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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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의 남서쪽 약 17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뫼들링 근교에 작은 마을 힌터브륄이 있다. 힌터브륄은 빈 주변의 그린벨트에 해당하는 비너발트(Wienerwald, 빈의 숲) 지역에 있기 때문에 수세기 전부터 빈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로 손꼽힌다.

슈베르트 역시 친구들과 함께 이 지역을 종종 찾아와 이곳에 있는 여관 횔드리히스뮐레에서 자주 묵었다고 한다. 횔드리히스뮐레라는 이름에서 ‘뮐레’는 ‘방앗간’이란 뜻이다. 사실 이곳이 방앗간에서 가스트하우스(Gasthaus)로 바뀐 것은 된 것은 1786년이라고 하니 꽤나 연륜이 있는 곳이다. 가스트하우스라면 보통 가족이 경영하는 여관 또는 민박집이라고나 할까.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당시 이곳에는 아름드리가 아주 굵은 오래된 보리수가 한그루 서 있었는데 슈베르트는 그 그늘 아래에서 영감을 얻어 <보리수>를 작곡했다고 한다. 횔드리히스뮐레는 지금 기존의 가스트하우스를 증축하여 별4개짜리 호텔 겸 카페 레스토랑이 되었다. 

호텔 앞에 세워진 나무에 겨울바람이 스쳐지나가자 나무 가지들이 소리 내며 떠는데, 그 소리는 마치 <보리수>의 피아노 반주 전반부를 연상하게 한다. 사실 슈베르트의 가곡에서는 피아노 반주 역시 가사의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에 노래 못지않게 아주 중요하다. <보리수>는 24곡으로 구성된 연가곡집 ‘겨울여행(Winterreise)’의 다섯 번째 곡으로 슈베르트는 이 곡을 그토록 사랑했다고 한다.

한편 ‘겨울여행’은 독일의 서정시인 빌헬름 뮐러가 1821년에서 1822년에 걸쳐 완성한 시집에 곡을 붙인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여행은 즐거운 여행이 아니라 정처 없이 가는 쓸쓸한 여행이다. 이 시집에서는 사랑의 상처를 받은 나그네가 눈보라치는 겨울에 정처 없이 방황하며 겪은 일을 노래하고 있는데 그 내면에는 외로운 한 인간의 쓸쓸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겨울여행’은 슈베르트가 가난과 질병 속에서 마지막으로 쓴 가곡집이다. 그 중 간결하고 소박한 <보리수>는 평온함과 우수(憂愁)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이 곡에서 나그네는 보리수 그늘 아래에서 단꿈을 꾸고 나서 나뭇가지에 사랑의 말을 새겨두었다가 겨울에 정처 없이 먼 길을 떠나 방랑할 때, 바람결에 떨던 나뭇가지 소리를 회고하는데 그 소리는 마치 ‘여기 와서 안식을 찾으라’라는 속삭임처럼 들린다.

슈베르트는 1827년에 이 가곡집을 완성하고는 그 다음해인 1828년 낙엽이 떨어지던 가을에 영원한 안식을 찾아 먼 길을 떠나고 말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31세였으니 신이 그에게 할당한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하지만 그가 남기고 간 선율은 거의 20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 깊이 따뜻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한편 시인 빌헬름 뮐러는 슈베르트보다 1년 전인 1827년 3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신이 그에게 할당한 시간도 너무나 짧았다. 
 
횔드리히스뮐레 호텔 벽면에는 슈베르트가 <보리수>를 이곳에서 작곡했다고 해서 벽면에 슈베르트의 초상과 악보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과연 슈베르트가 <보리수>를 이곳에서 작곡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올시다’이다. 그렇다면 왜 이곳이 ‘노래의 고향’이 된 것일까? 
 
이 장소에 대한 논란은 <경기병 서곡>으로 널리 알려진 주페(F. Suppe)가 작곡한 징슈필(노래극)에서 시작 되었다. 이 징슈필의 제목이 바로 <프란츠 슈베르트>이고 극의 배경이 바로 이 지역이었기 때문에 횔드리히스뮐레가 이 ‘노래의 고향’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보리수>는 횔드리히스뮐레와는 실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슈베르트 초상화, <보리수> 악보 및 기념석판.

한편 슈베르트 연구가들은 ‘성문 앞 우물곁에 서있는 보리수’의 실제위치를 한때 독일 헤센 주의 바트 조덴 알렌도르프를 ‘보리수의 고향’으로 여겼다. 왜냐하면 그곳은 시인 뮐러가 태어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다가 실제로 성문이 있고 또 그 앞에는 큰 보리수가 1912년 폭풍우에 쓰러지기 전까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성문은 뮐러가 연작시 ‘겨울여행’을 완성한지 5년이나 지난 1827년에 세워진 것으로 밝혀졌으니 ‘성문 앞 우물곁에 서있는 보리수’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보리수의 존재나 횔드리히스뮐레에서 슈베르트가 보리수를 작곡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낭만적인 상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 (*Winterreise는 보통 ‘겨울나그네’로 번역되어있으나, 여기서는 원래 뜻 그대로 ‘겨울여행’으로 번역했다.)

◆ 정태남(건축사)

이탈리아 건축사이며 범건축(BAUM architects)의 파트너이다.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 미술, 언어, 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로마역사의 길을 걷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이탈리아 도시기행>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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