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저항의 역사]학생운동 중심지 춘천·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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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항일학생운동사

춘천고등보통학교 동맹휴업 비롯
비밀 조직 `상록회' 중심으로 진행

춘천농업학교는 독서회 조직 활동
강릉농업학교도 `항일맹휴' 투쟁


도내 항일운동은 의병운동과 3·1운동, 학생운동으로 이어진다. 학생운동은 당시 비교적 고등교육기관인 고등보통학교와 농업학교 등이 몰린 춘천과 강릉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춘천고등보통학교의 항일운동은 제1회 입학생이 3학년이 되던 1926년 10월 일인교사 배척을 이유로 시작됐다. 같은 해 4월26일 순종 서거 이후 교내에서 일인교사들의 민족 모욕 및 폭언이 발생하자 전교생이 일제히 동맹휴업에 들어갔다. 3년 뒤인 1929년 5월에는 2차 항일맹휴, 1935년 7월에는 3차 항일맹휴운동이 벌어졌다.

이후 춘천고보의 항일운동은 한서 남궁억 선생과 농촌계몽운동의 영향을 받은 비밀 조직 상록회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1937년 3월 조직된 상록회는 독서회와 귀농운동을 통해 민족의식 고취에 나섰지만 1938년 발각돼 회원 모두가 체포됐다.

인근 춘천농업학교도 일인교원 배척을 이유로 1927년 9월 항일맹휴운동이 시작됐다. 2차 항일맹휴운동은 1932년 4월29일 개교 22주년이 되던 날 진행됐다. 3차 항일맹휴는 1937년 6월 전개됐다.

춘천농업학교의 본격적인 항일운동은 독서회가 조직되던 1937년 11월부터 시작됐다. 이들은 민족주의 책을 구입해 읽고 토론회와 독후감 발표회를 열어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춘천농업학교의 독서회가 발각된 것은 만 3년이 지난 1940년 12월이다.

당시 졸업생들도 각지에서 근무하다 모두 검거돼 처벌받았다.

강릉농업학교의 항일학생운동은 개교한 지 채 3년이 안 된 1930년 2월에 일어났다. 당시는 1929년 11월3일에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의 여파가 전국적으로 파급될 때였다. 이 사건은 사전에 계획이 발각됐지만 강릉농업학교 학생들의 민족주의 사상을 크게 자극했다.

같은 해 7월1일 학생 1명이 퇴학 처분을 받은 데 분개해 일인교원 배척을 이유로 강릉농업학교의 항일맹휴가 본격화됐다. 두 달 뒤인 9월5일부터 한달여간 2차 항일맹휴운동이 벌어졌고 3년 뒤인 1933년 6월에도 일인교사 배척을 이유로 3차 항일맹휴운동이 일어났다. 항일맹휴운동을 주도한 것은 1929년 5월 결성된 비밀 결사조직인 독서회였다.

이 밖에 양양공립보통학교와 원주보통학교, 춘천사범학교 등에서도 일인교사들의 학생 차별과 폭언 등에 반발,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동맹휴학이 이뤄졌다.

문제는 기존 항일의병운동과 3·1운동에 비해 도내 학생운동에 대한 연구가 아직 저조하다는 데 있다. 광복회 관계자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도내 학생운동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길 바란다”고 했다.

신형철기자 chiwoo1000@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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