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대숲 지나 미소 머무는 사찰로…

고창읍성 맹종죽림의 대나무는 간혹 소나무 같이 자란다. 10m가 훌쩍 넘는 대나무와 소나무를 담아내려면 연속촬영이 필요하다. 덕분에 뒤로 젖히기 운동을 반복했다.

단풍마저 져버린 이맘때 산과 들은 삭막하다. 이는 사진으로 접근하기에도 좋은 피사체가 드물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시기에도 가도 좋을 것 같은 장소들을 떠올려본다. 상록수인 소나무 아니면 대나무…. 머릿속 기억의 조각들이 떠돈다. 언젠가 들었던 고창읍성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대나무와 소나무가 모두 있고 대숲 조성에는 불교와 인연이 닿아있다. 지난 11월26일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모량부리’에서 유래한 모양성 

지난 11월26일 방문한 미소사. 쌀쌀한 날씨에도 법당 옆 형형색색의 꽃들이 맞이해준다.

고창읍성은 모양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백제시대 고창 지명이었던 ‘모량부리’에서 유래한다. 막상 고창읍성 앞에서니 규모는 생각보다 단출하다. 둘레 1684m, 높이 4~6m이다. 큰 전투를 치르기에는 성벽의 높이가 낮다. 하지만 동·서·북의 3문과 옹성 등 읍성으로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어 1965년 일찍이 사적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고창읍성 축성은 조선 세종32년 전라우도인 고창, 무장, 흥덕, 군산, 익산, 김제, 정읍, 고부, 태인, 영광, 장성, 진원, 함평 그리고 전라좌도인 진안, 임실, 순창, 담양, 능성 여기에 당시 전라우도에 포함되었던 제주까지 19개 군현이 참여하여 3년 동안 이뤄졌다. 축성당시 각 고을별로 참여했던 사람들은 그들이 쌓은 구간에 고을이름을 새겨두어 호남지역의 대역사였음을 알리고 있다.

멀리서 바라본 산비탈에 자리한 미소사. 왼쪽부터 요사채, 극락전, 산신각.

이제 성 내부를 둘러볼 차례. 이번 기행의 단초가 된 맹종죽림을 향한다. ‘맹종죽’은 중국이 원산지인 관상용 대나무이다. 정문의 역할을 하는 북문에서 성곽 길을 따라 서문에 도착하면 대숲이 보이기 시작한다. 소나무들은 폭 넓게 자리하고 있지만 대나무는 서쪽 일부구간에 한정되어 조밀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유는 이렇다. <디지털고창문화대전>에 따르면 문수사 묵암화상 문중의 청월 유영하 선사가 1935년 대중이 많이 모이는 고창읍성 안에 포교당인 보안사를 세우고 주변에 대숲을 조성했다. 창건 당시 포교당의 규모는 법당 3칸과 요사채 2칸. 청월 선사 입적이후 1973년 ‘독립가옥 철폐령’에 묶여 헐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법당인 극락전은 깔끔한 나무데크로 둘러져 있다.

대숲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 안에는 ‘맹종죽림 사적’ 표시석만 덩그러니 있고 작은 전각 하나 크기의 낮은 석축만 남아있다. 다시 주변을 살펴봐도 보안사 전각의 위치조차 표시되어 있지 않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촬영을 위해 대나무 숲 경계를 둘러봤다.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위협적으로 포위당한 것이 아닌 어우러져 있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간혹 소나무가 대나무 숲 사이에 들어와 함께 산다. 이 경우 주인인 대나무는 언제나 꼿꼿하지만 자리를 옮겨온 소나무는 넉살좋게 대나무를 휘돌며 함께 한다. 이 모습을 사진으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멀리 물러나서 찍으면 한 장에 담기지만 물러선 만큼 밋밋해지면서 피사체의 입체감이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대나무의 왜곡을 감수하고 가까이에 붙어 전방을 바라보며 시작해서 하늘방향으로 카메라를 서서히 올려 연속 촬영해 여러 장을 잇는 방식이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뒤로 젖히기 운동이다. 

엉성한 운동을 마치고 주변사찰로 발길을 옮겼다. 고창에는 쟁쟁한 사찰들이 있다. 교구본사인 선운사를 비롯하여 애기단풍으로 유명한 문수사까지. 하지만 이번 여정은 미소사다. 오로지 인터넷검색에 의존한 결정이다. 암자 정도로 조그마하다. 찬란한 역사와 빼어난 성보문화재는 없다. 전각으로는 법당인 극락전과 산신각, 종각 그리고 요사채가 전부다. 하지만 다녀온 이들의 블로그에는 소소한 행복이 있다고 했다. 

성곽길을 둘러보는 아버지와 아들.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불과하다. 고창의 진산인 방장산(높이 600m) 기슭 벼랑 위에 세워져 있다. 400m 높이의 가파른 벼랑에 위치해 정오 이후에는 법당 전체가 햇빛이 든다. 걸어서 오르면 한참일수 있지만 의외로 차량으로 진입하는 도로가 잘 갖춰져 있다. 사찰입구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한정돼 있다. 그런데 다른 차량의 모습은 없다. 절집을 10년 넘게 다니다 보니 짚이는 게 있다. 지금 사찰에 사람이 없을 수도 있게구나! 블로그에는 사찰에 들린 누구에게나 붙임성 있게 말을 건네주는 친절한 스님들이 있다는데….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러 법당으로 향했다. 오르는 길에 이름 모를 들꽃들이 맞이해준다. 감나무에는 까치밥이 아주 넉넉하게 매달려 있다. 법당 옆에도 형형색색의 꽃들이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다. 법당은 나무데크를 두르고 있는데 어찌나 깔끔하게 청소가 되어있는지. 요사채로 내려가는 길에는 모과열매도 가득 매달려있다. 이 모두는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고창읍성 서문. 성문과 옹성 등이 온전히 보전되어 있다.

 어느 계절에 와도 미소가 저절로…

9월에 들렸다는 이는 미소사로 오르는 길에는 꽃무릇이 피어있고 경내에서 구절초도 보았다고 한다. 7월에 들린 이는 원추리와 벌개미취 그리고 배롱꽃을 보았다고 한다. 4월에 들린 이의 글에는 자목련, 불두화, 산철쭉, 야생화인 얼레지. 3월에 들린 이는 목련꽃과 동강할미꽃 그리고 홍매화와 산수유꽃을.

어느 계절에 와도 이곳을 경험한 사람들은 미소사를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펴진다고 했다. 미소사에 오기를 참 잘했다.

[불교신문3446호/2018년12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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