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힙합을 소비하는 방법-힙합의 경제학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힙합이 대세임을 부정할 이는 없다. 한국의 특수한 문화적 토양에서라면 언젠가 지고 말 꽃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분명 힙합 시대다. 많은 아이들이 성공한 래퍼가 되기를 꿈꾸고, 지금이 그 기회인 것만은 틀림없다. 힙합은 아주 경제적인 음악 장르기 때문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라 치부하겠지만, 올해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 지 28년째 되는 가수 출신 DJ 배철수가 진행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처음부터 들었다. 그러니까 1990년 3월19일부터 지금까지 줄곧 들어온 셈이다. 그때는 진짜 그랬다. 라디오가 청소년들의 음악적 성숙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즐겨 듣던 코너는 주말마다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를 알려주고 들려주는 ‘아메리칸 톱 40’였다. 카세트 테이프에 매번 녹음해서 차트를 암기할 만큼 돌려 들었다. 친구들과의 음악 대화에 있어 이 차트는 대단히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만 하더라도 팝과 록 뮤직 장르가 차트를 대부분 차지했다. 힙합과 R&B 장르도 골고루 분산되어 있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록 뮤직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를 주름잡는 가장 위대한 대중음악 장르였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 위해 수많은 밴드가 앨범을 냈고, 공연을 했다.

1990년대 중반, 홍대 쪽에는 라이브 클럽 ‘드럭’이라는 곳이 있었다. 처음에는 록 뮤직 비디오를 보던 펍이었지만, 그곳은 1995년 4월에 열린 너바나 보컬 커트 코베인의 추모 1주기 공연이 열린 이래 한국 인디 록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스러운 공간이 됐다. 현재까지도 한국 록 뮤직 신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라는 걸출한 밴드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그 이후로 한국에서 록 뮤직은 꽤 잘나가는 장르 중 하나였다. 아니 사실 그 이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록은 하드 록, 헤비메탈, 슬래시 메탈, 프로그레시브 록, 펑크 록 등으로 범주를 확산시키며 모든 이에게 꿈을 심어 주는 최고의 장르였다. 물론 음악으로 큰돈을 버는 건 발라드와 댄스 뮤직 등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록 키즈가 있었고, 굳이 연주를 하지 않더라도 해외 및 국내의 밴드를 보기 위해 록 뮤직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은 인산인해였다.

▶지는 록과 뜨는 힙합

그러나 불과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록 뮤직은 굉장히 인기 없는 장르가 되어 버렸다. 엘비스 프레슬리로 대변되는 로큰롤은 역사를 거듭하며 발전한 최고의 장르였기에 이 같은 사실은 굉장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뮤직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는 록 밴드가 서는 게 당연하다는 관습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 관례는 침탈되었고, 그 정형성은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 분명 한국에서도 인디 록 신이 활발하게, 그러니까 상업적으로 잘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패션 브랜드들은 이 신과 연계하길 희망했고, 또 이들로 구성된 수많은 뮤직 페스티벌이 꽤나 잘 돌아가던 전성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이들은 다시금 아주 오래 전, 지하실 사운드로의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록이 죽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다시 배고프게 하고 있을 뿐이다.

척박한 시대로 회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인디 록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며 간헐적으로 스타를 배출해 낸다. 현시점에 있어 록 뮤직의 독보적인 스타라고 하면 단연코 혁오 밴드다. 오혁이라는 패셔너블하고 걸출한 청년 스타를 중심으로 한 이 밴드는 록 뮤직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서 음반과 티켓을 파는 몇 안 되는 파워를 가진 스타 밴드다. 여기에 덧붙여 새소년, 잠비나이 등이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조금씩 알려진 아티스트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록 뮤직이 별로 인기 없는 장르가 된 건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재즈라는 장르가 그렇듯, 록은 자신들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금 또 다른 영광의 날을 재현하게 될 것이다. 그냥 현재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한국 대중음악 신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장르를 꼽으라면? BTS로 대변되어 세계를 주름잡는 몇 안 되는 아이돌 그룹을 제외하고는 단연 ‘힙합’이다. 힙합은 엄연한 블랙 뮤직의 한 축으로서 오랫동안 자리해 왔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힙합은 완전한 주류로서, 스타덤에 오르면 록 스타 못지않게 돈방석에 앉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하지만 이 척박한 한국 땅에서 힙합은 1990년대 황금기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언더그라운드 문화로 존재해 왔다. 일렉트로닉 뮤직이 클럽 컬처의 대세로 대두되면서 클럽가에서 꾸준히 강세를 보이던 힙합은 설 곳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마니아가 엄연히 존재했지만 20대 청춘의 전유물로 여겨졌고, 힙합 클럽은 외국인들이 어린 한국 소녀들을 유혹하기 위해 가는 그런 공간이 되어 버리기도 했다. 심지어 힙합이 이곳에서 전성기를 누릴 때조차 그것은 음악적 진정성이 배제된 (패션)스타일로만 소비되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1990년대 이래 한국 힙합이 버텨 온 방식은 양념처럼 쓰이는 ‘피처링’이었다. 유명 가수가 곡의 다양화를 위해 래퍼를 기용하는 일은 아주 일반적이었다. 힙합은 주로 댄스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첨가되는 형태로 형상화됐다. 그러나 일순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청춘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아이돌로 대변되는 연예인이라 답하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래퍼를 꿈꾸는 이들이 많아졌다.

▶저예산으로 고수익을 내는 힙합의 경제학

많은 청춘이 래퍼가 되고 싶어 하는 건 어쩌면 경제 논리에 크게 근거할지도 모른다. 한국 힙합의 아이콘으로 지목되는 도끼는 이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몫을 했다. 도끼, 더 콰이엇, 빈지노로 이루어진 힙합 레이블 일리네어 레코즈의 트랙들에는 롤렉스, 롤스로이스, 금붙이 등 재화와 재물에 관한 단어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방송에서도 언급하는, 연간 몇십 억 매출을 올리는 힙합 뮤지션 이야기는 이러한 분위기를 배가한다. 박재범, 사이먼 도미닉, 그레이, 로꼬로 이루어진 레이블 AOMG의 화려한 일상도 마찬가지다. 팔로알토, 레디 등의 하이라이트레코즈도 그렇다. 이들의 노랫말 속에는 음악으로 꿈을 이루어 낸 성공담이 무용담처럼 즐비하고, 현실 또한 휘황찬란하다.

‘쇼미더머니’ 시리즈에 출연해 주목받은 아티스트들을 실제로 만나보면 자동차를 바꾸었다는 소식이 단골 뉴스다. 래퍼의 손목에는 고가의 롤렉스 시계가 힙합 아이콘처럼 채워져 있다. 대체 도끼를 비롯한 힙합 뮤지션들은 무엇으로 그리 돈을 벌었을까? 여기에서 아주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힙합 뮤직의 경제학이 펼쳐진다.

랩을 한다고 해서 모두 돈을 잘 버는 건 결코 아니다. 무슨 일이든 일정 궤도에 올라야만 재정적 부담을 떨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힙합은 가장 저예산으로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대중음악계의 본보기 장르다. 거대 기획사 관계자는 아이돌 그룹 하나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거의 10억 원에 가까운 경비를 쓴다고 한다. 자본금이랄 것 없이 시작하는 인디 밴드도 악기 구입, 연습, 공연에 들어가는 비용과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병행하며 돈을 마련해야 한다.

힙합 관계자, 아티스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그들의 주된 수익 창구는 행사 무대였다. 이 좁은 한국 땅에선 정말 행사 무대가 많이 열린다. 대학 축제, 지역 축제 등을 비롯한 축제와 행사는 셀 수 없이 많다. 이런 행사에 초대받는 가수 혹은 뮤지션이 되려면 어느 정도 대중에게 알려진 히트곡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말이다. 밴드가 행사 공연을 하고 받는 돈과 래퍼가 받는 금액이 비슷하다고 본다면 어느 쪽이 더 큰 이익을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을까? 두말할 필요 없이 힙합 쪽이다. 밴드는 수 명의 멤버로 이루어지고, 악기가 있어야 하고, 악기를 실어 나를 큰 차량이 필요하다. 래퍼는 자신이 부를 곡의 음원만 USB나 CD에 담아 가면 끝이다. 금액을 나눌 필요도 없다. 일단 1/n 개념을 들먹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동시에 밴드가 행사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그 인지도를 쌓기가 참 어렵다. 과거 인디 록 전성기에는 패션을 포함한 다른 산업에서 이들을 찾는 수요가 꽤 있었다. 하지만 인디 밴드 시대가 저물어 버린 요즘 밴드가 행사 무대에 오르기는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동시에 그 반대급부로 힙합이 탄력을 받았다. 방송 프로그램 ‘쇼미더머니’가 한몫을 했다. 생면부지 래퍼들은 ‘쇼미더머니’에서 대중성이라는 날개를 얻어 훨훨 날았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힘겨운 랩 전쟁을 버텨 내고 생존한 아티스트가 갖가지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유다.

뮤지션은 음악을 끊임없이 소개하고 인기를 얻어야만 대중 인지도를 넓혀 갈 수 있다. 밴드가 트랙 하나를 녹음하기 위해선 합주실도 빌려야 하고, 녹음실도 대관해야 한다. 모든 게 돈이라는 말이다. 생계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는 멤버들이 한데 모이는 것 자체도 일이다. 하지만 힙합은 다르다.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약간의 악기를 자기 방에 준비해 놓으면 끝이다. 노력과 열정만 있으면 끊임없이 데모 테이프를 생산해 낼 수 있다. 과거 ‘나 혼자 산다’에서 보여준 도끼의 작업실, 최근 다시 주목받는 쌈디의 작업실이 대부분 그런 형식이다. 무엇보다도 다른 장르의 음악에 비해 힙합은 하나의 곡을 완성하는 데 돈이 적게 든다. 아이돌처럼 춤, 노래 등을 가르치는 데 자본을 투자할 필요도 없고, 밴드처럼 연주를 위한 큰 세팅도 필요 없다. 자신의 재능과 열정으로 치열하게 생존할 수만 있다면 언더그라운드에서 방송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그 길은 탄탄하게 펼쳐져 있다.

언젠가 만난 래퍼 해쉬스완과 마이크로닷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현재 이들은 완벽하게 인기연예인이 되었다. 얼마 전 해쉬스완은 포르쉐를 구입했다). ‘도끼는 왜 지금까지 그렇게 열심히 곡을 만들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는 예전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명성을 떨치던 아티스트였어요. 엄청나게 많은 곡을 만들었고, ‘연결고리’라는 한 곡이 빵 터졌죠. 그런 거예요. 그럼 끝나는 거니까요.” 곡을 만들고 발표하는 데 큰돈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을 십분 활용, 해쉬스완과 마이크로닷 역시 틈날 때마다 ‘제대로 한 방 터뜨릴’ 자신만의 트랙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 힙합 언더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경쟁이 그 어떤 장르보다 치열하다는 점이다.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분명 아니기에, 래퍼들은 뜨겁고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언젠가는 자신도 도끼처럼, 빈지노처럼, 박재범처럼 진짜 셀러브리티가 되겠다는 욕망을 안고 말이다.

▶비주류 음악 장르의 생존법

10월12일, 한국 인디 록 밴드 1세대라 부를 수 있는 크라잉넛이 자신들의 통산 8번째 앨범 ‘리모델링’을 발매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규 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 ‘텀블벅’ 후원을 받았다. 사실 이걸 두고 어떤 이들은 ‘크라잉넛이 텀블벅 후원을 받을 정도로 힘든가?’라는 의문을 던졌다. 물론 그런 이유는 아닐 것이다. 크라잉넛은 ‘말 달리자’ ‘서커스 매직 유랑단’ ‘밤이 깊었네’ 등의 유수한 히트 싱글을 가진 밴드다. 그렇기에 여전히 크라잉넛은 여러 행사 무대에서 잘 팔린다. 데뷔 후 거의 20년 동안 크라잉넛은 자신들의 밥줄은 챙겨 온,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던 밴드다. 멤버들 대부분이 가정을 꾸렸고, 가족을 충분히 건사할 만큼 돈을 번다. 그럼에도 이들이 후원 방식으로 앨범을 제작했다는 점은 꽤 주목할 만하다.

크라잉넛의 베이시스트로 잘 알려진 한경록은 자신의 SNS에 위와 같은 의문 혹은 걱정을 불식시킬 글을 올렸다. “저는 며칠 전 마신 숙취 빼고는 아직 힘든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크라우드 펀딩이 여건이 힘들어서 후원을 받는 것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부끄럽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습니다. 커다란 자본 없이 팬들과 직접 소통하며 즉각적인 반응을 보고 좋은 에너지를 받아 좀 더 성의 있고 퀄리티 있는 앨범과 공연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텀블벅이라는 새로운 장을 통해 크라잉넛을 몰랐던 새로운 분들도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인디 밴드라면 음악뿐만 아니라 자기를 적극적으로 표현해 내고, 직접 기획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꽤나 중요하다. 그건 인디 록 아티스트가 한국에서 자립해 나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고, 또 독립적인 기획자로서의 대표적인 사례를 만든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완벽하게 록은 죽었고, 힙합은 대세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만일 이 두 장르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 있다면 힙합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는 상태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통해 힙합이 거론되고, 그 아티스트들이 대중적으로 얼굴을 알릴 수 있는 창구가 많아졌기에 힙합이 훨씬 더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고 본다. 두 장르를 포함해 모든 음악 장르에서 스타가 되기란 무척 힘들다. 힙합을 한다고 모두 돈을 버는 스타가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언더그라운드에서 자신들의 곡을 알리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도끼가 그냥 스타가 된 게 아닌 것처럼, 혁오가 벼락 스타가 된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글 이주영(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Pxhere]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1호 (18.10.30) 기사입니다]

▶뉴스 이상의 무궁무진한 프리미엄 읽을거리
▶제4회 전국직장대항 당구대회 접수중 (~10.28)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