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홍대 쪽에는 라이브 클럽 ‘드럭’이라는 곳이 있었다. 처음에는 록 뮤직 비디오를 보던 펍이었지만, 그곳은 1995년 4월에 열린 너바나 보컬 커트 코베인의 추모 1주기 공연이 열린 이래 한국 인디 록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스러운 공간이 됐다. 현재까지도 한국 록 뮤직 신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라는 걸출한 밴드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그 이후로 한국에서 록 뮤직은 꽤 잘나가는 장르 중 하나였다. 아니 사실 그 이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록은 하드 록, 헤비메탈, 슬래시 메탈, 프로그레시브 록, 펑크 록 등으로 범주를 확산시키며 모든 이에게 꿈을 심어 주는 최고의 장르였다. 물론 음악으로 큰돈을 버는 건 발라드와 댄스 뮤직 등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록 키즈가 있었고, 굳이 연주를 하지 않더라도 해외 및 국내의 밴드를 보기 위해 록 뮤직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은 인산인해였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록 뮤직은 굉장히 인기 없는 장르가 되어 버렸다. 엘비스 프레슬리로 대변되는 로큰롤은 역사를 거듭하며 발전한 최고의 장르였기에 이 같은 사실은 굉장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뮤직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는 록 밴드가 서는 게 당연하다는 관습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 관례는 침탈되었고, 그 정형성은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 분명 한국에서도 인디 록 신이 활발하게, 그러니까 상업적으로 잘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패션 브랜드들은 이 신과 연계하길 희망했고, 또 이들로 구성된 수많은 뮤직 페스티벌이 꽤나 잘 돌아가던 전성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이들은 다시금 아주 오래 전, 지하실 사운드로의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록이 죽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다시 배고프게 하고 있을 뿐이다.
척박한 시대로 회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인디 록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며 간헐적으로 스타를 배출해 낸다. 현시점에 있어 록 뮤직의 독보적인 스타라고 하면 단연코 혁오 밴드다. 오혁이라는 패셔너블하고 걸출한 청년 스타를 중심으로 한 이 밴드는 록 뮤직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서 음반과 티켓을 파는 몇 안 되는 파워를 가진 스타 밴드다. 여기에 덧붙여 새소년, 잠비나이 등이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조금씩 알려진 아티스트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록 뮤직이 별로 인기 없는 장르가 된 건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재즈라는 장르가 그렇듯, 록은 자신들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금 또 다른 영광의 날을 재현하게 될 것이다. 그냥 현재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1990년대 이래 한국 힙합이 버텨 온 방식은 양념처럼 쓰이는 ‘피처링’이었다. 유명 가수가 곡의 다양화를 위해 래퍼를 기용하는 일은 아주 일반적이었다. 힙합은 주로 댄스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첨가되는 형태로 형상화됐다. 그러나 일순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청춘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아이돌로 대변되는 연예인이라 답하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래퍼를 꿈꾸는 이들이 많아졌다.
많은 청춘이 래퍼가 되고 싶어 하는 건 어쩌면 경제 논리에 크게 근거할지도 모른다. 한국 힙합의 아이콘으로 지목되는 도끼는 이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몫을 했다. 도끼, 더 콰이엇, 빈지노로 이루어진 힙합 레이블 일리네어 레코즈의 트랙들에는 롤렉스, 롤스로이스, 금붙이 등 재화와 재물에 관한 단어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방송에서도 언급하는, 연간 몇십 억 매출을 올리는 힙합 뮤지션 이야기는 이러한 분위기를 배가한다. 박재범, 사이먼 도미닉, 그레이, 로꼬로 이루어진 레이블 AOMG의 화려한 일상도 마찬가지다. 팔로알토, 레디 등의 하이라이트레코즈도 그렇다. 이들의 노랫말 속에는 음악으로 꿈을 이루어 낸 성공담이 무용담처럼 즐비하고, 현실 또한 휘황찬란하다.
‘쇼미더머니’ 시리즈에 출연해 주목받은 아티스트들을 실제로 만나보면 자동차를 바꾸었다는 소식이 단골 뉴스다. 래퍼의 손목에는 고가의 롤렉스 시계가 힙합 아이콘처럼 채워져 있다. 대체 도끼를 비롯한 힙합 뮤지션들은 무엇으로 그리 돈을 벌었을까? 여기에서 아주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힙합 뮤직의 경제학이 펼쳐진다.
랩을 한다고 해서 모두 돈을 잘 버는 건 결코 아니다. 무슨 일이든 일정 궤도에 올라야만 재정적 부담을 떨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힙합은 가장 저예산으로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대중음악계의 본보기 장르다. 거대 기획사 관계자는 아이돌 그룹 하나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거의 10억 원에 가까운 경비를 쓴다고 한다. 자본금이랄 것 없이 시작하는 인디 밴드도 악기 구입, 연습, 공연에 들어가는 비용과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병행하며 돈을 마련해야 한다.
뮤지션은 음악을 끊임없이 소개하고 인기를 얻어야만 대중 인지도를 넓혀 갈 수 있다. 밴드가 트랙 하나를 녹음하기 위해선 합주실도 빌려야 하고, 녹음실도 대관해야 한다. 모든 게 돈이라는 말이다. 생계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는 멤버들이 한데 모이는 것 자체도 일이다. 하지만 힙합은 다르다.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약간의 악기를 자기 방에 준비해 놓으면 끝이다. 노력과 열정만 있으면 끊임없이 데모 테이프를 생산해 낼 수 있다. 과거 ‘나 혼자 산다’에서 보여준 도끼의 작업실, 최근 다시 주목받는 쌈디의 작업실이 대부분 그런 형식이다. 무엇보다도 다른 장르의 음악에 비해 힙합은 하나의 곡을 완성하는 데 돈이 적게 든다. 아이돌처럼 춤, 노래 등을 가르치는 데 자본을 투자할 필요도 없고, 밴드처럼 연주를 위한 큰 세팅도 필요 없다. 자신의 재능과 열정으로 치열하게 생존할 수만 있다면 언더그라운드에서 방송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그 길은 탄탄하게 펼쳐져 있다.
언젠가 만난 래퍼 해쉬스완과 마이크로닷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현재 이들은 완벽하게 인기연예인이 되었다. 얼마 전 해쉬스완은 포르쉐를 구입했다). ‘도끼는 왜 지금까지 그렇게 열심히 곡을 만들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는 예전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명성을 떨치던 아티스트였어요. 엄청나게 많은 곡을 만들었고, ‘연결고리’라는 한 곡이 빵 터졌죠. 그런 거예요. 그럼 끝나는 거니까요.” 곡을 만들고 발표하는 데 큰돈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을 십분 활용, 해쉬스완과 마이크로닷 역시 틈날 때마다 ‘제대로 한 방 터뜨릴’ 자신만의 트랙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 힙합 언더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경쟁이 그 어떤 장르보다 치열하다는 점이다.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분명 아니기에, 래퍼들은 뜨겁고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언젠가는 자신도 도끼처럼, 빈지노처럼, 박재범처럼 진짜 셀러브리티가 되겠다는 욕망을 안고 말이다.
10월12일, 한국 인디 록 밴드 1세대라 부를 수 있는 크라잉넛이 자신들의 통산 8번째 앨범 ‘리모델링’을 발매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규 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 ‘텀블벅’ 후원을 받았다. 사실 이걸 두고 어떤 이들은 ‘크라잉넛이 텀블벅 후원을 받을 정도로 힘든가?’라는 의문을 던졌다. 물론 그런 이유는 아닐 것이다. 크라잉넛은 ‘말 달리자’ ‘서커스 매직 유랑단’ ‘밤이 깊었네’ 등의 유수한 히트 싱글을 가진 밴드다. 그렇기에 여전히 크라잉넛은 여러 행사 무대에서 잘 팔린다. 데뷔 후 거의 20년 동안 크라잉넛은 자신들의 밥줄은 챙겨 온,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던 밴드다. 멤버들 대부분이 가정을 꾸렸고, 가족을 충분히 건사할 만큼 돈을 번다. 그럼에도 이들이 후원 방식으로 앨범을 제작했다는 점은 꽤 주목할 만하다.
[글 이주영(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Pxhere]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1호 (18.10.3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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