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박항서와 베트남

이기환 논설위원

올드팬들은 동남아 축구에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1960~1970년대 몽윈몽, 몽몽틴, 몽틴앙메, 몽애몽 등이 주축을 이룬 버마와 아르무감, 소치논, 아마드, 찬드란 등이 호령한 말레이시아 등은 한국을 어지간히 괴롭혔다. 버마와는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공동우승을 차지했고, 말레이시아에는 1971년 9월 서울에서 열린 뮌헨 올림픽 예선에서 0-1로 패해 탈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억수 같은 빗속에서 슈팅수 32-8의 일방적인 공격을 펼쳤지만 아마드의 한 방에 무너진 기억이 생생하다. 실망한 관중은 가수 이상렬씨의 노래를 패러디하여 ‘아마드 빗물이겠지’를 불렀다. 그래서인지 메르데카컵이나 킹스컵 대회에서 우승하면 카퍼레이드까지 베풀어주었다.

월남(베트남) 축구도 만만치 않았다. 1964년 도쿄 올림픽 예선에서는 이스라엘을 꺾고 한국과 본선티켓을 다투기도 했다. 비록 한국에 패했지만 ‘평균신장 165㎝에 못미치는 키에도 민첩하고 패기에 찬 월남 선수들의 주력은 인상적’(동아일보 1964년 5월28일)이었다. 그러나 베트남전쟁 등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축구 실력 또한 정체됐다.

지난해 10월 베트남 축구협회가 한국인 박항서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베트남 여론은 싸늘했다. 그러나 단 3개월 만에 급반전했다. 동남아에서도 변방에 속하는 베트남 축구를 23세 이하 아시아 축구대회 결승으로 밀어올렸으니 말이다. 이라크, 카타르를 꺾고 결승에 오르자 베트남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마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한국의 거리 풍경 같았다. 박 감독의 비결은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베트남 축구에 ‘깔맞춤의 옷’을 입혀주었다는 것이다. “선수들의 체력이 약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아니더라고요. 체격은 작지만 체력은 좋던데요.” 그래서 선택한 스리백 전술을 베트남 선수들은 잘 소화했다.

‘베트남의 히딩크’ ‘박항서 매직’이란 찬사가 나왔다. 무색무취의 전술로 결승 진출이 좌절된 한국 축구와 어찌 그렇게 비교될까. 1963년 메르데카컵에서 3위에 머문 한국 선수들의 소감이 귀에 쟁쟁하다. “한국은 호랑이 없는 산의 토끼 같아요.” 55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 축구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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