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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명품 해안, 만자모(万座毛)를 떠나니 다시 비가 흩뿌리기 시작한다. 빗방울은 다시 버스의 차창에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한다.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다. 오늘은 아무래도 해가 쨍한 날씨를 바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금 가고 있는 오카시고텐(御菓子御殿)은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낸 토산품, 오미야게(おみやげ)를 실내에 크게 모아놓은 곳이니 비가 조금 내려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봤다.

오카시고텐은 주변에서 금방 눈에 띄는 거대한 붉은색 기와 건물이다. 기와의 색이 붉고  정문 기와 아래에 누런 용 두 마리가 마주보고 있는 모습은 이 건물이 중국풍 건축물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오카시고텐 온나손점(恩納村店)은 옛 류큐왕국(琉球王國)의 왕성인 슈리성(首里城)을 이미지로 해서 지어진 궁전 모양의 건물이다. 슈리성이 중국 궁궐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 오카시고텐에는 이름 그대로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과자 브랜드들이 모두 모여있다. 이곳에는 자색 고구마·흑설탕·소금 등 오키나와의 특산품을 이용해 만들어진, 무려 300여 가지 종류의 오미야게들이 있다.

오키나와 오미야게의 총집결지이다.
▲ 오카시고텐 오키나와 오미야게의 총집결지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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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시고텐 입구를 들어서려다 보니 사람 키보다 더 큰 보라색의 베니이모타르트(紅芋タルト) 플라스틱 모형이 세워져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보라색 고구마 타르트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다. 오키나와에는 자색 고구마를 이용한 타르트와 디저트가 크게 인기인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베니이모타르트의 세계가 펼쳐진다.

오카시고텐 건물의 1층은 '오미야게의 나라'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우리는 1층을 나중에 둘러보기로 하고 2층의 식당 츄라우미 카페(美ら海カフェ)에서 우선 식사를 하기로 했다. 바다를 바라보는 예쁜 창가가 있는 식당이다. 오키나와의 특산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인데 오키나와 투어버스를 이용하는 여행자들이 단체로 식사하는 곳이기도 하다. 식당에서 바라다보는 바닷가는 어느 고급 호텔의 레스토랑보다도 훌륭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오키나와에서 점심을 먹는다는 것

오키나와 바다를 바라보며 오키나와 정식을 즐길 수 있다.
▲ 츄라우미 카페 오키나와 바다를 바라보며 오키나와 정식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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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좌석 의자에는 오늘 함께 나하버스 정기관광 코스를 이용하는 여행자들의 이름이 조그맣게 적혀있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내 성의 영문 철자가 잘못 적혀 있고 대문자와 소문자의 조합도 틀려 있다. 하지만 좌석마다 여행자들의 이름을 친절하게 붙여놓는 꼼꼼한 준비를 보니, 이곳이 일본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바다의 창가에 나란히 붙은 좌석에는 주로 혼자 여행하는 손님들에게 자리가 배정돼 있다.

옆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공중도덕의 나라 일본답게 여행자들의 식당 좌석도 사전에 미리 정해져 있었다. 홀로 여행하는 사람들과 나처럼 가족이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의 좌석을 구분해 두고, 편안하게 식사를 하도록 배려한 것. 바닷가를 바라보는 창가 자리도 여유가 있어서 창가 앞으로 이동하려다가 그만뒀다. 이곳은 일본이니 다른 일본 사람들같이 정해진 자리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오키나와 정식을 먹는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우리 가족 앞에 차려진 식사는 오키나와 특산물들로만 구성된 오키나와 전통 가정식이다. 식사는 붉은색과 검은색이 칠해진 큰 도시락 목함 안에 여섯 개의 자기 그릇이 있고, 깔끔한 반찬과 밥이 얌전하게 담겨 있다. 정식 속 그릇 안에는 오키나와 여행정보에서 봤던 다양한 오키나와 특산품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마치 포도 알같이 생겨서 '바다 포도'라고도 불리는 우미부도우(海ぶどう)라는 해초다. 모양이 캐비아(caviar) 같이 생겨서 '그린 캐비아(green caviar)'라고도 불린다. 우미부도우는 칼슘과 비타민 등이 풍부해 피로 회복에도 좋고, 다이어트식으로도 인기가 높아 일본 사람들이 오키나와에 여행을 오면 꼭 찾는 명물 건강식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나하(那覇)가 있는 오키나와 본섬에서도 우미부도우의 양식 재배가 성공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장수했던 이유, 여기 있었구나

바다의 포도라고 불리는 우미부도우는 입 속에서 톡톡 터진다.
▲ 우미부도우 바다의 포도라고 불리는 우미부도우는 입 속에서 톡톡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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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먹는 오키나와 정식에는 이 우미부도우가 오키나와 소바 위에 담겨 나왔다. 오키나와 소바도 베니이모(紅芋)라는 보라색 고구마로 만들어 소바 면발에 보라색이 감돌고 있다. 우미부도우는 생으로 간장이나 식초로 양념하여 양념이 배면 회와 함께 먹기도 하고, 우미부도우 단독으로 먹기도 하는데, 지금 우리가 먹는 '우미부도우소바(海ぶどうそば)'는 우미부도우에 양념을 하지 않고 오키나와 소바 위에 우미부도우를 고명으로 얹은 것이다. 

우미부도우는 조미액에 오래 담궈 두기도 어렵고, 냉장고에 보관하기도 힘들어서 오래 보관하기 어렵단다. 보관 기간이 짧다보니 맛이 싱싱하다. 우미부도우를 입안에 넣고 조심스럽게 먹어보니, 작고 탱클탱글한 알맹이가 입안에서 톡톡 씹힌다.

그동안 오키나와 정보를 접할 때마다 읽었던 우미부도우에 대한 맛의 평가보다 훨씬 맛이 좋다. 오키나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이 특산 별미는 아열대 바다의 싱싱한 해초류를 날 것으로 먹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처음 느껴보는 이 맛은 뭐라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입안에 짭짤한 바닷물을 희석한 물이 잔잔하게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다. 우미부도우 알갱이가 톡톡 터질 때마다 바다 내음이 입속에 슬며시 퍼진다. 그 바다 내음은 깔끔하면서도 오키나와 같은 풍미가 있다.

오이과의 채소인 고야(ゴーヤ)는 전체적인 모양이 오이같이 생겼지만 표면은 마치 초록색 수세미처럼 울퉁불퉁하다. 고야는 생긴 모습이 상당히 특이하다. 오키나와를 여행하다 보면 고야 캐릭터를 종종 만날 수 있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가장 잘 먹는 채소 중의 하나가 이 고야인데, 과거에 오키나와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았던 이유 중의 하나가 고야 같이 쓴 채소를 먹음으로써 비타민C를 풍부하게 섭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오키나와는 날씨가 더운 아열대 지역이다 보니 땀으로 인해 발산되는 염분도 고야를 통해 보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대도시의 오염에서도 벗어나 있었지만, 채식 위주로 식단을 꾸렸기에 장수하는 이가 많았던 것이다.

고야의 쓴맛을 달래기 위해 두부 등 갖가지 음식이 섞인다.
▲ 고야 찬푸르 고야의 쓴맛을 달래기 위해 두부 등 갖가지 음식이 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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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를 나물같이 무친 고야찬푸르(ゴーヤチャンプルー)가 눈에 들어온다. '찬푸르'는 이 음식 저 음식을 섞어서 조리한 음식을 뜻한다. 이 음식은 고야의 맛이 독특하고 쓰기 때문에 두부나 햄 등을 함께 넣고 볶는다고 한다. 이 음식을 보니 오키나와 고유의 문화 위에 중국·일본·미국 등 외국문화를 수용한 오키나와의 역사가 담겨 있는 듯하다. 오키나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이 음식의 맛은 약간 짜고 쌉싸름하다. 예상대로 살짝 쓴 맛이 나지만 다른 맛들이 함께 섞여 있어서 아삭아삭한 맛이 더 강하다. 자꾸 먹다보면 고야의 맛에 중독될 수도 있을 듯하다.

기름기를 뺀 돼지고기가 달콤하게 녹는다.
▲ 라후텐 기름기를 뺀 돼지고기가 달콤하게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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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후텐은 돼지고기로 만든 오키나와식 동파육(東坡肉)인데 동파육보다는 돼지고기의 기름기가 훨씬 적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데, 이렇게 기름기를 뺀 돼지고기를 먹음으로써 지방은 멀리하고 단백질을 섭취했다. 그래서 이 라후텐도 과거 이름을 날리던 오키나와 장수 비결 중의 하나였다. 맛은 우리나라 돼지고기 장조림과도 비슷한데 중국 항주 대표음식인 동파육의 맛에 더 가깝다. 라후텐은 짜지 않고 싱거우면서도 부드럽게 입안에서 녹는다.

 땅콩으로 만들어진 두부는 치즈같이 끈적끈적하다.
▲ 지마미도우후 땅콩으로 만들어진 두부는 치즈같이 끈적끈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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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음식 중에서 음식의 외양과 식감이 가장 다른 음식은 오키나와 두부인 땅콩두부, 지마미 도우후(ジマミ豆腐)다. 나는 처음에 이게 두부인지도 모르고 무슨 해초인 줄 알았다. 두부를 한 숟가락 떴다가 두부가 마치 치즈처럼 늘어지고 끈적끈적해 깜짝 놀랐다.

생긴 모습은 우리나라의 일반 두부와 전혀 다를 게 없는데 맛은 완전히 독특하다. 순두부보다 식감이 쫀득쫀득하면서, 땅콩이 들어가서 고소한 맛이 난다. 한국에서 먹던 두부의 맛과는 완전히 다른 맛이다. 오키나와 특산 두부여서 그런지 약간 바다 내음도 난다. 한·중·일에는 다양한 두부 음식이 많은데 오늘 또 전혀 새로운 두부음식을 만나게 됐다.

오키나와의 명물, 자색 고구마 타르트

종업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미야게를 마음껏 시식할 수 있다.
▲ 오미야게 시식 종업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미야게를 마음껏 시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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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오카시고텐의 1층으로 내려가 봤다. 오카시고텐 1층에는 일본인들이 지인들에게 작은 성의로서 선물한다는 오미야게(お土産)가 총집결해 있다. 이곳이 오키나와이므로 오키나와에서 생산되는 오미야게들은 모두 모여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장이 크다. 오키나와의 특산물과 열대 과일들을 전통과자로 만들어 마치 문화상품처럼 팔고 있었다. 게다가 다양한 오미야게들을 전혀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직접 시식할 수도 있다. 마음에 들면 사라는 식이니 과자 맛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곳 오카시고텐, 아니 오키나와 오미야게를 평정한 강자는 바로 베니이모타르트(紅いもタルト)다. 오키나와에 여행 온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사간다는 베니이모타르트는 오키나와 특산품인 자색고구마로 만든 과자다. 오키나와에는 이 보라색 고구마를 이용한 다양한 상품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이름을 떨치고 있는 게 바로 이 타르트다.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국제적인 식품 품질 품평 조직인 몬드 셀렉션(monde selection)에서 2008년~2009년에 2년 연속 금상을 수상한 명물과자이다.

베니이모 타르트 생산공정이 공개되어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다.
▲ 베니이모 타르트 생산공정 베니이모 타르트 생산공정이 공개되어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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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시고텐 1층 입구에서부터 베니이모타르트를 만드는 제조시설이 전면 개방돼 있다. 나는 천천히 베니이모타르트의 생산공정을 직접 지켜봤다. 개방된 유리창 사이로 베니이모타르트가 움직이면서 완성되고 하나하나 포장되고 있었다. 잘 구워진 베니이모타르트가 줄지어 공정별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꽤나 흥미롭다. 모두 기계화되고 자동화돼 있지만, 과자들이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는 종업원들이 최종 체크하고 있다. 이 과자회사의 마케팅 전략이겠지만, 과자 제조기계가 깨끗하고 위생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자색 고구마로 만든 오키나와 특산의 오미야게이다.
▲ 베니이모 타르트 자색 고구마로 만든 오키나와 특산의 오미야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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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색 고구마 타르트를 한 입 베어 먹어봤다. 자색 고구마만이 가진 특유의 식감을 살려서인지 과자 안의 고구마 무스는 고구마 특유의 팍팍한 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다른 일반과자에서는 먹어보지 못한, 오키나와 특유의 고구마 맛이다. 예상 외로 맛은 달지 않았다. 부드럽고 맛있다는 생각은 드는데 무언가 맛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확 당기는 맛은 없지만 달지 않은 웰빙 오미야게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것 같다. 아무튼 지역 특산물을 여행객 상품으로 만드는 데에는 일본을 따라올 나라가 없을 것 같다. 과자에 문외한인 나도 이 오키나와의 특산물을 사야 할지 헷갈리게 만들고, 결국 지갑을 열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직 버스가 출발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자색 고구마 플라스틱 모형과 사진을 찍다 보니 바다와 연결된 계단이 보였다. 나는 아내와 오카시고텐 건물의 계단을 내려가 바닷물이 몰려드는 해변으로 향했다. 하늘이 거의 개여서 바닷가가 더욱 말끔해 보였다. 상가와 식당 앞에 있는 바다이지만 마치 혼자만의 별장 앞에 만들어진 훌륭한 바닷가 같다.

여행자들이 맑은 오키나와 바닷가를 즐기고 있다.
▲ 오키나와 해변 여행자들이 맑은 오키나와 바닷가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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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다는 오키나와의 어느 바다보다도 예뻤다. 예상치 못한 멋진 여행지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다. 날은 흐리지만 바닷물은 깨끗하고 코발트 블루 빛 바다색은 무척 사랑스럽다. 한적한 바닷가에 여행객 몇 명만이 내려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산책하는 젊은 엄마는 아이와 잠깐 떨어져 한가함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아내와 손을 잡고 바닷가를 산책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태그:#일본여행, #오키나와, #오카시고텐, #베니이모타르트, #우미부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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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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