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배병우] 북한발 성장동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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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시정연설에서 “세계가 우리의 경제 성장에 찬탄을 보낸다”고 했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암울한 경제지표에 속으로는 걱정이 적지 않을 것이다. 믿는 구석은 있는 것 같다. 북한이다. 이는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 “평화가 경제”라는 말에 집약돼 있다. 남북관계 개선이 남한의 밥, 돈이 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남북경협의 경제적 효과가 30년간 17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고용 부진이 심화되고 성장세가 뚜렷이 약화되는데도 지난 두 달간 평양 정상회담과 대북제재 완화 분위기 조성에 올인했다. 청년실업과 자영업 위기, 성장잠재력 약화 등 모든 난제를 남북경협 한 방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증권시장에서도 남북경협이 한국 경제와 주식시장에 사라졌던 역동성이 회복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북한을 오래 연구한 전문가일수록 이런 장밋빛 시각에 부정적이다. 북한 개발로 얻는 이득이 불확실한 반면 비용은 한국 경제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정치적 리스크도 여전히 막대하다.

북한의 각종 인프라 구축에는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현실화하려면 우선 북한 철도를 새로 깔아야 한다. 대부분 1930, 40년대에 개설된 북한 철도는 노후화가 극심하다. 개보수해서는 남한 철도와 연결할 수 없다. 한국교통연구원은 남북한 철도 통합에 최장 30년간 160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한다. 타스통신은 러시아 철도공사 자료를 인용해 781㎞의 북한 동해선을 신설하는 데만 30억∼40억 달러(3조3600억∼4조4800억원)가 든다고 최근 보도했다.

하지만 20년 전인 1998년에도 같은 금액이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떨어진다. 러시아 전문가 사이에서 동해선 신설 비용은 최소 100억 달러라는 게 중론이라고 한다. 2014년 금융위원회는 북한의 인프라 개발 비용을 철도 773억 달러, 도로 374억 달러, 전력 104억 달러 등 1400억 달러(156조6300억원)로 추정했다.

문제는 누가 이 막대한 비용을 대느냐다. 은행이나 민간 투자자들은 남북 간 철도 연결에 거의 관심이 없다. 한국 정부나 국제 사회가 나설 수밖에 없는데, 한국이 대부분을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남북 철도 연결에 이해관계가 있는 러시아만 해도 북한 철도 건설에 참여할 가능성이 낮다는 게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의 분석이다. 북한 체제의 불확실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자금이 투입될 수 있다고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국제기구의 자금 지원을 받으려면 IMF 회원국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종 경제 정보와 통계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체제 유지를 위해 ‘김씨 궁정경제’가 필수적인 북한으로서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국 남한 납세자들이 길게는 30년에 걸쳐 수백조원의 돈을 쏟아부어야 할 공산이 높다.

저렴한 북한 인건비를 이용한 중소 제조업의 성공 가능성은 있다. 북한은 특별통행증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개성공단 같은 단절 모델을 늘려 돈만 버는 개방개혁을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공단 조성에 드는 전력과 도로, 보건시설, 상하수도 등 모든 인프라를 한국 정부가 제공해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유치원 문제는 놔두고 대학원 문제를 풀려고 끙끙대는 꼴이라고 한다. 현재 한국이 직면한 경제 문제는 정책 당국자의 결단에 따라 상대적으로 쉽게 해결 가능한 데 반해 남북경협은 천문학적 비용과 국제정치의 불확실성이 얽힌 고난도 문제다. 정부는 일의 순서를 거꾸로 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등 문제 있는 정책의 수정과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난국을 정면 돌파해야 한다. 북한은 지금 한국 경제의 활로가 아니다.

논설위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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