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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영면에 든 故신성일, 화려하고 반짝였던 그의 발자취

故 신성일/사진=민선유 기자

[헤럴드POP=천윤혜기자]故 신성일의 영결식이 마무리되며 영원한 안식에 접어들었다.

6일 오전 10시 故 신성일의 영결식이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고인의 아내이자 배우 엄앵란을 비롯한 가족 친지와 동료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독고영재가 영결식의 사회를 맡았으며 영결식은 개식사, 영정입장 및 운구, 묵념, 약력 보고, 추모영상 상영, 조사, 추도사, 유가족과 영결식에 참석한 전원의 분향 및 헌화, 유가족 대표인사, 독고영재의 폐식 선언 순으로 진행됐다.

독고영재는 이 자리에서 "고 신성일 님은 살아있는 전설이었지만, 이제는 전설로 남았다. 이 분이 아니었으면 60년대와 70년대 한국 영화계 중흥의 시대가 과연 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며 "우리 후배들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이 땅에 배우로 환생해달라"고 말했다.

엄앵란은 유가족을 대표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며 "가만히 앉아서 고인의 사진을 보니까 '당신도 늙고 나도 늙었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 떠나면서 울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다. 누가 보면 날더러 '왜 안 우냐'고 하는데 울면 망자가 걸음을 못 걷는다더라"며 "집에 가서 밤 12시에 불 끄고 이불 덮고 실컷 울려고 한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다시 태어나 신성일과 산다면 이젠 선녀같이 동경하며 그러고 살고 싶다. 부인들에게 잘 하라. 잘하면 기쁨이 온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엄앵란/사진=서보형 기자
앞서 고 신성일은 지난 4일 오전 2시 30분께 생을 마감했다.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항암치료를 받아오던 중 상태가 악화돼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1937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다. 이후 1964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맨발의 청춘'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청춘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그는 그 뒤 나이와 상관없이 젊음과 로맨스의 상징이 되며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았다. 출연작만 해도 500편이 넘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해온 신성일. 지난 1974년 이장호 감독의 영화 '별들의 고향' 역시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신성일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엄앵란과 결혼해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당시 두 사람의 결혼식에 수 천 명의 하객이 몰릴 정도로 화제를 일으켰다. 신성일은 영화 활동에만 주력하지 않고 지난 2000년에는 제16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성되며 정치계에서 활동한 이력 역시 있다.

그럼에도 그의 시작이 영화였듯이 그의 마지막도 영화였다. 그의 최근작은 지난 2013년 '야관문:욕망의 꽃'이었으며 폐암 투병 중에도 지난 10월에 있었던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으며 관심을 모았다. 폐암 투병 중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사진=서보형 기자
하지만 그 모습이 고인의 마지막 활동이 됐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그는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며 결국 가족 앞에서 눈을 감고 말았다.

故 신성일의 별세 소식에 수많은 영화인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이순재, 최불암, 안성기를 비롯해 김수미, 조인성, 박상원 등 많은 연예계 인사들은 빈소를 찾았으며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인 영결식에는 사회를 맡은 독고영재, 안성기, 이덕화, 김형일 등 영화계 후배들이 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함께 했다.

한편 故 신성일의 시신은 오늘(6일) 오후 화장되며 오는 7일 오전 11시 경북 영천에서는 고인의 추도식이 열릴 예정이다.
pop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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