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

곡성 | 글·사진 이윤정 기자

강바람 가르는 기적소리, 과거와 마주치다

길은 강을 따라 난다. 아니, 강을 따라 달릴 때 가장 아름답다. 전남 곡성을 지나는 17번 국도는 섬진강의 강 허리를 한 움큼 베어 안는다. 유하면서 안온하게 흐르는 섬진강처럼 길은 조용하지만 정확하게 강 모양을 빼닮았다. 이 길 위로 철로가 포개진다. 마치 철로도 강을 따라 달릴 때 가장 아름답다는 듯 기찻길은 직선을 포기하고 곡선을 택했다. 모두가 빨리를 외칠 때 느릿느릿 한숨 쉬고 돌아가는 곡성여행이 강따라 길따라 철로따라 펼쳐진다.

열차는 우리에게 과거일까 현재일까 미래일까. 그 해답을 찾는 여정으로 전남 곡성을 택했다. 전남 곡성역에서 약 1㎞ 떨어진 곳에 옛 곡성역이 있다. 순서를 따지자면 옛 곡성역이 먼저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세워졌다. 옛 곡성역이 있는 곡성읍 오곡면 오지리 주민은 “전라도의 곡식을 실어가기 위해 생긴 역”이라 했다. 혹자는 “섬진강의 고운 모래를 실어가던 역”이라 했다. 역 앞에는 일본인이 쓰던 양곡창고가 여전히 남아있다. 한때 ‘곡식 곡(穀)’자를 써 곡성을 표기했다니 땅의 비옥함이 역이 생긴 이유였으리라.

1930년대 지어진 곡성역에 증기기관차가 하얀 수증기를 내뿜으며 들어서고 있다.

1930년대 지어진 곡성역에 증기기관차가 하얀 수증기를 내뿜으며 들어서고 있다.

역은 1999년 기능을 잃었다. 섬진강을 따라 S라인으로 흐르는 철로가 문제였다. 속도를 낼 수 없는 곡선 철로 대신 직선 전라선이 생겼다. 60여년 자리를 지키던 역과 함께 폐선은 흉물로 남을 위기에 처했다. 곡성군은 2005년 옛 곡성역과 13.2㎞에 달하는 철로를 모두 매입했다.

과거로 묻힐 뻔한 옛 곡성역은 재해석되기 시작했다. 증기기관차와 레일바이크가 폐선을 오고가고 역 주변에는 1950년대를 재현한 영화세트장이 들어섰다. 옛 곡성역은 역사적 가치가 인정돼 2004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맞배지붕을 멋스럽게 드러낸 역사와 수하물창고는 영화촬영 때문에 조금 손을 본 것 외에는 옛 모습 그대로다.

옛 곡성역에 서 있노라면 ‘뚜우뚜우’ 기적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온다. 1967년까지 70여년간 우리 땅을 누볐던 증기기관차 소리다. 이어 시커먼 옷을 입은 증기기관차가 곡성역에 몸을 드러낸다. 일반 디젤기관차를 개조해 옛 증기기관차를 재현한 것이지만 새하얀 수증기까지 내뿜으며 숨고르기를 한다.

곡성역에서 가정역까지 약 10㎞의 거리. 열차는 고작해야 시속 25~30㎞ 속력을 낸다. 그렇다고 느리다 무시할 수 없다. 이 길은 느리게 지날수록 매력적이기 때문. 길이가 무려 212.3㎞에 달하는 섬진강이 ‘강다운 모양새’를 갖추는 곳이 곡성에서부터다. 끊임없이 덜컹대며 열차의 리듬과 유유자적 강의 흐름이 이곳만큼 잘 어울리는 곳도 없을 터. 유홍준 교수는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길 중 하나로 꼽았다.

섬진강 기차마을 레일바이크. 섬진강과 17번 국도, 철로가 나란히 달린다. /이윤정 기자

섬진강 기차마을 레일바이크. 섬진강과 17번 국도, 철로가 나란히 달린다. /이윤정 기자

곡성에서 출발해 약 25분을 달린 열차는 가정역에 멈춘다. 가정역 근처에는 기차펜션, 곡성섬진강천문대, 곡성청소년야영장 등이 있다. 25분을 쉬고 되돌아가는 열차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면 가정역 인근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특히 이 일대를 따라 조성된 자전거길은 매혹적이다. 가정역에서 섬진강 건너편 두계마을과 가정마을 앞으로 자전거길이 나있다. 섬진강과 17번 국도, 철로를 나란히 왼쪽에 두고 페달을 밟으면 들꽃 향기가 강바람에 실려 온다. 자전거는 가정역 인근 매점과 청소년야영장에서 빌릴 수 있다.

침곡~가정역까지는 레일바이크도 운행 중이다. 증기기관차가 지나간 길을 따라 5.1㎞ 철로 위로 페달을 구른다. 속도는 더 느려지고 섬진강의 풍경은 그만큼 더 많이 담긴다. 4~5월 철쭉이 필 때가 가장 예쁘다고들 하지만 장마철 우비를 입고 타는 레일바이크 체험객도 많다.

섬진강 기차마을 영화세트장. 1950년대를 재현해놓았다./ 이윤정 기자

섬진강 기차마을 영화세트장. 1950년대를 재현해놓았다./ 이윤정 기자

섬진강 기차마을에 돌아오면 시간여행이 계속된다. 50년대 풍광을 재현해놓은 영화 세트장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관, 전당포, 국밥집을 비롯해 1968년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의 간판이 걸려있는 영화관도 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도 여기서 촬영했다.최근에는 곡성 5일장도 명물이 됐다. 끝자리 3, 8일에 서는 전통장에서는 할머니들이 보따리를 들고 나와 야채·나물 등을 내놓는다. 섬진강 기차마을을 구경왔다가 전통장까지 담아간다. 과거로 묻혔던 ‘열차’를 되살리자 곡성의 ‘미래’가 밝아진 셈. 느림의 미학이 빠름의 경제학을 앞서갈 수 있다는 것을 섬진강 기차마을이 보여주고 있다.

■ 기차 펜션·한옥·야영장 잠자리도 풍족

곡성 심청이야기마을 한옥펜션.

곡성 심청이야기마을 한옥펜션.

곡성 섬진강기차마을에 들른다면 하룻밤을 묵어갈 것을 권한다. 쉽게 체험할 수 없는 잠자리가 인근에 포진해 있기 때문. 먼저 가정역의 기차 펜션. 실제 기차를 펜션으로 개조했는데 내부는 일반 숙소처럼 깔끔하고 쾌적하다.

가정역 맞은편에는 곡성청소년야영장이 있다. 텐트를 빌려서 야영하는데 1동당 2만원이다. 오토캠핑객이 섬진강 바로 옆에 텐트를 칠 수 있는 잔디밭도 있다. 텐트를 가져오면 1동당 1만원.

심청의 효를 떠올리며 한옥을 체험하는 ‘심청 이야기마을’도 유명하다. 옛날 곡성까지 중국의 무역선이 왕래했는데 눈 먼 아버지를 둔 곡성의 효녀가 절에 시주됐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섬진강 뱃길을 따라 중국 양쯔강 어귀의 보타섬으로 건너가 귀인이 됐고 그 공덕으로 아버지가 눈을 떴다고 한다. 어릴 때 듣던 효녀 심청전과 흡사하다.

곡성군이 심청의 고향으로 떠오르면서 조성된 전통테마마을에서는 한옥 체험이 가능하다.

겉모습은 으리으리한 한옥이지만 내부는 에어컨까지 갖춘 현대식 펜션이다. 숙박 이용요금은 3만~19만원. (061-363-9910)

▲ 여행 길잡이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가다 익산에서 환승하면 곡성까지 3시간30분 걸린다. 옛 곡성역~가정역 구간 증기기관차는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하루 다섯 번 운행된다. 왕복요금이 어른 6000원, 어린이 5500원이다. 침곡역~가정역 구간 레일바이크 이용요금은 2인승 1만5000원, 4인승 2만2000원이다. (061-363-9900)

코레일관광개발에서는 곡성역과 주변 관광지를 결합한 다양한 여행 상품을 내놓았다. 자세한 정보는 코레일관광개발 홈페이지(www.korailtravel.com)를 참고하면 된다. (1544-7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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