, 성장과정, 학교생활, 사회경험 등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판결에 따르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 모두가 병역법 위반 무죄 판결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개별 재판에 따라 신도가 종교를 선택한 이유와 시기가 석연찮거나 신념의 확고함을 증명하기 어려운 경우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무죄를 판단하는 일반적인 기준을 설정할 순 없고 여호와의 증인은 다 (무죄가) 된다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병역거부자를 수사해야 하는 검찰은 난감한 표정이다. 대법원은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가 없다는 사실은 범죄구성요건이므로 검사가 증명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검찰은 앞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고의적인 병역 기피자를 가려내 후자만 기소해야 한다. 한 검사장급 검찰 간부는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수사하라는 거냐는 얘기가 나온다”라며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부터 어릴 적 친구와 선생님까지 다 조사해야 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여호와의 증인은 아니지만 양심에 따라 병역거부를 택한 경우 문제가 더욱 복잡하다. 신념을 객관적ㆍ물리적 증거로 증명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쟁과 폭력을 거부하는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경우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오래 사귄 지인 등을 증인으로 채택해 평소 생활을 증언하는 방식으로 재판을 진행해왔다. 한 병역 거부자는 “지금까지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는 판례가 확고했기 때문에 재판이 치열하게 진행되거나 당사자도 열심히 상소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이들의 양심이 진정한지를 두고 검사와 병역거부자가 각종 정황 증거를 통해 치열하게 다툴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 중인 71명이나 이미 유죄를 선고받아 복역한 사람들이 이번 판결로 재심을 청구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여호와의 증인 측은 병역거부로 지금까지 1만9000여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추산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판례 변경은 재심 사유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도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 제88조 1항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다만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병역을 거부한 백종건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에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는데 판례 변경을 새로운 증거로 볼 수 있는지 검토 중”이라며 “국회가 대체복무안을 만들면서 특별 재심 조항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또는 대통령 특별사면을 통해 기존 병역거부자의 사면ㆍ복권이 가능하지만 청와대와 법무부는 현재까지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유은수 기자/ye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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