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공룡…세상에 없는 움직임 연기하는 모션디렉터 김흥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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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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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DMC첨단산업센터에서 김흥래 모션디렉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여보, 이번엔 사람이야?”

‘국내 1호’ 모션디렉터 김흥래(35)가 최근 ‘새 영화 작업에 들어가게 됐다’고 하자 그의 아내는 이같이 물었다. 모션디렉터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이 아닌 생물·로봇이나 상상 속 캐릭터, 일명 ‘크리처’를 카메라 앞으로 소환하는 사람이다. 시각특수효과(VFX), 흔히 말하는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을 위해 신체에 모션캡처 장비를 달고 연기를 펼친다. 할리우드 등에서는 액팅 디렉터라고 불리기도 한다. 국내에서 불모지나 다름없는 분야를 개척해가는 김 감독을 최근 서울 마포구 DMC첨단산업센터에서 만났다.

김 감독은 지난 1일 종영한 OCN드라마 <손 더 게스트> 속 부마자의 움직임을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빙의된 사람들의 에너지나 느낌은 일반인과 전혀 다르다”며 “시청자들에게 부마자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소리를 내는지 보편적으로 보여주면서 배우들이 가진 외모나 목소리, 잘하는 동작, 어느 수준까지 연기하는지 파악하고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배우들마다 악기적 특색을 주려고 했다”며 “모두 트럼펫이 아니라 기본 형태는 유지하되 누구는 피아노, 누구는 바이올린, 누구는 실로폰이면서 동시에 드럼 같은 면을 강조했다. 다양한 악기가 하나를 연주하는 일종의 ‘부마 오케스트라’로 생각하고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전체적인 부분뿐 아니라 배우의 대사에 맞춰 움직임 하나 하나를 세세하게 디자인했다. 그는 “어떤 대사에 어떤 포인트를 줘서 상대방, 주인공들을 당황시킬지를 고민했다”며 “어느 때 튀어 오르고 난리치는 게 나을지, 어떤 대사에서 째려보기만 해야 할지 그런 것들을 실제로 제가 시범을 보였다. 철저하게 계산된 준비 작업이 있었다”고 말했다.

드라마 <손 더 게스트>. OCN 제공


<손 더 게스트>의 가장 큰 악령 박일도의 목소리는 기계를 이용해 변형한 것이 아니라 그가 직접 낸 목소리였다. 김 감독은 인터뷰 중 실제 박일도 목소리를 재현했는데, 몸이 섬뜩했다. 그는 “극 중 박일도 목소리는 실제 제 목소리다. 다들 신기해 한다. 제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동물 연기를 했던 사람이라 일반인이 낼 수 없는 소리와 동작을 항상 연구한다. 매일 하는 일이 그런 것이라 그동안 쌓은 스킬(기술)이 다양하다”고 말했다. “원래 감독님이 저한테 박일도를 직접 연기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제가 박일도를 하면 극에 방해가 될 것 같아 다른 배우를 추천했다. 제가 하면 진짜 너무 마왕 같아서”. 김 감독은 187㎝ 큰 키에 어깨도 넓고, 이목구비도 뚜렷한 편이다.

<손 더 게스트> 부마자뿐 아니라 김 감독은 지난달 개봉한 영화 <창궐> 속 좀비, 야귀 콘셉트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이런 기괴한 움직임을 어떻게 만들어낼까. 좀비의 경우 마약중독자나 부마자들의 영상을 참고했지만, 주로 상상으로 만들어 낸다고 했다. 그는 “거울이나 카메라 앞에서 대본을 보며 밤새 ‘원맨쇼’를 하죠. 고민하다가 안 풀리면 영화를 보기도 하지만 주로 책을 많이 본다. <손 더 게스트> 때는 공포 소설을 많이 읽었다. ‘검은 물이 흐르는 강가에 음산하게 피어오르는 물안개, 그 사이 벌겋게 보이는 두 눈’. 이런 추상적인 문장은 상상력을 많이 자극한다. 위대한 예술가들의 그림이나 조각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는다. 옛날 중세시대 그려진 민화들을 보면 매우 그로테스크한데, 표정 하나만 봐도 다음 움직임이 상상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H. R. 기거처럼 저도 작품에 빠져 있다 보면 꿈에도 이미지들이 많이 나온다. 박일도와 박홍주가 만나는 장면은 대본을 받자마자 꿈을 꿨다”고 말했다. 영화 <에일리언>을 디자인한 H. R. 기거(1940~2014)는 악몽에서 본 것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다.

영화 <창궐>.NEW 제공


김 감독은 처음부터 모션디렉터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그의 꿈은 배우였다. 그러나 일반적인 연기보다 자신이 신체 연기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15살 때부터 지방 극단에서 연극을 했다. 17살 때 처음 주인공을 했다. 대사 없이 움직임으로만 하는 연극이었는데, 몸을 쓰는 게 좋았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이소룡이나 게임 속 캐릭터의 무술을 따라하는 걸 정말 좋아했다. (웃음) 연극영화과로 대학을 들어갔는데 선배 중에 유명 스타가 많았다. ‘스타는 따로 있구나’를 알게 됐다. 내가 특출나게 잘하는 것은 신체 연기였다. <반지의 제왕> 골룸을 보면서 저런 걸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신체 연기를 향상시키기 위해 무용 수업도 듣고, 3년가량 무술도 배웠다. 그는 “<노틀담의 꼽추>나 할리우드 괴물, 모션캡처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표현을 잘한다고 해서 이 길이 맞다고 느꼈다. <쥬라기 공원>이나 <아바타> 같은 CG 영화가 나오면 수백번씩 보며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이런 그에게 결정적 기회가 찾아왔고,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이 CG캐릭터인 영화 <미스터 고>(2013)의 고릴라 링링을 맡게 된 것이다. 그는 “김용화 감독님이 ‘확실히 준비돼 있는 사람은 다르다’고 얘기해주셨다”며 “정말 저한테는 인생을 걸었던 작품이었다. 고릴라가 되기 위해 산에 들어가 살기도 하고, 모든 노력을 다 했다”고 말했다.

영화 <미스터 고>. 쇼박스 제공


그러나 <미스터 고> 촬영은 쉽지 않았고, 관객 반응(누적 관객 133만명)도 기대와 너무 달랐다. 그는 “<미스터 고>는 맨땅에 헤딩하듯 만들었다. 김용화 감독님도, CG하는 분도 처음해보는 시도였다. ‘<미스터 고>가 없었으면 <신과 함께>도 없었다’는 김 감독님 말씀처럼 생각해보면 저게도 양분이 된 작품이었다. 2년 넘게 CG팀과 붙어 있으면서 그들이 뭘 원하고, 어떻게 영상화되는지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스터 고> 이후 몇년간 그는 시각특수효과 관련 회사에서 일했다. 그는 “사실 <미스터 고> 때 상처도 많이 받았다. 저는 주인공으로 계약서를 썼지만, 대역배우로 불렸다. 제가 인정을 못 받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유명하지 않아선가’ ‘내가 연기를 못해서 그런가’ 자책했다. 뭔가 안 되면 못 견디고 하나만 파야 하는 성격이다. 뭐가 문제였는지 알고 싶었다. CG 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해 회사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다시 한 번 그에게 큰 기회가 찾아 왔다. 다음달 25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2: 새로운 낙원>(점박이2)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점박이2>는 2012년 개봉해 한국 3D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 100만 관객을 기록한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3D>의 속편이다. 백악기 시대 마지막 제왕 타르보사우르스 점박이(목소리 박희순)가 동료와 함께 위험에 빠진 아들을 구하고, ‘최강의 적’ 돌연변이 공룡에 맞서는 어드벤처 애니메이션이다.

영화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2: 새로운 낙원>. NEW 제공


<점박이2>에서 그는 주인공 점박이를 비롯해 수십여종의 공룡 움직임을 직접 연기했다. 김 감독은 “<미스터 고>때와는 수백배 업그레이드된 제가 가진 노하우를 펼칠 수 있게 해준 이들이 (<점박이2>를 제작한) 이창훈 드림써치씨앤씨 대표님과 한상호 감독님이다. 넉넉하지 못한 예산이지만, 두 분이 ‘한국에 저 같은 사람이 있으니 한 번 해보자’고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제가 맡은 파트를 완성하는 데만 2년1개월이 걸렸다. 제 인생의 대표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크리처 관련 시각특수효과 기술 수준이 자본이 뒷받침되는 할리우드에 비해 20년 뒤처져 있지만,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고 했다. 김 감독은 “한국이나 아시아에서는 정서도 중요하게 여긴다”며 “크리처의 감정 표현 같은 드라마적인 요소에 중점을 두고 <점박이2>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중국 판타지 영화에서 괴물을 연기했고, 지난 8월 개봉한 영화 <신과 함께 - 인과 연>에서는 호랑이를 연기하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BAAM(Best Actors Animation Mechanic)’이라는 퍼포먼스팀을 꾸렸다. 동물·좀비·공룡·로봇·귀신·부마자 등 ‘특수 연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배우를 양성하기 위해서다.

그는 “앤디 서키스가 간 길을 따라 가고 싶다. 앤디 서키스는 <킹콩>(2005)을 찍은 뒤 모션캡처 스튜디오를 만들고, 동료들과 함께 ‘혹성탈출’ 시리즈를 찍었다. 지금은 그곳 배우들이 마블 스튜디오 영화의 모션캡처 연기를 하고 있다”며 “한국영화·드라마도 장르가 다양해지고 크리처물을 원하는 시기가 오고 있어 좋은 인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 골룸. ‘혹성탈출’ 시리즈 시저 등을 연기한 앤디 서키스는 특수 연기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다.

앤디 서키스. 넷플릭스 제공


최근에는 촬영이 끝난 영화 <미스터 주>에도 참여했다. <미스터 주>는 중국 특사 ‘판다’를 경호하다 당한 사고로 동물과 소통이 가능하게 된 국가정보국 ‘에이스’ 태주(이성민)와 열정만 충만한 국가정보국 ‘낙하산’ 만식(배정남)의 좌충우돌을 그린 영화다. 김 감독은 “애니멀 액팅 디렉터로 <미스터 주>에 나오는 모든 동물을 제가 연기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다음달 첫방송하는 tvN 토일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도 일부 장면 촬영을 마쳤고, 현재는 폐업 직전에 놓인 동물원을 살리기 위한 원장과 직원들의 기상천외한 프로젝트를 다루는 <해치지 않아>에서 퍼펫 연기를 담당하고 있다.

한 때 배우를 꿈꿨던 이로, 특수 연기가 아닌 일반 연기에 대한 미련은 없을까. 그는 “감독님들이 ‘출연해볼래?’라는 말도 많이 하신다. 저는 굳이 제 얼굴로 연기를 안 해도 특수 연기를 하며 배우적인 욕구는 다 해결하고 있다. 저는 영화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저는 방탄소년단을 보면서 많이 느낀다. 백인들이 동양인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예전 이소룡을 보는 것 같다. 불모지에서 세계 최고가 된 김연아도 존경한다. 그들 모두 자기 의지로 그런 성과를 만들어냈다”며 “할리우드에는 저 같은 사람이 많다. 저는 돌연변이처럼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 일을 시작했다. (국내에선 이 분야에) 저 혼자라는 것도 문제다. 누군가 판단도 해줘야 하는데 혼자다 하다보니 힘든 부분이 있다. 중국·일본만 해도 B급, C급 영화도 많다. 많이 하다 보면 전문성을 갖추고, 창의력도 생기는데 저는 중국이나 일본에 뒤쳐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흥래 모션디렉터 작업 모습. BAAM 블로그 캡처


김 감독은 좋은 크리처 영화가 나오려면 특수효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앤디 서키스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크리처 영화에는 스타보다 전문 기술인이 필요하다”며 “사실 <점박이2> <미스터 주>가 그랬다. ‘김흥래가 있으니 동물 연기 해결되겠다’고 생각들을 하셨다. 결국 크리처물도 많이 만들어야 실력이 쌓인다. 한국영화계는 아직 도전 중이다. 예산이 부족해도 머리만 잘 쓰면 충분히 잘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영화 크리처물에 대한 아쉬움도 밝혔다. 김 감독은 “한국영화에서 대다수 크리처는 인간의 어두운 단면을 상징하는 객체로 그려졌다”며 “크리처 영화에서는 주연 배우 못지 않게 크리처가 주인공이 돼야 한다. 에일리언을 본 관객들이 ‘저 여자 대단한데’가 아니라 ‘에일리언 정말 무서웠어’라는 반응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주로 한국영화에서는 크리처를 이겨내는 인간 승리 과정을 너무 풍부하게 보여주는 등 사람에 집중했다. 크리처를 연기하는 배우도 감독 지시만 기다릴 게 아니라 크리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자신을 비롯한 이름 없는 배우들이 대우받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한국영화계에서 제가 하는 이 분야는 영화를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었지만, 한편으로 누구나 해도 된다고 여겼다. 배우를 소모성으로 생각했던 분야”라며 “저도 얼굴 없는 배우지만 <창궐> 속의 야귀와 <손 더 게스트> 귀신, <점박이2> 공룡 등을 연기한 배우들이 얼마나 우수한 인재인지를 알리고 싶다. 이런 연기를 하는 사람도 배우라고, 크리처 연기도 분명 배우가 하는 일이고 전문성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무술팀 배우들처럼 최소한 특수연기 전문배우라는 타이틀로 배우들이 자긍심을 느끼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흥래 모션디렉터가 서울 마포구 DMC첨단산업센터에 위치한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2 : 새로운 낙원> 제작사 드림서치씨앤씨 사무실에서 공룡 퍼펫을 들고 웃어 보이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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