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자들에게 인생의 즐거움을 묻다' 자신을 찾는 끝없는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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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1.08. 오후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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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실존적 의미를 던져주는 회화 작품들. 에곤 쉴레의 '예언자'. 사진=책읽는수요일 제공

실존주의자들에게 인생의 즐거움을 묻다/이하준

인간은 즐겁게 살기를 바라고 때로는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기도 한다. 하지만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잘살고 있는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인간은 형이상학적 욕구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이란 자기 삶의 의미를 검토하는 삶이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칸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사유하는 인간의 궁극적인 물음이라고 생각했다.

카뮈·카프카·사르트르 등 14인
실존주의자 삶과 작품 추적 통해
자기 선택으로 자기 역사를 만든
존재의 표현 방식 '자기 서사' 소개

"자기 서사는 에너지와 정열 모아
그 속에서 삶의 희열을 찾는 길"


이 책에서 만나는 14인의 실존주의자들은 세상의 숱한 훼방과 강압, 유혹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찾기 위해 용기 내어 스스로를 사랑했던 이들이다. 고독 속에서도 자유를 누렸던 사람들이다.

저자는 이 같은 자기 주도적 삶의 찬란함을 '자기 서사적 삶의 희열'이라고 표현한다. 자기 서사란, 자기의 선택으로 자기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의식적 활동으로, 다양한 방식의 자기 존재의 표현이다. 따라서 자기 서사는 우리 자신의 실존적 모습의 다양한 갈래를 확인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 책은 생텍쥐페리, 사르트르, 카뮈, 카프카, 제임스 조이스, 시몬 드 보부아르, 버지니아 울프, 사무엘 베케트 등 실존주의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추적해 그들이 개척한 다양한 자기 서사의 방법을 소개한다. <오이디푸스 왕> <고도를 기다리며> <댈러웨이 부인> <어린 왕자> <변신> 등의 작품이 안내하는 생의 존재론적 의미와 가치에 이르는 길을 따라간다. 야스퍼스, 니체, 하이데거, 키르케고르, 마르틴 부버의 철학 속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아 나서는 자기 서사의 사유들을 읽어내기도 한다.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무료함과 의미 없음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우리에게 카뮈는 '부조리'라는 자기 서사로 말을 건다. 카뮈에 따르면 인간은 부조리와 함께 살아가는데, 그 어떤 인간도 삶의 부조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조리가 인간 실존의 근원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부조리는 설명될 수 없거나 증명될 수 없는 사건, 삶의 이율배반, 불확실성과 불투명성에 관련된 실존적 사태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따라서 저자는 실존한다는 것은 명증한 의식 속에서 부조리를 경험하고 살아가는 것이며, 죽음을 인식하지만 죽음을 거부하는 것이며, 부조리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이유로 카뮈에게는 자살 역시 삶의 회피인 것이다.

부조리와 실존에 대한 논의는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끊임없이 다시 꼭대기까지 굴려 올리는 '운명의 반항아' 시지프에 집중된다.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하는 <이방인>의 뫼르소도 부조리한 인간의 대명사다. 그는 심리적 감각을 상실했고 규범에 무감각하며, 무의미함을 공기와 같이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한편, 알 수 없는 절망과 불안에 빠진 우리에게 카프카는 소외와 자기 감금과 존재의 망각에 대해 얘기를 풀어 놓는다. 그의 작품 <변신>에 나오는 집의 구조는 실제 그가 살던 집의 구조와 같다고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좁은 집, 그레고르의 방이라는 제한된 공간과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 나-가족-직장-사회-자본주의의 상호관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저자는 파악한다. 저자는 "카프카는 그와 같은 방식을 통해 미시적 접근만으로도 인간 실존의 본질적 문제를 훌륭하게 조명하고 있는 실존의 미시물리학자"라고 평가한다.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많은 사람이 소외와 자기 소외, 망각 속에서 융통성이나 조화, 중용의 이름으로 최면을 걸고 살아간다. 그레고르는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 고민하고 갈등하며 싸우기 시작한다. 그가 동생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려고 출입이 금지된 거실로 나오는데, 그에게는 음악이야말로 동물에서 형이상학적 존재인 인간으로 존재의 상승을 가져오는 구원의 매체이다. 저자는 "자기 구원을 추구하는 그레고르의 모습이 바로 자기 서사로서 실존의 참된 모습이고, 그레고르는 음악이 됨으로써 두려움 없이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한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말한다. "자기기만과 최면, 눈감음과 대증요법으로 실존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산다는 것은 참 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자기 서사의 길은 힘과 에너지, 정열을 모으는 것이고 그 속에서 희열을 찾는 먼 길"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조이스의 스티븐이 종교와 민족과 이데올로기 등 수많은 억압의 기제에 용감하게 맞섰던 것이고, 야스퍼스가 말하는 근원적 한계상황과 맞서는 순간들이 있는 것이고, 니체의 사자처럼 용과 싸우고 어린 왕자처럼 지구별의 어른들과 싸우는 아이가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하준 지음/책읽는수요일/272쪽/1만 5000원.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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