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모피, 잘 입으려면…"열, 수분 피하고, 자주 입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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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1.19. 오전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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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느라 못 입고, 촌스러워 못 입고, 눈치보여 못 입는 모피

평균 수명 35년...불황과 한파엔 너도나도 고쳐 입어

모피 수선은 전신성형…전문가가 말하는 경제적인 모피 입기

유행이 지난 모피 코트, 잘 수선하면 새 옷처럼 입을 수 있다./퓨어리 제공

"오래전에 선물 받은 모피가 있는데 어찌해야 할까요? 몇 번 입지도 않았는데… 버릴 수도 없고 난감해요." 주부 김모 씨(45)는 장롱 속 모피를 보면 심란하다. 십여 년 전 시어머니가 선물로 주신 모피 코트다. 처음엔 아끼느라 못 입고, 나중엔 촌스러워서 못 입었다. 요즘엔 모피를 입으면 몰지각하다는 말까지 듣는단다. 옷장만 차지하는 애물단지 모피, 어떻게 해야 할까

"잘 입어야죠." 모피 전문가 이유형(42) 씨는 모피의 장점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모피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윤리적 갈등은 피할 순 없지만, 이미 갖고 있다면 제대로 가치 있게 입으라는 것. "모피의 평균 수명은 35년이지만,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50년까지도 입을 수 있어요. 게다가 보온성이 탁월하고, 천연 섬유라 환경을 해칠 염려도 없죠." 이런 점을 잘 활용해 입는다면, 한두 해 입고 버리는 외투보다 모피가 더 환경친화적이고 경제적이라는 게 이 씨의 주장이다.

◇ 모피는 한 철 입는 옷 아냐…고쳐 입으면 수십 년도 거뜬해

모피 수입 제작유통업체 퓨어리를 운영하는 이 대표는 모피 사업을 일군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국내 최초의 모피 디자이너 오영자(76) 씨다. 1970년대 일본에서 모피 제조 기술을 배운 오 씨는 일본 천황 결혼 50주년 기념식에 황태자비가 입을 밍크코트를 만드는 등 왕족과 상류층을 위한 모피 코트를 만들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모피 수선으로 명성을 얻었다. 당시 한국은 모피 수입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수선을 먼저 시작한 것이 이유다.

이 대표는 어머니의 기술을 이어받았다. 원래 모피 디자이너지만, 수선도 달인이다. "모피 디자인은 수선과 별개로 생각할 수 없어요. 구매 후 몇 년이 지나도 계속 수선 의뢰가 들어오니까요."

몇 년째 장롱 속에 자리만 차지하는 모피 코트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잘 입는 법을 찾아보자./핀터레스트

그는 모피 재킷 두 벌을 보여줬다. 하나는 망토 스타일, 다른 하나는 모자가 달린 조끼 형태다. 디자인이 색다르길래 신상품 인가 했더니 수선한 것이란다. 수선 비용은 100만원 선으로, 원래 밍크 가격보다 훨씬 싸다. "어깨가 넓고 부피가 큰 옛날 스타일의 모피 재킷을 리폼했어요. 후드가 달린 조끼는 소매를 몸판으로 옮겨 기장을 늘리고, 모자 부문은 다른 색의 털을 붙여서 젊은 느낌을 더했죠. 앞으로 십 년은 더 입을 수 있을 거예요."

최근 겨울 한파가 길어지고,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갖고 있던 모피를 수선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인터넷에서 모피 수선을 검색하면 다양한 업체가 검색된다. 가격도 수십 만원에서 백만 원대까지 천차만별이다.

이 대표는 가능하면 수선업체를 직접 찾아 상담하고 적당한 곳을 고르라고 조언했다. "모피 수선은 새 옷을 만드는 것보다 더 까다로운 공정이 필요합니다. 일부분을 해체해 개조하는 일반 옷과 달리, 모피 옷은 원피를 일일이 분리해 만들어야 하니까요. 털도 수십 가지다 보니 모피를 잘 아는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죠."

◇ 세탁은 10년에 한 번...가장 오래 입는 방법은 자주 입는 것

모피는 버리는 것이 없다. 수선을 마치고 남은 원피로는 머플러나 모자, 커프스 등 다양한 액세서리를 만들 수 있다. 옷으로 입기 어려울 만큼 가죽이 손상됐다면, 러그나 쿠션 커버처럼 인테리어 소품으로 재활용해도 좋다. 해외에선 할머니의 오래된 모피 코트를 개조해 테디 베어를 만들어 손자에게 물려주기도 한다.

모피 수선은 ‘전신 성형’과도 같다. 원피를 일일이 분리해야 하므로 새 옷을 만드는 것보다 까다로운 공정이 필요하다./한국모피협회

마침 한 고객이 40년 전 구매했다는 모피를 들고 왔다. 이 대표는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수선을 하려고 건드리면 가죽이 다 무너질 거다. 그래도 옷의 주인이 애정을 품고 있으니, 어떻게 수선할지 궁리해 봐야겠다"고 했다.

수선이 가능하게 하려면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천연 섬유인 모피는 ‘호흡’할 수 있는 환경에서 보관되어야 한다. 최적의 조건은 기온 10℃ 안팎, 습도 50%다. 일반 가정에서는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 보관하거나, 수시로 꺼내 환풍시켜주면 된다. 억지로 좀약을 넣어두거나 제습제를 사용하면 가죽과 털이 건조해져 수명이 단축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드라이클리닝은 10년에 한 번이면 충분하다. 외출 후엔 물수건으로 닦아 오염을 제거하자. 깨끗한 행주에 물을 묻혀 전자레인지에 2분 정도 돌린 후, 모피 결을 따라서 닦아준다. 반대 결도 똑같이 닦아준 후, 통풍이 잘되는 곳에 말리면 끝. 입을 때도 요령이 필요하다. 모피코트를 입다 보면 겨드랑이 쪽이 땀으로 삭거나 찢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겨드랑이 부분에 패드를 붙이면 오염을 방지할 수 있다. 체인 백처럼 털을 손상하는 가방을 메지 않는 것도 팁이다.

"모피를 오래 입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주 입는 것이에요. 그냥 두면 삭기 십상이죠." 이 대표는 모피를 ‘패션계의 보석’이라고 표현했다. "유행에 휩쓸려 충동적으로 사는 게 아니라, 신중하게 구매해 특별한 날 입잖아요. 어머니나 할머니에게 물려받아 추억을 간직하기도 하고요. 윤리적인 이유로 모피를 무조건 피하는데, 제대로 입는다면 무엇보다 가치 있는 패션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김은영 기자 key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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