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 스토리] 3억명 홀린 ‘중국의 톨킨’…무협소설 대가 진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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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0.31. 오후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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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문’, ‘녹정기’, ‘소오강호’, ‘동방불패’, ‘사조영웅전’

홍콩 무협소설의 대가 진융(김용·金庸·94)이 30일 94세로 별세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진융은 지병을 앓다 이날 오후 양허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그의 죽음에 중화권 언론은 물론, 전 세계에서 애도의 반응이 쏟아졌다.

홍콩 무협소설의 대가 진융(김용·金庸·94)이 30일 94세로 숨졌다. /CGTN

‘대협’ ‘중국의 톨킨’ ‘신필(神筆)’ 등으로 불린 진융은 생전 15편의 장편 소설을 발표하며 무협소설 돌풍을 일으켰다. 그의 작품은 중국에서만 1억권 이상, 대만에서는 1000만권 이상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적으로 진융 소설의 독자는 3억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진융의 작품은 통속적 문학과 순수문학의 장벽을 깨고 무협소설의 가치를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작품은 중국 초등학생 필독서로 꼽혔고,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진융의 문학을 연구하는 학문까지 생겼고, 그의 작품은 홍콩, 대만 등 중화권에서 수많은 영화, 드라마로 재탄생했다.

◇ 中 명문가 출신…신문 연재로 소설가에 ‘첫 발’

진융은 1924년 중국 남동부 저장성에서 태어났다. 진융은 필명으로, 본명은 루이스 차량융(査良鏞)이다. 그는 중국 명문가인 ‘해녕사가’ 출신으로, 청나라 때 유명 시인 사신행(査愼行)이 조상이다. 그는 집안의 영향으로 유년 시절부터 ‘사서삼경’ ‘제자백가’ 등 불교와 도교의 경전을 접했다. 그러나 그의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진융의 어머니는 중·일전쟁 중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진융은 중국 소주대학교에서 국제법을 전공했으나 대학 재학 중 3차 국공내전이 일어나 학업을 중도 포기해야 했다. 국공내전은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내전이다. 진융의 아버지는 중국 공산화 이후인 1951년 반동지주로 몰려 총살당했다. 진융의 팬으로 알려진 덩샤오핑은 훗날 그에게 아버지 처형 문제를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덩샤오핑이 홍콩에 비밀요원을 보내 그의 소설을 구하도록 지시한 일화도 유명하다. 진융은 1948년 첫 결혼을 한 뒤 이혼했고, 1953년에 두번째 결혼을 했으나 또다시 이혼했다. 이후 1976년 세번째 결혼한 아내와 나머지 삶을 함께 했다.

1981년 7월 18일 덩샤오핑(왼쪽)전 중국 주석과 만난 진융. /명보

진융은 언론인으로도 알려져있다. 그는 상하이 ‘대공보’에서 국제부 편집기자로 일하다 홍콩으로 파견됐다. 이후 중국 본토에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진융은 홍콩에 남기로 결정했다. 그는 홍콩 ‘신만보’에서 기자로 일하던 중 ‘용호투경화’ 등으로 유명세를 탄 무협소설 작가 량위성에 이어 연재를 맡게 됐다. 1955년 진융의 첫 소설 ‘서검은구록’이 그렇게 빛을 보게 됐다.

진융은 1959년 홍콩 일간 ‘명보(明報)’를 창간했다. 이후 그는 신문 구독률을 높이기 위해 명보에만 자신의 소설을 독점 연재했다. 1955년부터 1972년 그가 은퇴를 선언할 때까지 쓴 무협소설은 15편에 이른다.

◇ 3억명 홀린 무협소설 ‘대협’이자 날카로운 언론인

진융의 소설은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그의 소설은 수차례에 걸쳐 영화, 드라마 등으로 재탄생했으며 이후에는 게임 소재로도 쓰였다. 중국 국영 영자신문 차이나데일리는 "진융의 소설이 영화, TV 드라마, 라디오 등 여러 분야에 활용되면서 중화권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그의 작품은 중화권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무협소설 열풍을 일으켰다. 진융의 작품들은 영어, 프랑스어, 한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태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출판됐고, 공식적으로만 3억부 넘게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진융이 쓴 무협소설 ‘천룡팔부’의 친필 초안 원고. /홍콩문화유산박물관

그의 작품들은 재미 뿐 아니라 역사적 배경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문학적 가치가 있는 글로 인정받았다. 진융이 1957년 쓴 ‘사조영웅전’은 중국 초등학생의 필독서에 꼽혔다. 2004년에는 중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그의 작품 ‘천룡팔부’가 실렸다. 중국 본토에는 그의 문학을 연구하는 ‘김학(金學)’이라는 학문이 생겨났다. 1997년 홍콩 작가로는 처음으로 중국작가협회에 가입하기도 했다.

진융의 필력은 서양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1981년 대영제국훈장(OBE), 1992년 레종드뇌르 훈장을 받았다. 전 세계 대학에서 그에게 명예 박사학위와 명예교수직을 수여했다. 2005년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울러 영국 가디언은 지난해 11월 진융을 ‘중국의 톨킨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J.R.R 톨킨은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을 쓴 영국 소설가다.

1984년 방영된 홍콩 드라마 시리즈 ‘녹정기’에 출연한 배우 유덕화(왼쪽)와 양조위. 녹정기는 진융이 쓴 무협소설이다. /더 스트레이츠타임스

진융은 날카로운 사설과 정치 논설을 쓴 언론인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1993년 명보에서 은퇴할 때까지 대표이자 주필로 활동했다. 진융은 평소 ‘오른손으로는 정치평론을 쓰고, 왼손으로는 소설을 쓴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SCMP에 따르면, 그는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쩌둥의 추종자로 나라를 쥐고 흔들었던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 마오쩌둥의 동료 왕훙원, 장춘차오, 야오원위안 등 ‘4인방’을 강력 비판하는 글을 써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당시 좌파 진영의 암살자 명단에도 올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진융은 홍콩의 현실 정치에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홍콩의 기본법 초안을 작성하는 작업에 참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1995년 홍콩의 주권을 영국에서 중국으로 이전하는 준비위원회에서도 활동했고, 진융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홍콩 최고 명예훈장인 ‘그랜드 바우히니아(大紫荊)’을 받았다. 2008년에는 중화권 언론기관이 공동 수상하는 ‘전세계에 영향력을 끼친 중국인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81세 英 유학길 올라…94세 별세, 애도 물결

1972년 은퇴를 선언한 진융은 역사 연구에 매진했다. 필력이 신의 경지에 달했다 하여 ‘신필(神筆)’로 불린 그였지만, 노년까지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진융은 생전 "학문은 스스로 덕을 보는 것이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배움이 부족한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결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진융은 결국 2005년 81세 나이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역사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한 유학길에 올랐다. 평생 염원이었던 중국사(史) 저술을 위해서였다. 진융은 89세였던 2013년 베이징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문학인이자 지식인으로서 열정을 다했던 진융은 30일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임종 소식이 전해진 뒤 각계에서 애도의 반응이 쏟아졌다.

2008년 중화권 언론기관이 공동 수상하는 ‘전세계에 영향력을 끼친 중국인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고 있는 진융. /VCG

캐리 람 홍콩행정장관은 성명을 내고 "뛰어난 작가의 죽음에 특별한 애도를 표한다"며 "홍콩 정부를 대신해 가족들에게 진심을 다한 위로를 보낸다"고 했다. 홍콩민정사무국도 성명을 통해 "진융의 죽음에 깊은 조의를 표한다"고 전했다.

중국 최대 온라인 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도 직접 애도를 표했다. 마 회장은 "진융의 죽음은 중국은 물론 전 세계의 큰 손실"이라며 "특히 그의 작품을 기업의 핵심 가치로 여겨온 알리바바에는 더 슬픈 소식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마 회장은 진융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자신의 별칭을 진융 소설 ‘소오강호’ 의 은둔 고수 ‘풍청양’으로 삼았다. 알리바바 본사 회의실은 진융 소설에 나오는 ‘광명정’, 마 회장의 집무실엔 소설 속 섬 ‘도화도(桃花島)’라는 이름을 붙였다.

중국 신화망과 인민일보 등 주요 매체에는 진융의 죽음을 애도하는 소식이 이어졌다. 중국 관영 CCTV는 ‘큰 협객은 나라와 백성을 위한다’는 진융 소설 ‘사조영웅전’ 속 대사를 전하며 그의 애국주의를 높이 평가했다.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중국 소셜미디어(SNS)인 웨이보에는 진융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의 ‘#진융이사망하다(#JinYongpassedaway)’라는 해시태그(검색을 쉽게 하도록 단어에 '#' 표시를 붙이는 것)를 포함한 글이 6억5000건 이상 올라왔다.

[이선목 기자 letswi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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