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네 한솥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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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네 한솥밥

  • 저자
    백석
  • 그림
    유애로
  • 출판
    보림
  • 발행
    2010.06.25.
책 소개
서로 돕고 사는 동물들의 모습을 한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기는 시어와 운율에 담은 백석의 동화시. 가난하나 마음 착한 개구리는 형네집에 쌀을 얻으러 간다. 바쁘게 가는 도중에도 발다친 소시랑게 고쳐 주고 길 잃은 방아깨비 길 가르켜 주고 구멍에 빠진 쇠똥구리 끌어내 주고 풀에 걸린 하늘소 놓아주고 물에 빠진 개똥벌레 건져내 주는데...

책 정보

책 정보

  • 카테고리
    어린이
  • 쪽수/무게/크기
    50279g152*223*15mm
  • ISBN
    9788943304508

책 소개

서로 돕고 사는 동물들의 모습을 한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기는 시어와 운율에 담은 백석의 동화시. 가난하나 마음 착한 개구리는 형네집에 쌀을 얻으러 간다. 바쁘게 가는 도중에도 발다친 소시랑게 고쳐 주고 길 잃은 방아깨비 길 가르켜 주고 구멍에 빠진 쇠똥구리 끌어내 주고 풀에 걸린 하늘소 놓아주고 물에 빠진 개똥벌레 건져내 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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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특징
■ 한국적 서정성이 가득한 백석의 동화시
백석은 우리 민족의 삶과 원형에 대한 시적 탐구와 모국어에 대한 애정이 돋보이는 시인. 그의 작품 속에는 사람과 사물, 풍속과 자연이 하나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80년대 후반 월북 작가들의 작품이 출간되며 백석의 시 세계가 다시금 조명을 받기 시작하였고, 이제 우리 어린이들도 백석의 작품을 보게 되었다.

'개구리네 한솥밥'은 1957년에 북한에서 출간된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에 수록된 작품. 백석은 어린이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어린이에게는 산문보다 시가 더 적당하다고 생각하여 운율이 있는 '시'의 형식에 '서사(이야기)'를 담은 동화시를 많이 썼다.

'개구리네 한솥밥'은 백석이 쓴 동화시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고 우리 민족의 공동체적 삶이 잘 드러난 작품. 어린이들에게 알맞은 간결하고 리듬감 있는 문장의 반복, 독특한 의성어와 의태어 등 다양하고 감각적인 우리말을 풍부하게 구사하여 작은 동물과 곤충 들이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 전래 동요에서 빌려온 놀이적 상상력이 토대
게야 게야 밥지어라
나그네 왔다 밥지어라

아침먹이 찧어라
저녁먹이 찧어라
우리댁 아씨 흰떡방아
네가 대신 찧어라
건너집 처녀 보리방아
네가 대신 찧어라

민요, 판소리, 사설시조 등 옛 노래에서 가락과 시어를 빌려 향토성이 짙은 서정시를 썼던 백석은 아이들의 전래놀이와 전래동요 속 상상력을 작품 속에 옮겨왔다. 전래동요는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놀이 노래. 자연 속에서 놀잇감을 찾던 시절, 아이들은 방아깨비 다리를 잡아 흔들며 방아를 찧으라고 노래를 부르며 놀았고, 민물 게나 가재가 내뿜는 거품을 보며 밥 짓는 거품을 연상하였다. 이 작품 속 상상력의 기반은 이런 전래 동요 속의 상상력, 우리 전통 문화와 민속에 놓여 있다.

■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 독특한 의성어와 의태어 사용 4·4조의 가락, 곤경에 처한 동물과 도움을 주는 동물의 등장에서 보이는 반복적 형식이 전체적인 짜임과 리듬감을 살린다. 또한, 동물들의 신체 특성에 꼭 맞아 떨어지는 위기 상황과 대처 방법의 설정이 탁월하다.

디퍽디퍽, 뿌구국, 덥적덥적, 찌꿍쩌꿍 등 백석 특유의 맛깔스런 흉내말(의성어 의태어)를 읽는 재미도 크다. 소리 내어 큰 소리로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개성적인 캐릭터와 우리 자연에서 자라는 들꽃과 풀 묘사 베스트셀러 그림책 《갯벌이 좋아요》, 《반짝반짝 반디 각시》등을 통해 이 땅에 사는 동식물을 정감 있게 그려낸 유애로가 착한 개구리와 소시랑게, 방아깨비, 하늘소, 쇠똥구리 등을 개성적으로 표현했다. 한복을 응용한 옷차림이 장난스러우면서도 이색적이다. 《반짝반짝 반디각시》의 주인공 반디각시(개똥벌레)와 《쇠똥구리구리》의 주인공 쇠똥구리 아줌마를 등장시킨 건 이전 작품을 사랑해준 독자들에게 보내는 서비스.

시간의 변화를 배경 색채의 변화를 통해 재치 있게 나타내었고, 들판과 논두렁, 작은 못 등에는 달개비, 질경이, 메꽃, 냉이 등 우리 산과 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들꽃과 풀 들을 그려 한국적 서정성을 한층 더 살려준다.

내용
마음 착한 개구리가 벌 건너 형에게 쌀을 얻으러 길을 떠난다. 가는 길에 개구리는 여러 동물을 만나는데, 발을 다쳐 우는 소시랑게 발을 고쳐 주고, 길 잃은 방아깨비 길 찾아 주고, 구멍에 빠진 쇠똥구리 끌어내 주고, 풀에 걸린 하늘소 풀어 주고, 물에 빠진 개똥벌레 건져 주고… 그러다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형네 집에 겨우 도착해 쌀 한 말을 얻어 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미 해는 져서 캄캄하고 길은 멀고 짐은 무겁고 장애물도 많은데…. 낮에 도와주었던 개똥벌레, 하늘소, 쇠똥구리, 방아깨비, 소시랑게가 하나씩 나타나 개구리를 도와주고 다같이 밥 한 솥을 지어 즐겁게 나누어 먹는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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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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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글작가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전 천재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다.오산소학교, 오산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오산고보 졸업 후,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춘해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어사범학과에 입학하였다. 김소월을 동경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으며,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1934년에 귀국하여 8·15 광복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영어교사로, [여성사], [왕문사] 등에서 근무하며 시작 활동을 했다.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시작 활동 외에도 많은 외서들을 번역했다고 전해진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였으며 같은 해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1939년 [여성]지 편집 주간 일을 사직하고 고향인 평북 지역을 여행하였다. 1940년 만주의 신징(지금의 장춘)으로 가서 3월부터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씨개명의 압박이 계속되자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1942년 만주의 안둥 세관에서 일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다. 1946년 북조선예술총동맹이 결성된 후 1947년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 번역에 매진했다. 1949년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을 맡으며 안정적인 창작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간행하였으나 1958년 ‘붉은 편지 사건’ 이후 격렬한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대부분의 문학적 활동을 중단했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국영협동조합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으면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고 농촌 체험을 담은 시들을 발표했으나, 1962년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 활동을 접었다. 1996년까지 삼수군 관평리에서 농사를 짓다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드러났지만 정확한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백석은 일제 강점기에도 모국어를 지키고자 하였다.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이 있다. 북한에서 나즘 히크메트의 시 외에도 푸슈킨, 레르몬토프, 이사콥스키, 니콜라이 티호노프, 드미트리 굴리아 등의 시를 옮겼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수록된 시 「통영」, 「적막강산」, 「북방」 등 백석의 대표작들은 실향 의식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인 언어로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한국의 대표 모더니즘 시인으로 평가받는 백석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유애로
그림작가
유애로는 자연과 놀이를 모티브로 작품 활동을 전개하는 그림 작가이다. 그녀는 출판미술협회 이사로서 여러 행사를 주최하면서 아이들이 캐릭터 상품처럼 구체적이고 아기자기하면서도 상상력의 여지를 남기는 주인공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녀의 주인공들은 한결같다. 그녀에게 어린이 문화대상을 안긴 작품 『갯벌이 좋아요』에서부터 『쇠똥 구리구리』,『반짝반짝 반디각시』는 모두 자연과 곤충들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유애로 작가는 자연을 통해 아이들이 상상력을 키우며 자라나기를 바란다. 또한 그녀는 최근 육아기를 편찬하여 지켜보되 참견하지 않는 그녀의 육아원칙으로 아이들을 기르는 법을 적어냈다. 도심 속에서 나물을 캐고 방아깨비를 쫓는 그녀의 동화처럼 자연과 가깝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통해 『눈 이렇게 뜨지 않을께요』는 그녀의 두 딸, 단아와 소담이의 호기심과 재능을 그대로 담아냈을 뿐 아니라 그 재능을 키워내는 그림작가 유애로의 손길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앞으로 선생님의 꿈은 풀냄새 가득한 곳에 야생화와 예쁜 나무들과 곤충들과 이야기하며 지낼 수 있는 뜨락에 조그만 집을 짓고 좋은 그림책을 만들어 더 많은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는 거랍니다.『으악,도깨비다!』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100권의 한국의 그림책전시와 일본 미야자키현 키조오 그림책 마을, 원화전시에 초대되었다. 그림책과 연계된 조형놀이와 창의력 키우기 프로그램 기획과 어린이 그림책 워크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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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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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받았습니다 마음에들어요

    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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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구석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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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학교에서 책을 읽고 활동을 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했어요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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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구석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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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송이 삐르고 꼼꼼하게 포장해서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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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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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과제물로 구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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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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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른배송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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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글작가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전 천재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다.오산소학교, 오산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오산고보 졸업 후,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춘해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어사범학과에 입학하였다. 김소월을 동경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으며,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1934년에 귀국하여 8·15 광복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영어교사로, [여성사], [왕문사] 등에서 근무하며 시작 활동을 했다.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시작 활동 외에도 많은 외서들을 번역했다고 전해진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였으며 같은 해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1939년 [여성]지 편집 주간 일을 사직하고 고향인 평북 지역을 여행하였다. 1940년 만주의 신징(지금의 장춘)으로 가서 3월부터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씨개명의 압박이 계속되자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1942년 만주의 안둥 세관에서 일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다. 1946년 북조선예술총동맹이 결성된 후 1947년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 번역에 매진했다. 1949년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을 맡으며 안정적인 창작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간행하였으나 1958년 ‘붉은 편지 사건’ 이후 격렬한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대부분의 문학적 활동을 중단했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국영협동조합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으면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고 농촌 체험을 담은 시들을 발표했으나, 1962년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 활동을 접었다. 1996년까지 삼수군 관평리에서 농사를 짓다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드러났지만 정확한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백석은 일제 강점기에도 모국어를 지키고자 하였다.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이 있다. 북한에서 나즘 히크메트의 시 외에도 푸슈킨, 레르몬토프, 이사콥스키, 니콜라이 티호노프, 드미트리 굴리아 등의 시를 옮겼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수록된 시 「통영」, 「적막강산」, 「북방」 등 백석의 대표작들은 실향 의식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인 언어로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한국의 대표 모더니즘 시인으로 평가받는 백석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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