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중요 내용
《진달내꽃, 소월시집을 찾아서》는 제목 그대로 1925년 소월시집 《진달내꽃》이 출간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출간된 이본(異本) 시집 600종을 집대성한 책이다. 소월의 삶과 죽음, 소월 생시 발행된 《진달내꽃》 초간본, 《소월시초》, 《민요시선》 등 소월 원전(!)에 얽힌 얘기(자료 포함)와 소월 사후 출간된 시집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이 책에는 눈여겨 볼만한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22쪽, 그동안 발행된 소월 관련 책 중 유가족(친손녀)이 처음으로 글을 썼다는 것
33쪽, 박귀송 시인이 1937년 1월 27일 동아일보에 〈김소월 추도시〉를 발표 했다는 것39쪽, 김소월이 시집 〈진달내꽃〉을 발간하게 된 이유,
64쪽, 소월의 시집이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됐던 월간 〈여원〉에 연재 되었던 정비석의 소설과 영화로 제작된 《산유화》를 분석한 글,
263쪽 김소월이 배재고보 다닐 때 서울 종로 사간동에 하숙을 했다는 것, (그동안 청진동에 살았다는 이야기만 있었음)
300쪽, 이 책의 제목을 ‘진달래꽃’이 아닌 〈진달내꽃〉으로 한 이유,
306쪽, 국내에서 처음 발표되는 소월의 ‘사후연보’가 수록 되어있음.
그외 그동안 무수히 쏟아진 감상집, 평론집, 소월 시 수록 교과서, 음반, 영화 포스터 등등 소월의 시적 자산을 활용한 텍스트들을 모아 분석하고, 평가한, 그야말로 한국문학사상 최초로 소월 관련 저작들을 입체적으로 서술 했다. 구자룡, 구미리내 두 시인 부녀의 끊임없는 애정으로 집대성한 눈물어린 역작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 이자, 문학박사인 김봉군 카톨릭 대학교 교수가 서문을 썼다.
또한 구자룡 시인은 그동안 수집한 소월 관련 자료 전시회 ‘진달래꽃 김소월을 추억하다’를 2014년 11월 부천시청역 갤러리에서 개최해 문단과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을 펼치면 소월의 이름으로 남겨진 600여 종의 시집 스펙트럼이 펼쳐진다.
출간의 의
엮은이 구미리내의 〈들어가는 말〉 중에서
1925년 김소월 시인이 시집 《진달내꽃》을 발간한 이후, 이본異本 시집이 무려 600여 종, 그 외 자료가 1200여 종이나 된다. 그간 판매량도 약 600만부가 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경이롭기까지 한 이 기록에 내가 흠집을 내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이러한 기록들은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볼 때도 출판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또한 수많은 기록들을 쏟아낸 한국 서정시의 거목 김소월이지만 이렇게 많은 이본 시집이 있다는 것이 일반인은 물론이고 학계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중략)
이번에 소월의 이본 시집을 정리하면서 느낀 점이 많다. 조영암 시인은 출판사들이 마구잡이로 출간하는 소월의 시집을 보고 ‘불우난맥不遇亂脈’이라 했듯이 이본 600여 종 중, 인지가 붙은 시집은 불과 열손가락도 안 된다. 출판업자들이 돈벌이에 급급한 나머지 덤핑이 덤핑을 낳고, 그 덤핑이 또 덤핑을 낳았던 것이다.
지난 겨울 소월의 초간본 시집 중앙서림 총판본 《진달내꽃》이 어느 경매장에서 1억 3천5백만 원에 낙찰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한국현대문학 작품사상 최고액이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살아있는 유가족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이다.(중략)
소월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 현대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 시인이요,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시인 중 한 명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2015년 2월 국내 인터넷 도서 판매업체 ‘예스 24시’에서 고객과 네티즌을 상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시 베스트 10을 뽑은 적이 있었는데 빼어난 시인들을 제치고 김소월의 〈먼 훗날〉이 1위로 뽑혔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80년이 넘었는데도 소월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영원한 사랑의 시인으로 남았다는 증거다.
소월의 친손녀 ‘김은숙’이 쓴 〈고마운 마음〉
‘소월素月’은 제 할아버지의 호입니다. 요절하셨기에 뵌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80년이 넘었고, 시집 《진달내꽃》이 출간된 지 90년이 되었지만 자손들이 한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낙엽이 곱게 떨어지던 지난해 늦가을, 10여 년 동안 할아버지의 이본 시집과 각종 자료를 수집하시는 구자룡 시인과 그분의 딸, 구미리내라는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구자룡 시인께서는 1200여 종의 할아버지 관련 자료로 80주기 추모 전시회도 하시고, 자료집 책도 출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따님께서 그 자료들 중에서 이본 시집을 서지학적인 차원으로 정리하여 또 책으로 엮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그동안 할아버지의 책을 낸다고 찾아오는 사람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소월 할아버지의 친손녀라고 알려지자 많은 분이 찾아오고 또 만나기도 했습니다. 어느 분은 매년 할아버지 돌아가신 날, 제사를 지내시고 계십니다. 어느 피자 회사 사장님은 홍보지에 할아버지의 시 한 구절을 사용했다고 사용료를 주신 적도 있습니다. 모두 할아버지 소월을 사랑하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늘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할아버지 소월은 돌아가셨지만 그분의 시는 우리 마음속에 살아계시다.”라고. 이제 소월은 내 할아버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시인이십니다.
나가는 말
소월시집은 《진달내꽃》이 초간본 이다!(책 제목이 〈진달내꽃〉인 이유)
1925년 12월 26일 김소월 시집 두 종種이 출간되었다. 한 권은 《진달내꽃》, 다른 한 권은 《진달내꽃》으로 모두 매문출판사에서 출간했다. 내용도 같다. 두 책이 다른 것은 《진달내꽃》은 총판이 한성도서주식회사이고, 《진달내꽃》은 중앙서림이 총판이면서 《진달내꽃》의 오자誤字를 수정했다는 점이다.
이후 소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졌지만 정작 초간본이 왜 두 종류인지, 책 이름은 왜 다른지에 대해 학자들 간에 이견을 분분했을 뿐 두 종류의 시집 어디에서도 그 근거와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두 종 모두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일반적으로 초판의 경우 오자, 탈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 유명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도 오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재판을 발행할 때는 초판 오자를 교정하여 발행한다.
서지학자 겸 평론가 엄동섭의 《원본 진달내꽃, 진달내꽃 서지 연구》(2014, 소명출판사)에 의하면 《진달내꽃》에는 22개의 오자·탈자가 있는 것과 달리 《진달내꽃》에는 오·탈자가 없다고 한다. 이는 중앙서림 총판본 《진달내?》이 한성도서 총판본 《진달내꽃》의 사실상 재판본이라는 매우 명확한 증거이다. 이에 따라 필자는 한성도서주식회사 총판본 《진달내꽃》을 초간본으로 판단했고, 이에 이 책 제목으로 삼았다.
《진달내꽃》은 일제강점기에 출간한 책이라서 당시 표기법에 따랐고, 1950년 숭문사에서 현대 표기법에 맞춰 《진달래꽃》으로 발행하면서 오늘날 소월 시집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 후 소월 시집은 90년 동안 표지, 또는 그림과 제목을 바꿔가며 600여 종류가 발행되었고, 아버지가 수집한 소월 자료는 이본 서적을 포함해 1,300여 종이나 된다. 이 책에서는 그 중에서 시집, 평론집, 감상집과 교과서, 그리고 몇몇 음반을 텍스트로 삼았고, 1940년대 자료는 소월 시가 수록된 책을 기준으로 삼았다.
통계로 보면 1940년대 11권, 1950년대 49권, 1960년대 84권, 1970년대 90권, 1980년대 125권, 1990년대 104권, 2000년대 116권, 교과서 52권 등이다. 그렇다고 이 통계가 꼭 정확하다는 것은 아니다. 부천문학도서관에 소장되어있는 아버지의 자료를 위주로 하였기에 그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문헌에는 존재하는데 찾을 수 없는 시집도 있고, 인터넷이나 고서점을 돌아다니다보면 심심찮게 소월 시집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