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녀의 일기
파리 출신의 우아한 의상과 도도한 자태로 주인 자리를 퇴짜 놓는 하녀인 그녀, 자존심 강하고 세련된 여인 ‘셀레스틴’은 시골에 있는 랑레르 부부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게 된다.
그녀는 타고난 미모를 이용해서 바깥 주인을 적당히 갖고 노는가 하면 여자들의 질투 어린 시선까지 은근히 즐기는 여유를 보여준다.
파리 출신이라고 시골 주인들을 내심 무시하는 오만함, 웬만한 일에 크게 놀라거나 흥분하지 않는 노련함까지 갖추었으니 분명 일반적인 하녀 캐릭터와는 한참 다른 인물이었다.
영화 <어느 하녀의 일기>는 이러한 색다른 성격의 하녀의 시점을 통해서 계급 간의 갈등과 인간의 위선을 말하고자 한 작품인데, 원작은 작가인 옥타브 미르보가 1900년에 쓴 동명의 소설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이야기를 이번에 세 번째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원작의 내용상으로는 2년 동안 12개의 일자리를 거친 하녀 ‘셀레스틴’을 중심으로 부르주아의 위선과 허위. 퇴폐와 타락,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풍속과 드레퓌스 사건으로 국론이 분열된 사회상까지 적나라하게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영화는 주요사건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저 어림짐작할 뿐으로, 아니 많은 부분을 생략한 듯하다.
영화 편집도 일반적이지 않아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 때 시간 순서에 대한 정보를 따로 주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 이야기를 재구성해야했고, 하녀가 시골로 오게 되기까지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다시 조합하고 그 인과관계에 따라 하녀의 캐릭터와 심리 상태를 파악해야 했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이러한 스타일은 부르주아의 추태와 위선을 고발하는 한편, 그들에게 매번 속아 넘어가는 하녀들의 순진함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영화의 내용과 잘 맞아떨어졌다.
영화 속 이야기는 옆집의 괴상한 퇴역 군인, 그 집의 안주인처럼 행동하는 나이 든 하녀 ‘로즈’를 통해 마을로 건너가고, ‘셀레스틴’의 기억을 통해 과거 ‘셀레스틴’이 거쳤던 다른 지역 여러 귀족 집안으로 넘어가기도 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20세기 초입 유럽 부르주아 계급의 위선적이고 기괴한 삶, 계급을 떠나 인간 누구나 지닌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이 그렸다.
사회구조의 견고한 틀 속에서 ‘셀레스틴’이 만나는 여러 주인들과 하녀들은 저마다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나아가지만, 그러한 노력은 당장의 욕구를 피상적으로 채울 뿐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과연 하녀 ‘셀레스틴’은 하녀의 직업을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의 마지막 선택은 어떤 결말이 날까?
‘셀레스틴’과 ‘조제프’ 사이에 존재하는 욕망과 열정은 그 깊어지는 과정에 대한 지나친 생략과 비약으로 설득력이 부족해서, 악마처럼 사로잡고 구속하는 ‘조제프’로 인해 행복하다는 ‘셀레스틴’의 목소리는 한없이 메마르고 담담했다. ‘조제프’의 악마 같은 매력을 공유할 수 없는 것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영화 <어느 하녀의 일기>는 별일이 없는 시골의 시간이 조용히 흘러가는 와중에 툭툭 튀어나오는 날선 유머가 선뜩하고, 특유의 스타일로 사회의 모순을 꼬집고는 있다고 하나 선명한 충격은 주지 못했고, 다소 심심하다는 인상을 떨쳐내지 못했다.
다만 의상만큼은 그 시대의 모습을 그려줘서 우아하고 아름답게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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