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프리뷰]국가부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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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아픈 과거의 교훈, 결코 잊지 말아야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철저한 허구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성취된 미덕들은 영민한 각본에 많은 빚을 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영화사 집

제목 국가부도의 날

제작연도 2018년

제작국 한국

러닝타임 114분

장르 드라마

감독 최국희

출연 김혜수, 유아인, 허준호, 조우진, 뱅상 카셀

개봉 2018년 11월 28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소재부터가 쉽지 않았을 작품이다. 분명히 일어난 사건이었고 멀지 않은 과거이지만 경험한 이들 사이의 간극은 크고 각자의 기억 또한 상이하다. 그럼에도 모두가 공통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고통과 절망의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IMF 사태는 단순히 사칙연산이나 도덕적 올바름으로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수리문제나 윤리문제가 아니라 한 나라에 몰아친 잔인하고 거대한 재난이었다. 그러나 충분히 예측하고 방지할 수 있었던 재난이기도 했다. 피해를 본 사람들은 대다수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 일에 열심을 다하던 평범한 서민들이었다. 그때 그들은 부지런하고 낙천적이었지만 더불어 너무 순진했으며… 무지했다.

잊고 싶은 아픈 과거를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이야기로 관객들의 발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정치·경제를 소재로 한 작품은 어쩔 수 없이 뒤따르는 관련 전문지식이나 용어들을 쉽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부담까지 떠안아야 한다. 말 그대로 ‘도전’이었다는 감독의 고백이 충분히 납득된다.

적절한 균형으로 조율된 캐릭터의 조화



쉽지 않은 소재였던 만큼 각본, 연출을 비롯한 다양한 요소들이 빛을 발하고 있지만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배우들의 성취가 유난히 눈에 띄는 작품이기도 하다.

홍일점이라 할 수 있는 김혜수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을 연기한다. 누구보다 먼저 국가부도의 위기를 예측하고 합리적 대책을 강구하자고 백방으로 노력하는 이상적 인물이다. 최근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주체적 여성 캐릭터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녀의 반대편에서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인 재정국 차관은 다양한 작품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조우진이 연기한다. 국가 혼란의 최소화와 한국 경제의 체질개선을 빌미로 IMF의 개입을 적극 환영하는 고위층을 대변하는 인물로, 조우진은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차분하면서도 능청스런 연기로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악인을 탄생시켰다.

늘 강렬한 캐릭터로 출연작마다 화제를 몰고 다니는 유아인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신분상승의 기회로 이용하려는 젊은 펀드매니저 ‘윤정학’ 역을 맡았다. 실리를 추구하는 다혈질이지만 단순히 기회주의자라고 단정해버리기엔 복합적이고 미심쩍은 내면을 가진 쉽지 않은 인물을 무리없이 소화해냈다.

모두 뛰어난 연기들을 펼치고 있지만 이 중 허준호의 존재감은 단연 백미다. 그가 연기한 소규모 그릇공장의 사장 ‘갑수’는 보통의 서민을 대변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가장 큰 공감을 얻고 있기도 하지만, 이제껏 그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짙은 호소력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딱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세우기 힘들었던 배우 허준호의 연기인생 최고의 성취이자 확실한 전환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여기에 IMF 총재 역을 맡은 프랑스 연기파 배우 뱅상 카셀이 방점을 찍는다.

뛰어난 각본과 연출의 묵직한 힘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철저한 허구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성취된 미덕들은 영민한 각본에 많은 빚을 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시나리오를 쓴 엄성민 작가는 IMF 협상 당시 비공개로 운영됐던 대책팀이 있었다는 기사에서 영감을 얻어 상상을 펼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화려하고 치밀한 기교보다는 목적을 위해 단순하지만 힘 있게 밀고 나가는 이야기의 구조는 결말에 이르러 뚜렷한 주제를 드러내고 이는 크고 묵직한 울림으로 치환된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각본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올린 담백한 연출의 힘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다소 상투적인 훈계처럼 보일 수도 있었던 결말의 노골적 교훈도 충분히 설득력을 얻는다. 희비의 역사는 반복되고 개인은 깨어 있어야 한다.

공교롭게도 시사회가 있던 날, 극장이 있는 용산으로 가는 도중 환승을 위해 노량진역 플랫폼에 머문 짧은 몇 분 동안 펜스 너머 수산시장 쪽에서 확성기를 타고 넘어오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고 누군가에게 쏟아내는지도 알 수 없는 격양된 목소리는 간곡한 호소처럼, 또 처절한 절규처럼도 들렸다. 과연 그들의 주장은 얼마나 객관적인 것이며 얼마나 많은 이해를 얻고 있을까?

IMF 사태 이후 적잖은 시간이 지났고 사람들도 바뀌었겠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냉혹한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힘겹게 버티며 눈물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영화 속 외국배우들



〈국가부도의 날〉에 출연해 한국 관객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온 프랑스 배우 뱅상 카셀은 많지 않은 출연분량에도 불구하고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으로 작품을 빛내고 있다. 한국영화의 위상과 시장성이 확장되며 유명 외국배우들의 출연도 심심찮게 발견하게 되지만 모두가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만은 아니다.



외국배우의 출연으로 화제가 된 작품들 중 단연 전설은 역시 2002년 공개된 〈클레멘타인〉일 것이다. 당시 액션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스티븐 시걸을 출연시키는 데 제작비의 대부분을 지불했다는 소문은 이 작품의 악명을 드높이는 데 큰 몫을 했다.

2011년 〈만추〉에 출연했던 탕웨이는 이 작품의 인연으로 연출을 맡았던 김태용 감독과 부부의 연을 맺어 더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홍상수 감독의 2012년작 〈다른 나라에서〉에 출연한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는 고향인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영화를 대표하는 히로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제에서의 인연으로 한국까지 와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는 그녀는 작년에 〈클레어의 카메라〉를 통해 다시 한 번 홍상수 감독, 한국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2016)에서 외지인 역을 맡은 일본배우 쿠니무라 준은 작품이 내포한 기괴한 공포를 시각적으로 완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 찬사를 이끌어 냈다. 반면 〈인천상륙작전〉(2016)에서 맥아더 장군으로 출연한 니암 리슨은 빈약한 비중에 캐릭터까지 평면적인 바람에 국내 관객들에게 실망을 안기기도 했다. 유명세에 비해 한국에서는 큰 인지도가 없었던 토마스 크레취만은 〈택시운전사〉에서 실존인물 ‘힌츠페터’를 비중있게 연기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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