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스럽게도 한국은 해방 이후 제대로 된 외교문서집을 갖지 못했다. 한국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자국의 외교문서집을 보유하지 못한 유일한 국가이다. 한국 외교사료집이 일부 발간되었지만, 제한된 범위에서 공식 외교문서를 편집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한 점에서 학계에서 자발적으로 외교문서집의 편찬을 진행하는 것은 대단히 뜻깊은 일이다. 다행인 것은 『근대한국외교문서』편찬사업에 국내 정치학계와 사학계의 저명한 연구자들이 편찬위원으로 참여함으로써 현재 우리 학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성과물을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근대한국외교문서』가 갖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기사본말체 구성: 기존의 한국 관련 외교문서집들이 외교문서를 날짜순으로 단순 나열한 데 반해, 『근대한국외교문서』는 주요 외교 사건을 중심으로 문서를 선별, 배열하는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형식을 취한다. 이러한 기사본말체적 편찬방식은 특정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고, 개별 외교문서가 가지는 정치적ㆍ외교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② 각국 미간 외교문서의 발굴: 외교문서는 일반적으로 외교 업무 담당자들의 토의 문서, 정부간 교섭 담당자 간의 교섭 과정 문서(documents pr?paratoires), 교섭 실무자가 본국 정부에 발송한 보고문, 국제 조약문 등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 의미를 보다 넓게 해석하면, 교섭 담당자들의 회고록, 수기, 메모, 일기 등의 사문서(私文書)까지도 외교문서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근대한국외교문서』는 외교문서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여 조선 문제와 관련한 각국의 정책결정자, 외교관들의 주요 사문서도 포함하고 있다.
특히 『근대한국외교문서』의 중요한 가치는 세계 각국 외교문서고에 산재되어 있는 조선 관련 미간 문서들을 발굴하고, 그것들을 영인한 것이 아니라 활자체로 보기 좋게 제공한다는 데 있다. 19세기 외교문서를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연구자가 해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영어의 경우, 타자기로 작성된 문서는 1890년대에 등장하며, 미국 외교문서 중에서 최초로 타자기로 작성된 문서는 1893년 4월 4일 보고문(Heard to Walter Q. Gresham)이다. 또 독일 문서의 경우는 우리가 익숙한 알파벳 서체가 아니라 프락투르(Fraktur) 서체로 작성되었으며,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는 독일어가 아니라 서체 자체에 대한 판독 훈련을 받아야 한다. 또 중국이나 일본의 문서는 초서(草書)로 작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문(吏文)과 소로분(候文)이라는 특수한 문법적 형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전문적인 외교사 연구자에게도 연구의 시간과 노력을 줄이는 데 『근대한국외교문서』는 매우 유용한 문서집이 된다.
③ 문서정보의 제공: 『근대한국외교문서』는 문서의 번역문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발/수신자, 발/수신일, 문서 제목 등의 정보를 간략하게 표기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19세기 미간 문서들은 이러한 기초 정보도 표기되지 않은 채 문서고에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러한 기본 사항을 확인하는 데만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근대한국외교문서』가 지난한 고증 작업을 통해 제공하는 개별 외교문서에 대한 기본 정보는 대단히 편리하다.
『근대한국외교문서』는 2015년 6월 현재 제너럴셔먼호 사건, 병인양요, 오페르트 도굴 사건, 신미양요,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영수호통상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에 관한 문서집으로 총 11책이 발간되었고, 2020년까지 총 30책의 외교문서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김종학,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