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비가 풀렸으니 당분간은 좀 추스르고 가겠지….” 민주당의 한 고위 인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얘기하기에는 아직 시기가 이르다고 말했다. 정가에서 ‘변비 개각’이라는 비아냥을 살 만큼 “나온다, 나온다” 하면서도 나오지 않던 청와대 개편과 개각 명단이 드디어 발표되는 만큼 당분간은 그 후광 효과를 누릴 거라는 의미다. 한나라당의 한 중도 성향 인사 역시 “아직은 MB 정부에서 장관 한자리 해먹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고, 2012년 총선의 공천권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황이라 여전히 눈치 보는 분위기가 있다”라고 말했다. 역대 정부가 그랬듯이 본격적인 레임덕은 임기 3년차 후반이나 4년차 초, 그러니까 올해 말이나 내년 봄쯤 시작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이들 신중론자들의 분석이다.
 

ⓒ뉴시스세종시 국회 표결 당시 박근혜 전 대표(위)는 작심하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고, 이후 ‘트윗’ 활동 등 광폭 행보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레임덕의 징후가 이미 심상찮게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6·2 지방선거 참패→세종시 수정안 국회 부결→‘영포 게이트’ 등 악재가 연이어 터지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와 정부의 고위직을 역임한 한 인사는 “김영삼 대통령도 임기 3년차에 지방선거 참패를 겪었지만, 탄탄한 지역 기반,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도덕적 기반, 국민 여론에 대한 재빠른 대응 감각 등 3대 버팀목이 있어 그나마 레임덕을 늦출 수 있었다. 하지만 MB 정부는 이 가운데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레임덕이 예상보다 일찍 시작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레임덕이 이미 시작됐다는 인사들의 근거는 대체로 이렇다.

▩납작 엎드린 공무원 조직

서울에 지역구를 둔 한 민주당 원외 위원장은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구청장이 민주당 구청장으로 바뀐 후 달라진 지방 공무원들의 태도를 이렇게 풍자했다. “일단 구청 공무원들이 나를 보면 절하던 각도가 5°에서 15°로 깍듯해졌다. 지역 행사에 가면 구청장 인사말,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부인이나 사무국장 인사말만 하고 끝이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한나라당 빼고 나한테 기회를 준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7월3일 서울광장에서 4대강 반대 집회를 열 수 있었던 과정을 이렇게 소개했다. “서울시와 행안부에서 ‘이미 행사가 잡혀 있다’ ‘정치 집회는 안 된다’며 못 내주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직접 전화를 걸어 ‘어차피 7월1일이면 서울광장 조례가 바뀐다’고 큰소리친 뒤 전화를 끊었더니 곧바로 연락이 왔다. 자기네 행사 딴 데 가서 할 테니 서울광장 쓰라고.”

이처럼 정권교체가 이미 이뤄진 지역의 공무원들은 아예 라인을 갈아탔고, 아직 대통령이 버티고 있는 중앙 공무원들은 서서히 ‘복지부동’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는 기색이다. 서울이 지역구인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딱 국장급, 다음 정부가 인사를 할 라인부터 안 움직인다. 이전에는 ‘어차피 다음 정권도 한나라당’이라며 충성 경쟁을 하곤 했는데, 지방선거 결과가 나오니까 ‘어, 이것 봐라?’가 된 거다. 선거에 진 게 그래서 충격이 크다”라고 푸념했다. 이 의원은 검찰 조직이 느슨해지는 게 가장 눈에 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얘기를 들어보면, 지방선거에서 깨진 후로 검찰이 예전만큼 빠릿빠릿하게 안 움직인다고 한다. 일 시켜보면 답 올라오는 속도가 확 느려지고, 질도 떨어졌다더라. 역시 다음 정권에서 운명이 결판나는 지검장급 검사들이 납작 엎드렸다”라는 것이다.

 

 

 

ⓒ시사IN 안희태활발히 활동 중인 민주당 영포특위(위원장 신건·위 앞줄 오른쪽)에 고급 정보가 몰리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전직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검찰의 반란을 걱정했다. “이 정부 들어 검찰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검찰도 명예회복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최대 효과를 노리려면 결국 살아 있는 권력을 치는 게 최선이기 때문에, 조만간 ‘검찰발 사정정국’이 현 정권을 강타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MB가 공무원 월급  올려주겠다고 하는 걸 보고 ‘진짜 급했구나’ 싶더라. MB는 원래 공무원 혐오증이 있는 양반이다. 그러니 얼리 버드(Early Bird: 일찍 일어나는 새, 부지런한 사람)니 임금 동결이니 하며 몰아치고, 공무원 사회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며 ‘영포 라인’을 두둔했던 것 아닌가. 그런 MB가 공무원 기 살리자고 발언했다는 건 진짜 진짜 안 움직인다는 얘기다”라고 해석했다.

▩미래 권력에 몰리는 사람과 정보

한 정치학자는 “대체로 레임덕은 여권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차기 권력자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징후다”라고 말했다. 그런 맥락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최근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세종시 표결이 있던 날. 박 전 대표는 대다수 친박계 의원이 만류하는데도 직접 ‘반대 토론’에 나섰다. “어떤 의원이 반대하는지 끝까지 확인하겠다”라고 나선 이명박 대통령에게 “내가 반대한다”라고 머리를 들이댄 것이다. 이런 박 전 대표의 선택을 놓고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한나라당 지지층에게 지나치게 딴죽 거는 이미지를 주는 것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한나라당 전당대회와 ‘영포 게이트’를 거치면서 오히려 박 전 대표의 존재감이 더 도드라지는 양상이다. 지방선거 패배로 불안감에 휩싸여 있던 여권 인사 사이에 ‘미래 권력’으로 갈아타려는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 친박 의원은 “요즘 만나자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나 해서 만나보면 ‘평소 박 전 대표를 얼마나 존경했는지’를 강조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심지어 청와대에 있는 사람도 만나자더라. 한마디로 ‘눈도장’ 찍자는 거다”라며 웃었다.

이런 흐름을 부추기기라도 하려는 듯, 박 전 대표도 ‘은둔’에서 벗어나 광폭 행보를 보인다. 당장 ‘트윗’ 정치에 새로 뛰어들어 대중과의 소통을 활발히 하고 있다. 시작한 지 열흘 만에 팔로어가 2만명을 넘었고, 답글도 자주 다는 편이다. 전당대회에 출마한 친박 후보들의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가끔 조언을 구하는 한 전직 의원은 “박 전 대표에게 ‘앞으로 ‘서민’과 ‘복지’ 얘기만 해라. 표는 거기에서 나온다’고 했다. 한나라당이 선거에서 패한 이유는 무엇보다 사회·경제적 불평등 구조에 대한 불만 때문인데, 보수층은 민주주의의 2대 가치인 자유와 평등 가운데 평등을 얘기하면 무조건 빨갱이로 몬다. 하지만 박근혜가 평등을 얘기한다고 ‘좌빨’이라고 공격하지는 않을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뉴시스한나라당 전당대회(위)는 ‘영포 게이트’에 가려 쇄신 전대의 이미지를 발현하지 못했다.

 


친박 진영에 사람이 몰린다면, 야권, 특히 제1 야당인 민주당으로는 정보가 몰리는 분위기다. ‘영포 게이트’가 불거진 후로는 내부 고발성 첩보가 급증했다. 7월7일 만난 ‘영포 게이트 진상조사 특위’ 소속 한 의원은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위세에 눌려 입을 다물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야당은 역시 집권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조만간 선진국민연대 주요 인사들의 메리어트호텔 정례 회동에 대해 당 차원의 공세가 있을 예정이다”라고 귀띔했는데, 바로 다음 날 민주당 전병헌 정책위의장의 입을 통해 이 모임이 도마 위에 올랐다.

▩깊어지는 친이 내부의 권력투쟁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이번 ‘영포 게이트’의 본질이 이재오·정두언 등 수도권 친이계와 이상득·박영준(국무차장) 등 영남 친이계 사이의 권력 내부 갈등이라고 규정했다. 아닌 게 아니라 수도권과 영남 친이계는 이명박 정부 들어 끊임없이 갈등했다. 파열음이 겉으로 드러난 것만 벌써 세 번째다.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에 친이 핵심이 두 패로 나뉘어 레임덕을 부추기는 양상이 전개된 셈이다.

수도권 친이계의 한 인사는 “한나라당의 보수 이미지를 불식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데는 수도권 친이계의 힘이 컸다. 그런데 인수위가 구성될 때부터 이상득 라인이 요직을 장악하더니 2년 내내 권력을 사유화했다. 영포회 논란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어차피 레임덕이 오면 이상득(SD) 레임덕이 먼저 온다. 여의도에서 아무도 SD 말을 안 듣게 되는 날이 곧 올 거다. 아직은 (SD가) 무서워서 대놓고 말을 못하지만 다들 (박영준을) 날리려면 지금 날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른바 SD 라인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선진국민연대 출신인 장제원 의원은 민간인 사찰 문제를 비판한 정두언 의원을 향해 “자신의 선명성을 보이려고, 누군가를 권력을 전횡하는 나쁜 사람으로 몰고 있다”라고 공격했다. 박영준 국무차장과 함께 선진국민연대 결성에 한 축을 담당했던 김대식 전 사무처장은 7월9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만약 한나라당 내부에서 야당에 이런 이야기를 흘린다면 차라리 야당으로 가는 게 낫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한나라당 일부에서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유일하게 원외인 김대식 전 사무처장이 이번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것도 ‘정두언 견제’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부모님이 호남 출신인 정 의원이 호남+수도권 대의원을 공략 포인트로 삼았는데, 6·2 지방선거에서 전남지사 선거에 출마했던 김 전 처장이 출마함으로써 정 의원의 지지 기반이 갈린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고위 인사는 “참여정부에서는 부산 인맥이 일관되게 ‘해먹었기’ 때문에 친노 핵심에서는 분열이 없었다. 우광재·좌희정이 역공을 시도했다면 모를까 그럴 힘이 없었다. 노태우 정부를 탄생시킨 ‘월계수회’가 국정을 농단하다 결국 권력투쟁 과정에서 소멸했듯이 선진국민연대도 비참한 종말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꼬집었다.

▩변함없는 MB의 4대강 사랑

이처럼 레임덕의 징후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 운영 방식을 바꾸면 상황은 180° 달라진다. 집권 첫해 ‘쇠고기 파동’을 겪으며 바닥으로 추락했던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MB가 ‘반성한다’며 다시 한번 중도 실용 노선을 천명하자 급반등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혹시나’가 ‘역시나’가 될 공산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당장 여론의 반대가 강한 4대강을 여전히 밀어붙이고 있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속도조절론’이 나오지만 우이독경이다. 민주당 박선숙 의원은 “4대강 사업은 환경문제만 걸려 있는 게 아니라 재원 배분의 문제, 일자리 창출의 문제 등이 얽혀 있어 훨씬 민감한 민생문제다. 4대강에 퍼붓는 돈 때문에 복지와 교육 예산이 깎여 내 주머니에 들어오던 3만원이 2만원으로 줄었다면 대상자들이 얼마나 반발하겠나. 그래서 청와대 사람들이 가끔 조언을 구해오면 무조건 4대강 사업부터 중단하라고 한다. 그러면 ‘4대강 사업 중지만 빼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 없냐’라고들 반문한다. 그만큼 MB가 아직도 문제의식을 못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임태희 비서실장 카드를 보고 더 이상의 기대를 접었다고도 했다. 2007년 대선 캠프를 주도했던 ‘정두언팀’의 핵심 참모였던 그는 “SD의 ‘양아들’이나 다름없는 임태희 카드는 SD를 정점으로 하는 권력사유화 시스템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4중론’이니 ‘중도 실용’이니 만들어서 대선은 이겼지만, MB의 유전자는 사실 그게 아니었던 거다. 이러면 설사 박영준이 정리된다 해도 시스템이 유지되는 만큼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청와대를 어찌해보려 노력할 게 아니라 오히려 거리를 둬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라고 덧붙였다. ‘MB 깃발’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돌파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다.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결국 이명박 대통령 본인이 문제라고 말했다. “참모한테 문제를 돌리는 건 동탁이 밑에 왜 관우나 장비 같은 부하가 없냐는 우문과 같다. 동탁이 밑에 십상시만 우글대는 건 결국 동탁의 문제 아닌가?” MB의 레임덕 여부는 결국 MB에게 달려 있다는 얘기다.

 

기자명 이숙이·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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