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主化 以後 6共 大統領들의 境遇任期 前/中 犯罪나 非理, 支持率 暴落이 레임덕의 原因이다.
韓國의 5年 單任制 特性上 必然的이다. 大選走者 1名을 頂點으로 굴러가는 系派가 實權을 잡는 制度지만 制度的으로 現 執權勢力의 權力 再創出이 不可能하고, 大統領 任期동안 刑事 불訴追되는 大統領의 權限保障 特性 때문에
政權의 過誤를 退任과 同時에 몰빵海 精算당하는 것이 退任하는 大統領의 宿命이고
甚至於 任期 마지막 5年次가 되면 與黨 內部 非主流 系派들은 大選 候補 選出과 黨權 掌握을 위해 더 酷毒한 攻擊을 퍼붓는 것이 日常이다.~ 이것 때문에 87年 體制 以後 35年間 執權 與黨의 次期 大選 候補는 모두 黨內 非主流, 非黨權派에서 나왔으며, 歷代 大統領 모두가 當選 以後 最小 1~2年 안에 全 政府의 非理搜査를 强度높게 進行해 前任 大統領 或은 그 家族, 政治的 側近들을 檢察 포토라인에 세우고 大部分 政治的 處罰 또는 刑事處罰까지 때렸다. 이는 前述한 刑事불訴追 特權으로 因해 5年値 모아둔 過誤를 한番에 精算받는 意味도 있고, 次期 政權에서 急할때 支持率 上昇에 써먹을 政治攻勢로 쓰기에도 充分한 行爲다.
6共和國 大統領 中 任期 中 執權與黨을 脫黨하거나 黜黨되지 않았던 사람이
李明博
과
文在寅
單 두 名뿐이라는 事實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任期 末年의 大統領에게 脫黨을 要求하고 距離를 두려 애쓰는 일이 執權 與黨의 必須 코스일 程度이다. 그나마 李明博이 任期 末에 脫黨하지 않고 黨籍을 維持한 것은 박근혜가 脫黨 要求를 反對했기 때문이다. 當時 大勢論을 形成하며 保守 陣營의 大選候補로 자리잡은 朴槿惠는 公薦權과 黨權까지 모두 確保하고 非對委 體制에서 刷新을 主導하여, 大統領 任期 말이던 李明博의 存在感이 微微해졌다. 過去
金永三
,
李會昌
等 强力한 大選走者들은 大統領의 脫黨을 主張한 反面 朴槿惠는 每番 反復된 脫黨이 解決策인 적이 있냐며 오히려 黨內 脫黨 主張을 잠재웠다. 아이러니하게도 朴槿惠는 彈劾이 引用되면서 靑瓦臺를 떠나 自宅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않아 拘束되면서도 親朴 勢力의 反撥 때문에 오랫동안 黨籍을 維持하다가,
洪準杓
當時 自由韓國當 代表가 職權으로 黜黨시켰다.
文在寅
의 境遇 一旦
民主化 以後 最初의 레임덕 없는 大統領
이기는 했다. 40% 程度의 콘크리트 支持層을 確保했기에 任期 末에
與黨
에서 黜黨 或은 脫黨 要求를 할 수는 없었지만, 親文系이자 有力 大選候補였던
李洛淵
이 黨代表 時節 民主黨員들로부터 信任을 잃으면서
[16]
非文界였던
李在明
李 候補로 選出되었고, 이로써 1987年 直選制 改憲 以後 與黨의 次期 大統領 候補는 大統領 所屬 系派가 아닌 다른 系派에서 나온다는 法則은 如前히 지켜졌다.
[17]
그리고 李在明 候補는 以前의 與黨 大選 候補들과 달리
政權 末 大統領
에 對한 批判을 最少化하고 本人만의 公約보다는 民主黨 政權의 連續性을 지켜달라는 方向의 遊說를 하는 것이 不可避하였다. 그러나 大選의 結果는 文在寅 政府와 對立角을 세우다
野黨
으로 들어가버린 文在寅 政府의 檢察 總長
尹錫悅
의 當選이었고, 文在寅은 最初로 政權交替 10年 週期說을 깨고 바로 野黨에 政權을 넘겨준 人物이라는 汚名을 쓰고 만다.
一般的으로 任期 末年에는 政權의 實情 等이 크게 浮刻되고 스포트라이트가 現 政府보다는 次期 大權走者들에게 쏠리기 때문에 政權交替論이 더 높게 나온다.
#
그렇다고 政權交替論 支持率이 無條件 野黨 執權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데 2012年 大選을 그 一例로 들 수 있겠다.
#
한便, 全?現職 大統領을 너무 攻擊하면서 이에 憤怒한 現職 大統領이 與黨의 政權 再創出을 妨害하면서 野黨으로의
政權交替
를 容認하다시피 하는 境遇도 있다.
李會昌
은 15代 大選 候補로 選出되기 위해
IMF 事態
로 政權末 民心을 完全히 잃은
YS
와 距離를 두었는데, 이게 單純 距離를 둔 게 아니라 YS와 差別化를 위해 김영삼 人形을 불태우고 상도동系 人士들의 政治的 影響力을 去勢시키는 水準이었다. 그 結果 現職 大統領이었던 YS는 與黨 候補 이회창에게 大選에서 支援射擊을 一切 안 해줬고, 이것이
李仁濟
의 獨自的 大選出馬+
DJP聯合
과 겹쳐 惡材로 作用하는 바람에 大選에서 落選했다는 假說이 있다.
또한, 就任한 大統領이 前職 大統領을 標的 搜査하면서
前職 大統領
의 支持層을 不俱戴天의 怨讐로 만드는 逆風을 自招하는 境遇도 있다. 바로
李明博
이 그러했다. 그는 執權 直後 檢察이
盧武鉉
前 大統領과
參與政府
關係者들을 먼지털이하듯 無理한 搜査를 하도록 事實上 支援했고
[18]
이러한 노무현을 同情하던 사람들의 多數가 이명박 政權에 恨을 품고
민주당系 正當
의 콘크리트가 되어 오늘날까지 큰 影響力을 行使하고 있다. 2010年代 줄곧 (그렇다고 選擧를 恒常 이긴 건 아니지만) 민주당系 政黨 支持者들 間의 團合力은 커져만 갔고, 2018~2020年에 그 絶頂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