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듣고 놀고…‘도서관’ 된 광화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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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0.29. 오전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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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라이프러리. 삶(Life)과 도서관(Library)의 합성어인 라이프러리는 ‘책이 있는 곳은 어디든 도서관’이라는 콘셉트로 만들어졌다. 책의해조직위원회 제공


- 2018 책의 해… 광화문 ‘라이프러리’ 현장

가로 26m·세로 20m 책꽂이

4000권 책 보러 1만여명 참여

오픈 스튜디오선 팟캐스트도

책 300권 실은 3.5t 개조 트럭

이동 책방 ‘캣왕성 유랑책방’.


이동식 ‘캣왕성 유랑책방’ 인기

“일상 속 즐기는 책읽기 됐으면”


도심 속으로 도서관이 찾아왔다. 책을 읽기 위해 애써 찾아가는 도서관이 아니라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온 도서관이다. 재즈와 클래식 연주가 흐르고 시민들은 가로 26m, 세로 20m 규모의 거대한 이동식 서가에서 책을 뽑아 읽었다. 선 채로 넘겨 보기도 했고, 빈백에 누워 읽기도 했고 북 테이블에 앉아 책에 빠져들기도 했다. 오픈 스튜디오에서는 팟캐스트가 진행됐고, 광화문을 배경으로 세워진 무대에선 강연이 이어졌다. 놀이와 책을 결합한 공간에선 아이들이 책과 함께 놀았다.

‘2018 책의 해’를 맞아 문화체육관광부와 책의해 조직위원회가 만든 ‘라이프러리’(Lifrary)가 26, 27일 이틀간 서울 광화문 광장을 찾아왔다. 네이버와 네이버 문화재단이 후원한 라이프러리는 삶(Life)과 도서관(Library)의 합성어로 ‘책이 있는 곳은 어디든 도서관’이라는 콘셉트로 만들어졌다. 책을 펼치면 그곳이 해변이든 숲이든 도심이든 자신만의 도서관이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라이프러리는 8월 부산영화제 영화의전당에 세운 영화와 함께한 도서관을 시작으로 9월 제주도 협재해수욕장에 자유로운 해변 도서관을, 10월 서울숲에 재즈가 흐르는 에코 도서관을 만든 뒤, 서울 광화문 광장의 도심 도서관을 마지막으로 그 일정을 마무리했다. 26일 오전부터 비가 내렸지만 미리 비막이 천막을 친 데다 오후 들어 비가 그치면서 본격적으로 시민들이 찾아왔다. 사이사이 난로를 피우고, 핫팩을 나눠주는 배려로 다음 날 쌀쌀해진 날씨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광화문 광장이라는 공간의 성격상 무심히 오가다 책에 끌려 오는 시민이 많았다. 조직위는 대략 1만 명 가까운 시민이 찾았다고 추산했다.

라이프러리에서 책 읽는 시민들.


세종대왕 동상 앞에 자리 잡은 라이프러리, 노란색 책장에 꽂힌 책은 4000여 권. 사이사이에 셀러브리티 추천 책, 독립책방의 큐레이션, 네이버 열린 연단 명사들의 책 서가가 따로 마련됐다. 책과 놀이를 결합한 ‘북 그라운드(book ground)’에선 아이들이 책을 읽고 때론 덮고 놀았다. ‘소통’을 주제로 한 강연무대엔 26일 박상미 더공간 마음학교 대표, 노명우 아주대 교수,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27일엔 임경선 작가, 정재찬 한양대 교수가 올라 책 이야기를 나눴다. 강연이 끝난 뒤 독자들의 질문이 끝없이 이어지기도 했다. 다만 27일 마지막 강연자 이명현 천문학자는 주변 시위로 인한 확성기 소음 때문에 인사만 하고 마무리해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이 ‘사건’마저도 모두가 바쁘고 분주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광화문 광장, 그 일상 속으로 들어온 이동도서관의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한편 이동 책방 ‘캣왕성 유랑책방’은 광화문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책의 해 집행위원인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가 기획, 책의 해 프로그램으로 마련한 스토리가 있는 책방이다. 먼 우주 캣왕성에서 폭군에 시달리던 다섯 마리 고양이가 폭군을 무찌르는 약을 만들기 위해 지구를 찾아와 전국을 돌며 책 속에서 비밀 코드를 찾는다는 설정이다. 3.5t 트럭을 개조해 만든 캣왕성 유랑책방에는 ‘캣왕성의 금서’ 300여 권이 실려 있다. 원래 서점이나 도서관이 없는 지역을 찾아 책을 빌려주려 했으나 보다 적극적으로 운영해 보자며 전국 책·문화 현장을 찾아다니며 책을 팔고 있다. 캣왕성 금서는 고양이들에게 필요한 지구 역사, 약품을 만들기 위한 식물·나무 관련 책, 고양이가 좋아하는 시집 등을 기본으로 신간과 각 지역에 맞게 구성하는 정성스러운 큐레이션으로 유명하다. 광주(光州) 독립 서점 ‘책과 생활’의 신헌창 대표와 함께 서가를 꾸몄고, 뮤지션 황경하에게 의뢰해 주제가 ‘사르칸트의 표범’과 뮤직비디오도 만들었다. 책을 중심으로 즐거운 아이디어를 무한히 펼칠 수 있음을 보여준 캣왕성 유랑책방은 7월 홍대 앞을 시작으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부산영화제, 강릉 커피 축제, 광화문 라이프러리까지 전국 12곳을 누볐고, 다음 달 화성생활문화축제를 끝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강 대표는 유랑책방 활동이 끝날 무렵 이 이야기를 담은 SF서스펜스 소설을 내놓을 계획이었지만 아직 절반가량인 원고지 400장 분량밖에 쓰지 못했다고 했다. 책방에서 책을 사고, 사진을 찍던 시민들은 유랑책방이 다음 달 폐기된다는 소식에 아쉬워하며 유랑책방이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계속 그 이야기를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덧붙여 강 대표의 SF 소설도 완성되기를 바랐다.

정은숙 책의 해 집행위원장은 “책은 도서관 같은 별도의 공간을 찾아 정좌하고 진지하게 읽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즐겁게 즐기는 것임을 보여주려 했다”며 “라이프러리에서 펼쳐 읽은 책에 끌려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책을 펼치고, 우연히 펼친 책이 인생의 책이 되는 그런 일상 속 공간과 시간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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